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2월 18일, 사랑스러운 첫 조카가 태어났다. 핏줄이라는 것에 큰 의미를 두지 않았던 나에게 조카의 탄생은 이전에 한 번도 느껴본 적 없는 감정을 불러일으켰다. 얼굴 속에 엄마 아빠가 보이고 언니가 보였으며, 또 형부가 보였다. 가장 귀여운 것들로만 이루어진 것 같은 땡큐(태명)에 대한 나의 감정은 어머니의 사랑에 비할 바는 못되지만, 내가 강렬한 사랑을 줄 대상이라는 감정은 확실하게 느끼게 해 주었다.
누군가가 자신을 위해 죽어줄 수 있냐고 물어본다면, 나는 가족이라고 할지라도 "절대"라고 대답할 사람이다. 그런데 땡큐가 물어본다면, 물론 거절하겠지만 고민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모가 된 것도 이러한 사랑과 책임감을 요하는데, 어머니가 된다는 것은 어떠한 의미일까?
일반적으로 여성에게 어머니라는 역할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어머니는 자녀의 탄생과 성장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며, 가족의 중심이 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어머니의 역할은 때때로 '모성 신화'라는 이름으로 왜곡되기도 한다. 모성 신화는 어머니가 마치 신성한 존재인 것처럼, 사랑과 희생을 바탕으로 자녀를 위해 모든 것을 내어주는 존재인 것처럼 묘사한다. 이러한 신화는 여성에게 어머니로서의 역할을 강요하고, 어머니가 아닌 다른 모습으로서의 자신을 부정하도록 만든다.
여성이 어머니가 되면서 맞닥뜨리는 모순은 피할 수 없다. 어머니의 정체성은 어머니로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동안 가졌던 다양한 꿈과 희망도 포함한다. 하지만 이러한 꿈과 희망은 '타고난 어머니'라는 신화에 의해 희생되기 일쑤이다. 그러나 '여성'이라는 것을 차치하고 모든 인간은 자신의 정체성을 사회의 정해진 틀에 강요받지 않고 자유롭게 살아가야 한다. 인간의 삶은 사회적인 기대와 신화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성장하고 변해가는 여정이다. 따라서, 모든 어머니 역시 자신만의 정체성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어머니라는 신화의 맹점은 아이가 어머니의 부정당했던 자유와 권력을 상징하는 데서부터 비롯된다. 이러한 상징적 관계는 어머니로 하여금 자신의 일부분을 아이에게 투영하게 하고, 그 결과 아이를 꼭두각시로 취급하게 만든다. 즉, 아이는 어머니의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한 도구로 전락한다. 어머니의 세계에서 아이는 어머니의 과거를 상징하는 존재가 되고 마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모성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화하는 정체성이다. 어머니는 아이가 성장함에 따라 어머니로서의 역할을 점차 내려놓아야 한다. 이로 인해 어머니는 새로운 정체성을 찾아야 하는 현실적인 한계를 마주하게 된다. 이로써 자유로운 삶을 원하고, 자신만의 꿈과 희망을 추구하던 어머니는 모순에 직면하게 된다. 이에 따라 어머니가 되는 것은 단순한 역할 수행이 아니라, 정체성을 재정의하고 모순에 맞서는 행위로 나타난다.
어머니가 되는 것은 삶을 놀라움과 변화로 가득 채운다. 아이를 사랑하고 양육하는 것은 하나의 과제이며, 그 과정에서 어머니는 다양한 어려움과 기쁨을 경험하게 된다. 올바른 부모의 모습은 시대마다 변화하겠지만, 아이를 소유물로 여기거나 과도한 사랑으로 무례한 아이를 만드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어머니가 되는 과정은 우리 모두의 역할이며, 아이를 키우는 데에는 공동체의 도움이 필요하다.
덧붙여, 내가 보기에 우리 언니는 시대상이 요구하는 훌륭한 '어머니'가 될 수는 없을 것 같다. 그녀는 아기를 낳자마자 이모들에게 맡기고 놀러 갈 생각을 하고 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나는 믿는다. 행복한 부모 아래에서 행복한 아이가 자랄 것이라는 사실을. 그리고 땡큐는 모두의 사랑을 받아 무럭무럭 자랄 것이라는 사실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