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번의 혁신과 PERFECT STORM
이 책은 5억 5천만 년간의 뇌 진화를 다섯 번의 핵심적 돌파구로 설명하는 통합 이론을 제시합니다.
베넷은 AI 스타트업 알비(Alby)의 공동 창립자이자 CEO이자 연구자로 뇌과학자가 아닙니다. 오히려 그런 배경이 그가 생물학적 지능과 인공지능을 체계적으로 비교분석할 수 있는 토대가 된 것 같습니다.
서론에서 저자는 “동물은 헤아릴 수 없는 다양성을 보여주는 것 같다. 하지만 조금만 더 생각해 보면 동물계에서 정말 놀라운 점은 오히려 다양성의 부족이라고 쉽게 결론 내릴 수 있다”라고 말합니다.
저 역시 책을 읽는 내내 동물과 인간의 지능이 놀랍도록 비슷하다는 것을 발견하며, 과연 우리가 지능의 정의를 제대로 알고 있는지 다시 한번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6억 년에 걸쳐 개연성이 없어 보이면서도 실제로는 매우 정교하게 설계된, 완벽하게 에너지 효율적인 뇌의 진화에 감탄하게 되었습니다.
인간이 뇌를 사용하는 데 필요한 에너지는 하루 약 500kcal로, 이는 포도당 150g에 해당하는 양입니다. 최근 AI의 발전에 드는 막대한 전력난과 비교해 보면 놀라울 따름입니다.
500페이지에 달하는 방대한 정보를 담은 이 책은 진화생물학, 신경과학, 심리학, 인지과학, 인공지능, 과학철학을 아우르는 융합형 연구서입니다. 하지만 단연코 말하건대, 비전공자가 볼 수 있게 매우 잘 써져 있으며 각 페이지에 딱 알맞은 일러스트레이션을 삽입해 독자를 배려한 모습이 훌륭합니다. 심지어 그림자체가 훌륭합니다.
저자는 뇌의 진화를 다섯 번의 혁신으로 정리하며 관련된 AI 기술과 리서치에 대해 소개합니다. 중요한 점은 각 혁신이 개별적으로 나타난 것이 아니라 이전 단계의 기반 위에서만 가능했다는 점입니다.
혁신 1. 조종 Steering
최초의 좌우대칭동물의 탄생은 먹이를 탐색하기 위한 조종을 효율적으로 하기 위한 혁신입니다. 이는 외부 자극을 긍정적 감정가(접근)와 부정적 감정가(회피)로 분류하고, 긍정적 자극이 증가하는 방향으로 이동하는 능력을 의미합니다.
현재 AI 기술과의 연관성을 보면, 이는 매우 기본적인 자극-반응 시스템과 이진 분류에 해당합니다. 로봇청소기가 대표적인 예로, 장애물을 감지하면 방향을 바꾸는 단순한 전략을 사용합니다.
혁신 2. 강화 Reinforcing
5억 년 전 초기 척추동물의 뇌에서는 새로운 구조와 능력이 등장했습니다. 좋고 나쁨의 단순한 감정가 신호를 바탕으로 강화학습이 가능해진 것입니다.
도파민 기반 보상학습 시스템의 진화로, “예상과 실제의 차이(예측 오류)”를 학습에 활용하게 되면서 뇌가 단순한 반사적 신경망에서 전략적이고 유연한 학습 기계로 도약했습니다. 단순히 즉각적 자극에 반응하는 수준에서 미래의 결과를 고려해 전략적으로 행동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이는 현재 AI의 강화학습 알고리즘과 놀랍도록 유사합니다. 울프람 슐츠가 발견한 도파민의 보상 예측 오차 기능은 리처드 서튼의 시간차 학습이론과 정확히 일치합니다.
혁신 3. 시뮬레이션 Simulating
초기 포유류에서 새 겉질이 새로 등장했고 시뮬레이션이 가능해졌습니다. 1억 년 전 우리 조상은 대리 시행착오, 반사실적 학습, 일화 기억 등을 통해 생존 계획을 수립했습니다. 이는 현재 생성형 AI 모델과 놀라운 유사성을 보입니다.
생성 모델은 잠재 표현을 학습하고 추론 모드와 생성 모드를 가지며, 시뮬레이션된 데이터와 실제 데이터를 비교하여 예측 오차를 최소화합니다.
혁신 4. 정신화 Mentalising
초기 영장류에서는 마음이론, 모방 학습, 미래의 필요 예측 능력이 등장했습니다. 저자는 이들이 별개의 능력이 아니라 자신의 마음에 대한 생성모델 구성이라는 혁신에서 나온 창발적 속성이라고 설명합니다. 바로 새 겉질을 새로운 방식으로 적용해 등장한 것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현재 AI에서 마음이론과 메타인지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지만, 아직 초기 단계입니다. AI는 감정 표현을 모방할 수 있지만 실제 감정이나 의도를 파악하지는 못합니다. 또한 진정한 공감이나 복잡한 사회적 맥락을 이해하는 능력은 여전히 부족합니다.
혁신 5. 언어 Language
700만 년 전 침팬지와 갈라진 초기 인류는 척박한 환경에 내몰려 도구를 만들고 육식을 하게 되었습니다. 생존을 위한 정보 전달을 정확히 하기 위해 원시 언어가 등장했고 언어 학습 프로그램이 발달했습니다.
퍼펙트스톰이 발생했습니다. 사회집단이 확장되고 아이디어가 사람의 뇌에서 뇌로 넘나들기 시작하면서 인간의 집단지성이 등장하고 지식이 축적되었습니다. 때마침 등장한 화식으로 인해 뇌의 크기는 세 배로 커졌고 그만큼 정보처리 능력도 늘어났습니다.
