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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죽지않는개복치 Nov 09. 2023

나는 솔로의 빌런 빌드업

모방적 욕망

얼마나 잠을 안제우나 눈이 퀭하고 초초하며 다들 팽팽한 긴장에 눈빛이 날이 서있다. 경쟁을 시켜서이다. 잠을 자는 동안 나도 모르는 역사가 일어난다며 잠을 안 잔다고 한다. 


르네 지라르(Rene Girard)는 우리가 원하는 것이 실은 남의 욕망을 모방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본다. 쉽게 욕망이란 것 자체가 내가 원해서가 아니고 남의 원하는 것을 나도 갖고 싶어 생긴다는 모방적 욕망을 주장한다. 예를 들면 어젠가 티브이에 볼보 티브이 광고를 보았는데 어린 소녀와 아버지가 나왔다. 차 광고인줄 전혀 모른다. 행복해 보이는 외국 소녀가 환히 웃고 나중에 아버지가 아이를 픽업하려 데려갈 때 볼보 로고가 보였다. 차를 사면 행복하고 편안한 가족을 살 수 있다는 모방적 욕망을 넣어 파는 것이다. 


문제는 서로 타자의 욕망을 모방하다 보면 서로 다 똑같은 것을 원하니 경쟁에 빠진다. 나는 솔로 프로그램을 보다 보면 한 사람에게 다수가 몰리는 걸 흔히 본다. 이 과정에서 경쟁의 다음 단계는 본질적인 폭력과 혼란이 따라온다. 르네 지라르가 말한 본질적 폭력이란 우리를 욕망하게 만드는 타자가 욕망의 유발자이자 알고 보니 경쟁자였다는 점에서 시작된다. 인기 많은 살마에게 표가 몰리면서 혼자서 짜장면을 먹는 사람도 있고 계속해서 랜덤 채팅과 각자 선택을 하게 되며 지나친 경쟁과 혼란은 지속된다. 

르네 지라르는 경쟁 후에는 사람들은 자신의 혼란과 폭력을 어딘가에 쏟아낼 '희생양'을 만든다고 봤다. 쉽게 분풀이할 대상으로 욕을 먹어야 대는 빌런의 탄생이다. 빌런은 나와 다른 사람, 약자일 수도 있다. 이것은 아주 오래전부터 이어져 온 거라 익숙한데 내가 나는 솔로를 보며 흥미로워하는 것은 

빌런은 빌드업해서 만든 후이다. 빌런으로 왜곡이 생겨 후에는 빌런은 다시 숭배된다. 위기를 구원하거나 화해시켜서 역설적으로 신성화되는 과정을 거친다. 


나는 솔로에서 빌런이 될수록 묻히는 사람들도 있지만 반대로 인기 인플루언서나 유튜버가 되거나 뭔가 화제를 계속 뿌리면서 유명해지는 사람들을 본다. 왜 그럴까 쳐다보면 사람들은 빌런을 만들면서 빌런 속에서 자신의 모방된 욕망을 찾으며 일부는 숭배의 대상으로도 여기는 것 같다. 그것은 욕을 많이 먹며 눈치 보며 사는 우리 사회에서 알고 보면 나도 빌런이 될 수 있다는 마음 같다. 나도 누군가에게는 빌런 일 수 있지만 내가 평범하다고 하는 이유란 기기 막히게 빌런인 일부분이 다른 톱니바퀴와 맞물려 평범한 척 잘 굴러가서이다. 


미국 막장에 원조프로인 제리 스프링거쇼가 있다. 아쉽게도 지금은 제리 스프링거 아저씨는 영면에 들어가셨다. 이 프로는 사건이 터지면 인상 좋은 빡빡이 아저씨가 씨익 해맑게 웃으며 달려들어 해결사로 나섰다. 나는 솔로 연애프로그램은 해결사가 없다. 빡빡이 아저씨도 없다. 출연자들은 매 순간 링 위에 올라선 듯 힘들었을 것이다. 나는 솔로 프로그램을 보다 보면 연애프로가 점점 오징어 게임이 되어가서 위태 위태해 보이는 순간이 있다. 이제는 어느 선에서 멈춰야 할지 내가 좋아했던 빡빡이 아저씨의 등장이 필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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