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가다가, 혹은 SNS상에서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봤을 법한 말, 바로 "플렉스(flex)"다. 힙합 문화에서 파생된 이 용어는 본래 "몸을 풀다"라는 의미이지만, 한국에서는 현재 "재력이나 부 따위를 과시하다"라는 뜻으로 사용되고 있다.
플렉스 문화는 Mnet '쇼미더머니 8'에서 래퍼 염따가 고가의 물건을 자랑하며 "플렉스 해버렸지 뭐야~"라고 말한 것이 시작이었다. 방송 이후 사람들은 자신의 물건이나 재력을 마치 재치 있는 농담이라도 되는 듯이 자랑하기 시작했다. 이에 질세라 소위 명품이라 불리는 것들을 가지지 못한 사람들마저도 "소소한 플렉스"라며 저렴하고 일상적인 소비생활을 과시하는 모습을 보였다.
인간은 누구나 욕망을 가지고 살아가기에, 이러한 현상은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니다. 욕망은 인간의 본능이자 삶의 원동력으로, 기본적으로 생존, 명예, 성취와 같은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 그중에서도 특히 자본에 대한 욕망이 가장 강한 이유는 그것이 다른 모든 욕망을 충족시킬 수 있는 수단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본은 한계가 있고, 인간의 욕망은 끝이 없기에, 이는 곧 이해관계의 충돌이라는 어려움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
이에 대한 인류의 해답은, 힘이 강한 무리가 더욱 약한 무리를 제압하는 방식으로 드러났다. 욕망의 꼭대기는 권력 집단의 몫이 되고, 그다음은 권력 집단에 동조하는 세력이나 계층이 차지하게 되었다. 약자는 욕망을 가장 적게 갈망하거나, 꿈꾸지도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플렉스(flex) 해버렸지 뭐야~."라는 유행어는 이러한 욕망의 문제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플렉스 문화는 마치 값비싼 소비가 자신을 더 가치 있는 사람으로 만들어 준다는 달콤한 속삭임처럼 들린다.
자본을 갈망하는 욕망은 권력 집단의 이데올로기를 반영한다. 많이 가진 사람일수록 욕망을 다양하고 많이 표출할 수 있는데, 이는 태생이 좋은 사람이 어릴 때부터 더 많은 욕망을 교육받기 때문이다. 즉, 가진 자가 더 많은 욕망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은 욕망이 개인 차원에 머물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의 욕망이 아주 개인적인 욕망인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사회적 욕망, 즉 권력층의 이데올로기에 얽혀 이뤄진다는 것이다.
불필요한 소비 욕망이 문제가 되는 이유는 남의 욕망이 마치 자신의 욕망인 것처럼 느껴지게 만들기 때문이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우리가 지금 원하는 것은 실질적으로 원하는 것과 일치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물건을 쉽게 옮기기 위해 가방이 필요한 사람에게 선택권을 준다면, 실용적인 가방보다는 ‘세계에 100개 밖에 없는 가방’을 원한다. 이는 현대의 권력이 대중에게 실용성이 아닌 ‘기호 가치’를 소비하도록 유도하고 있음을 느끼게 해주는 단적인 예이다.
권력 집단은 광고나 교육을 통해 대중에게 특정한 가치관이나 기준을 주입함으로써 대중의 의식과 욕망을 획일화한다. 이러한 획일화된 욕망은 대중을 권력 집단의 지배에 순응하게 만들고, 대중이 욕망의 진정한 주체가 되는 것을 방해한다. 우리는 스스로 주체가 되어 욕망한다고 생각하지만, 정작 욕망의 주체는 나 자신이 아니라 권력에 따라 좌지우지된다. 우리가 ‘세계에 100개 밖에 없는 가방’을 원하게 된 것 역시, 권력이 우리에게 그러한 욕망을 심어주었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권력 집단은 욕망할 대상을 만들고, 그 대상을 향한 욕망을 조장함으로써 자신의 우월성을 유지한다. 만약 모두가 자유롭게 욕망하고 소비할 수 있다면, 인간에게는 위계의 차이가 없을 것이다. 따라서 권력 집단은 약자의 욕망을 제지함으로써 자신들의 우월성을 지키려 한다. 이는 비단 거대 기업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남보다 잘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보통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2018년 겨울에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20만 원짜리 패딩 후원'에 관한 논란이 있었다. 36세 직장인이라고 밝힌 후원자는 아동에게 크리스마스 선물로 "요새 유행하는 롱패딩을 보내주려 한다."라며 원하는 게 있으면 말해 달라고 했다. 후원 아동은 주위 친구들에게 유행 브랜드를 물어 특정 제품을 골랐는데, 가격이 20만 원에 이르는 점퍼였다. 이를 전달받은 후원자는 "자신을 물주로 보는 것 같다."라는 황당함과 분노를 느꼈고, 후원 아동이 피아노학원에 다니기 때문에, 그다지 사정이 어렵지 않은 거 같다고 해당 아동에 대한 후원을 중단했다. 1) 심지어 피아노학원은 국가지원이었다.
권력과 부(富)에서 배제된 사람이라 해서 욕망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자신을 ‘값비싼 사람’으로 여기는 사람들은, 그들이 생존 외의 것을 누리거나 바라기라도 하면, 그것이 자신의 사회적 지위를 위협하는 것으로 받아들인다. 이는 마치 ‘자신의 위치를 알라’고 선고하는 것과 다름없다. 소비행위는 자신과 타인을 구별하는 기호로, 사회적 위계의 수단이 되었다.
결국, 자본주의가 전 세계를 지배하는 삶의 원리로 자리 잡은 오늘날 욕망의 주체는 이른바 스타도 아니고, 기업도 아니다. 이들은 대외적 역할 대행자들일뿐 진정한 주체는 자본주의의 생리이다. 욕망을 중심으로 움직이는 사회는 우리를 욕망하게 만들어 무한 경쟁의 세계에 몰입하도록 만든다. 수입의 많고 적음이 그 사람의 가치를 구분하는 척도가 될 수 있을까? 적어도 값비싼 물건을, 자신이 지닌 돈다발을 "플렉스(flex) 해버렸지 뭐야~."라고 말하며 다 같이 웃어버리는 지금에서는 그렇다.
욕망은 타인의 것이 아니라, 남이 원하는 것이 아니라, 오롯이 자신의 것이다. 반짝이고 다양한 물건들이 쏟아져 나오는 오늘날, 많은 이들이 상품과 욕망의 노예에서 벗어나 욕망의 주인으로 깨어날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