현재 AI 기술과의 연관성에서 가장 흥미로운 부분입니다. GPT 같은 LLM은 거의 인터넷 전체를 대상으로 훈련한 결과, 자체적으로 독창적인 글을 쓰는 수준까지 왔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언어를 사용할 때 단어 그 자체에는 없는 엄청난 수의 가정이 담겨있습니다. 그런 맥락을 모두 이해하는 점은 아직 어려운 점입니다.
LLM의 성장은 믿기 어려운 수준까지 도달했습니다. 사람 한 명이 1000번을 살면서 읽을 수 있는 양보다 많은 책과 글을 읽었습니다. 하지만 시뮬레이션과 정신화라는 혁신을 통합하지 않는다면 인간의 지능과 같아지기는 어려워 보입니다.
약 6억 년을 거친 뇌의 진화를 인공지능은 따라 할 수 있을까?
챗GPT를 쓰다 보면 방대한 데이터와 심층리서치를 감탄할 때가 많지만, 동시에 매우 단순해 보이는 일은 못하는 것을 발견할 때가 종종 있습니다.
인공지능의 발전은 인간의 뇌와 비슷한 인공신경망을 베이스로 어마어마하게 빠르게 진행되긴 했지만, 기본적으로 역계산을 바탕으로 하고 있습니다. 바로 결괏값에서 원인을 추론하는 구조입니다. 책에서는 이 접근방법의 한계점을 매우 흥미롭고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아직도 과학은 우리의 뇌가 정확히 어떻게 작동하는지 완벽하게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예를 들어 대뇌피질은 단순한 세포구조로 여러 형태의 기능을 포괄해서 수행하는데 이는 뇌과학분야의 최대 미스터리라고 합니다.
자아는 무엇인가?
뇌의 진화를 시스템적으로 이해한다면 과연 우리가 매일 얘기하는 자아는 도대체 무엇인지 생각해 보게 됩니다.
저자는 전전두엽 새겉질(gPFC)의 확장이 인간만의 독특한 능력을 가능하게 했다고 설명합니다. 그 결과 우리는 도구를 만들고, 언어를 구사하며, 타인의 마음을 추론하는 능력을 갖추었습니다. 인간의 지능은 개인의 뇌가 아니라 집단지성의 산물이라는 점이 특히 강조됩니다.
그렇다면 왜 집단지성을 가진 인간의 역사는 전쟁, 질투, 기만, 착취로 반복되는 면이 있을까요? 좀 더 효율적인 공존을 위해서는 아바타와 같은 공감능력이 중요할 것 같은데 말입니다.
"자연은 낭비하지 않는다"라는 말이 있으니 아마도 현재 인간의 뇌의 용량으로 실시간 공감전달은 무리였을지도 모릅니다. 우리가 망각하는 이유도 같은 맥락이겠지요.
그렇다면 앞으로 AI도 자아가 생기는 쪽으로 발전될까요? 방대한 정보량을 가진 만큼 반복되는 인간의 실수는 수정될까요?
여섯 번째 혁신?
지구에서 생명의 나이는 40억 년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우리 태양이 죽는 날까지는 70억 년이 더 남아 있습니다. 마지막 은하가 붕괴하기까지는 1,000조 년의 시간을 기다려야 합니다. 우리는 어떠한 여섯 번째 혁신을 맞이하게 될까요?
저자는 여섯 번째 혁신이 인공초지능(Artificial Superintelligence)의 창조가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주장합니다. 그렇게 되면 인지 용량 규모가 천문학적으로 확장될 것이라 예상합니다.
더 이상 진화는 유전적 변이와 자연선택이라는 느린 과정이 아니라, 자신이 생존하는 데 필요한 특성을 직접 선택하는 능동적 형태로 전환될 가능성도 클 것이라고도 전합니다.
이제는 AI와 네트워크까지 협력의 범주에 들어서게 되었습니다.
퍼펙트스톰과 쓰나미
저자가 언급했듯이 진화든 기술 발전이든 어떤 시점에는 퍼펙트스톰을 생길 때가 있습니다. 어떤 이는 AGI의 도래를 특이점이라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현세대를 사는 모든 이는 행운이자 동시에 불확실성의 무게를 짊어진 채 거대한 격변의 시점을 지나가고 있는 것이 분명해 보입니다.
얼마 전 새 책을 내신 김대식 카이스트 교수님의 인사이트는 매우 흥미로웠습니다. AGI가 곧 도래할 것이고 그 AGI가 발전을 거듭한다면 결국 인공초지능으로 업그레이드된다는 가정 하에, 인간사회는 제국적인 19세기 모습으로 되돌아갔다가 결국 인간 친화적인 초지능 앞에 모든 인간이 똑같이 피지배계층으로 변화하게 될 것이라는 메시지였습니다.
https://youtu.be/89rQSoPFd7M?si=7mGju8_6YwUisR5S
수많은 AI 버블 우려 속에 2025년은 기업의 AI 투자가 실제 이익으로 돌아온 다는 것을 증명한 중요한 시점이었습니다. 그리고 얼마 전 오라클 창업자는 폭발적인 실적 성장세를 설명하며 “모두가 다가오는 쓰나미의 규모를 이해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라고 뼈 있는 말을 남겼습니다.
우리가 지금 이 책을 읽는 이유는, 거대한 쓰나미가 불러올 기회와 역풍이 이미 우리를 움직이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