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의 폭력성

보임과 보임당함의 대립

by 최정임

교양과목을 수강하면서 겪은 다음의 사건은 나에게 잊히지 않는 기억으로 남아있다. 교수님께서는 앞뒤 4명씩 자신의 이름, 전공 등을 소개하라고 하셨고, 쭈뼛거리면서 어색한 자기소개가 시작되었다. 아뿔싸! 유일한 홍일점이었던 내가 마지막으로 자기소개를 하려고 하자 6개의 눈이 나에게로 향했다. 내 앞뒤는 모두 공과대학 학생이었고, 혼자 인문대학이라는 긴장감이 올라왔다. 더욱이 인문학 중에서도 순수학문이라 불리는 ‘철학과’에 다니는 나는 지금껏 자기소개 과정에서 겪어왔던 수많은 관심, 걱정, 호기심 어린 눈빛들이 떠올라 눈을 찔끔 감고 소개를 시작했다.


나: “안녕하세요. 저는 철학과 ooo입니다.”
(잠시 침묵)
A: “철학과 같아 보이지 않아요.”
B: “헉! 그럼 사색하세요?”
C: “철학과는 취업을 어디로 해요? 뭐 배워요?”


철학과에 입학하면서 자신이 철학을 좋아한다며 허세를 부리는 사람, 취업도 안 된다며 철학과를 걱정해 주는 사람, 철학원 차리는 거냐고 물어보는 사람들은 비일비재했다. 나름 내성이 생겼다고 생각했었는데, 이때의 대화는 나에게 큰 충격이었다. 우선, 나이를 지극히 드신 어르신들도 아니고 같은 대학생이 나에게 저런 말을 했다는 것과 그들에게는 전혀 미안하거나 머뭇거리는 표정이 없었기 때문이다. 4명뿐인 모둠에서 나는 철저하게 고립당하는 기분을 느꼈고, 내 전공이 조금 우습게 느껴지기도 했다.


당시, 나는 남의 눈치를 지나치게 신경 쓰는 사람이기 때문에 한동안은 내 소개를 하는 것이 부담스러웠다. ‘철학과처럼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무슨 의미지?’, ‘사색은 누구나 다 하는 것인데.’라는 생각들이 나를 지배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나는 그들이 나에게 저런 질문을 한 의도가 무엇인지 고민해 보았다. 나의 미래에 대한 걱정인가? 아니다. 그들은 그저 인문대학, 거기에서도 ‘철학’을 배우고 있다는 사실에 호기심을 가졌다. 그리고는 자신들의 미래 플랜에 대해 이야기했으므로, 자신을 과시하려는 의도 혹은 재미가 더 컸을 것이다. 그들에게는 저런 ‘무례한’ 말들이 일종의 관심이었을까? 비록, 그것이 선한 의도였다고 해도, 나는 저 짧은 문장들에 몇 번이고 몇 번이고 조롱과 무시당함을 느꼈다. 관심이라는 말로 다른 사람들의 삶에 간섭하고 충고하는 사람들의 논리는 대부분 자신의 말이 정답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 경우다. 조별모임을 통해 만났던 그들은 마치 순수학문이라는 것은 취업도 하지 못하고, 별난 사람이라는 전제를 가지고 있었다. 그 시선은 지독하게 나를 얽매이게 했다.


일반적으로 시선이라는 것은 긍정적인 의미로 받아들여져 왔다. 어려운 이웃에게 따뜻한 ‘시선’을, ‘시선집중’이라는 말처럼, 시선이라는 것은 그 대상에 대한 관심과 사랑을 의미하는 것으로 사용된다. 그러나 우리가 현실에서 마주하게 되는 시선은 그리 긍정적이지만은 않다. 사회의 시선이라고 하는 것은 매우 엄격하고 편협하며, 인간을 그 작은 틀 속에 갇히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원래 자기에게 관대하고, 타인에게 엄격한 존재이므로, 나의 일상이 타자의 기대에 벗어나면 수많은 시선으로부터 폭력을 당하기도 한다. 수면시간부터, 식사, 청결, 학습 태도 등 모든 개인적이고 사사로운 영역에서 말이다. 누구나 한 번쯤 회에 초장을 잔뜩 찍어먹다가 “회(음식) 먹을 줄 모르네!”라는 소리를 들었을 것이고, 소위 B급 작품을 보다가 “영화는 말이야, 그렇게 보는 게 아니야!”같은 말을 들었던 적이 있을 것이다. 평가의 시선을 받는 것은 우리 일상에 깊숙하게 자리 잡고 있다. 그리고 그러한 시선들은 스스로를 ‘내가 이상한 것일까?’라는 의문이 들게 만든다. 자신을 잃어버리게 만든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시선은 우리에게 왜 불쾌감을 주는 것일까? 시선을 당한다는 것은 내가 하나의 물체나 대상이 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프랑스어와 영어에서 대상(object)은 객체라는 말과 동의어로 사용된다. 따라서 ‘나’라는 주체의 앞에 놓여 있는 모든 대상은 객체이며, 동시에 모두가 사물이 되는 것이다. 책상이나 의자와 같은 사물이 의식의 대상이 되었을 때는 대상이 곧 사물이라는 공식에 아무런 문제도 발생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가 살펴봐야 할 것은 또 다른 주체인 인간이 의식의 대상이 되었을 때이다. 이것은 ‘사람은 물체가 아니다.’라는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하나의 의식 앞에 높인 주체는, 오로지 다른 의식의 대상이 되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책상이나 의자와 같은 사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쉽게 말하면 남이 나를 볼 때 그는 나를 사람으로 보지 않고 우선 물건으로 본다는 이야기다. 실제로, 누군가 나를 바라볼 때면 나는 물체가 된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특히, 그것이 특정 전제나 편견으로 사로잡힌 시선이라면, 나는 한갓 객체에 불과해진다.


현대 사회에서 시각의 중요성은 절대적이다. 시각은 곧 우리에게 ‘시선’으로 나타나며, 타자와의 관계이자 나와 세계를 맺어주는 기본적인 매체가 된다. 그리고 이러한 시선이 ‘보는 것’을 넘어 인간의 권력관계와 밀접한 연관을 갖는 것은 당연하면서도 무서운 일이다. 예컨대 강자와 약자, 승자와 패자, 주체와 객체, 행복한 자와 불행한 자는 서로를 바라보고, 바라보임 당하면서 함께 살아간다. 한쪽이 없으면 다른 한쪽이 의미를 상실하게 되기 때문에, 누구나 ‘보는 자’가 되지, ‘보임당하는 자’가 되고 싶어 하지는 않는다. 누구나 사람들의 시선이 무서워서 발표를 걱정하거나, 다른 사람들 눈에 이상하게 보일까 봐 옷을 한참이나 고민한 적이 있을 것이다. 이처럼 우리가 의식하고 있지는 않았지만, 시선은 폭력성을 가지고 있다. 물론 모든 시선이 폭력과 억압을 지니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은 ‘남을 죽이고 억압하는 시선’이 존재한다는 점이다. 별거 아닌 거 같아 보이는, 시선과 말들이 타인에게는 칼날처럼 마음에 박힐 수 있다. 사람을 대면하기를 힘들어하는 오늘날, 타자에 대한 평가와 억압의 시선을 거두고 그를 하나의 주체로서 바라보기를 힘써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철학자 장 폴 사르트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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