나의 고양이, 아름다운 고양이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시대의 반항아’ 도리스 레싱.
그녀가 고양이에 대해 쓴 산문집이 있습니다.
그녀의 위대한 소설들 사이에서 낯설게 느껴지는 이 산문집이 저에게는 지금 딱 맞는 책인 것 같았습니다.
요 몇 주, 주변 공기도 무겁고 머리에 공간도 많이 없어졌음을 느꼈습니다. 너무 더워서 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책의 첫 장을 넘기자마자 그녀의 첫 문장이 마음에 쏙 들었습니다. 곧 다른 책도 찾아보게 될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도 당신 자신을 위해 써라. 남들이 뭐라고 지껄이든 상관하지 말고, 글쓰기는 삶의 방식이 아니라 삶 그 자체가 되어야 한다 "
레싱이 묘사하는 런던의 배경은 저에게 무척 익숙한 곳이어서 이 책을 좋아하는 이유가 하나 더 늘었습니다. 작가는 런던 서쪽의 얼스코트에서 살았더군요. 저의 런던 집과 그다지 멀지 않은 곳입니다.
고양이에 대한 묘사도 흥미로웠지만, 반 세기 전 런던으로 시간여행을 떠난 듯한 기분이 더욱 인상 깊었습니다. 첼시&켄싱턴 부근은 예전 모습을 많이 간직하고 있기 때문에 아마도 비슷한 풍경이었겠지요. 오랫동안 잊어버리고 있던 상상력이 잠시 되돌아온 듯합니다. 따뜻한 벽돌 길과 하품하는 담벼락 위 고양이들이 눈앞에 선합니다.
평소 고양이에 대한 편견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작가의 글을 보며, 고양이가 인간과 맺는 다양한 방식의 관계에 놀랄지도 모르겠습니다. 혹은 고양이들의 발정이나 태어나는 고양이 새끼들의 숫자가 더 충격적일지도요. 중성화 수술이 흔하지 않았던 그 시대의 반려묘 이야기는 사뭇 낯설 수도 있습니다.
아프리카에서 자라고 런던에서 생활한 작가는 평생을 고양이들과 함께 한 듯합니다. 고양이에 대한 세심하고 사랑이 넘치지만 매우 현실적이기도 한 관찰을 따라가다 보면, 그들을 보호해야 할 존재라기보다는 같은 하늘 아래를 살아가는 주체적인 생명체로 받아들인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고양이는 고양이의 선택을 하고 작가는 그 선택들을 존중합니다. 상호의존보다는 공존에 가깝다는 느낌입니다.
저도 지금 두 마리의 고양이와 '공존'하고 있습니다.
저와 함께 사는 고양이들은 모두 기품 있는 런던 출생 고양이님들입니다만, 저에 의해 강제로 '봉자'와 '숙이'가 되었습니다. 아마도 그들이 인간의 언어를 한다면 분명 큰 불만을 표출했을 겁니다.
봉자는 하얀색 렉돌고양이로, 폴란드계 브리더가 자랑스럽게 족보까지 건네준 고양이입니다. 원래 그녀의 이름은 안젤리나 7세 같은 이름이었는데, 제 품에 들어온 순간 봉자가 되어버렸습니다.
그래도 봉자는 특별합니다. 그녀의 하늘색 눈동자는 도자기 같이 청명하고 얼굴은 귀태가 있습니다.
매우 까탈스러운 간식 취향을 가지고 있는 우리 봉자는 하루 종일 저에게 말을 겁니다. 마치 제가 자신의 말을 알아듣는다고 확신하는 것 같습니다. 아마도 '창문 열어라', '밥을 줘라', '화장실이 더럽다', '간식 줘라', '쓰다듬어라' 같은 명령어가 대부분인 것 같은데, 관철될 때까지 타협이 없습니다.
스킨십도 자신이 지정한 곳에서만 가능합니다. 화장실 앞 매트 옆 스크래쳐 앞에서 계속 울고 있으면, '궁디팡팡'을 해달라는 신호입니다. 저를 보자마자 뒤돌아 엉덩이를 들이댑니다.
둘째는 시베리안 고양이 숙이입니다. 갈색과 검정 줄무늬의 삼중모가 촘촘한 그녀는 말은 없지만 적극적인 행동으로 사람의 주의를 끕니다. 항상 먼저 애교를 부리고, 몸을 비벼대고, 무릎 위에 올라와 앉습니다. 전형적인 둘째의 모습이랄까요.
호기심이 많은데 특히 시각적인 장난감에 매우 예민합니다. 파리 한 마리만 발견해도 신이 납니다.
성격 좋은 숙이는 동그랗고 큰 눈을 가진 러시아 미녀로 녹색과 노란색이 섞인 눈에는 우주가 담겨 있는 것 같습니다. 얼마 전 본 제임스 웹 망안경이 찍었다는 어느 성운의 색감과 꽤 비슷합니다.
시베리아의 야생종이라 그런지 식탐이 유난히 많은 그녀는 그 낙천적인 성격이 온몸에 드러납니다.
레싱의 글을 읽으며 제 옆에서 배를 내놓고 대자로 누워있는 봉자와 숙이를 천천히 바라봅니다. 책 한 권은 아니더라도, 반의 반 권쯤은 그녀들의 일상으로 글을 채울 수 있을지 자문하다가 포기해버립니다.
가끔은 하루하루가 아무 의미 없어 보일 때가 있습니다. 매 순간이 같았던 적은 없는데 말입니다. 같은 듯 다른 순간을 일상이라는 이유로 무심하게 지나칠 때가 많은 것 같습니다.
제가 이렇든 저렇든 그녀들은 오늘도 고귀함을 잃지 않은 자세로 인어공주처럼 앞발을 가지런히 모은 채 앉아 밥을 챙기라고 명령하고 있습니다.
사랑스러운 주인공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