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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쩌다 Jade Jun 28. 2022

얼결에 온라인 MD가 되어버린 미대생 이야기

미대 나와서 뭐 먹고사나, 어쩌다 온라인 MD 된 썰

"자녀가 순수예술이나 철학을 전공했다면 걱정하셔도 좋습니다. 그들이 직업을 구할 수 있는 유일한 곳은 고대 그리스일 테니까요. 순수예술, 철학 전공자들에게 행운을 빕니다." - 코난 오브라이언


유명 코미디언의 발언으로 한동안 대학 동기들 사이에서 캡처에 캡처를 거듭하며 열심히 돌던 짤의 멘트이다.


그땐 그말이 진짜일줄은 몰랐겠지


_Vol.1

나이 서른 하나, 경력 6년 차.

유아동 슬리퍼에서 명품 식기로, 그리고 백화점 화장품 브랜드로.

나는 지금 세 번째 회사에서 무려 뭐든(M) 다(D) 한다는 MD이다, 그것도 요즘 그렇게 핫하다는 온라인 MD.


대학시절 나는 놀랍게도 온라인 MD 커녕 취업과는 완전히 거리가  순수 미술 학도였다. 그림쟁이의 삶을 그리며 높은 입시의 문을 넘었지만, 그렇게 어렵게 넘은 미술대학이란 곳은 동네에서 날고 기는 미술 신동들이 모두  모여 있는 무림 고수의 사원이었다. 작업실 문을 처음 열고 들어서자마자 알았다. 내가 가진 재능은 저들의 것에 비해 아주 작은 것이며, 어설픈 재능은 재앙이라는 것을. 그때부터 나는  이상 붓을 드는 것이 즐겁지 않았다. 그림을 그리는 일은 마치 짝사랑하는 것과 같아서  열정과 자괴를  번에 안겨주었다. 나는 그것이 너무 아프고 부끄럽고 끝끝내는 도망치고 싶었다. 지금도 모르는 이에게 내가 미술을 전공했다는 이야기를 먼저 꺼내려하지 않고, 남들 앞에서 그림 그리는 일을 극도로 끔찍하게 싫어한다.


전공은 미술로 했는데, 미술은  하겠고 졸업 날짜는 다가왔다. 지독히 정답 코스만을 강요하는 집에서 자란지라, 그에 대한 반발감을 가지고 있어 '나는 평범하게  살겠네, 공연을 하겠네, 방송국 일을 하겠네' 온갖 허세를 부리며 시간을 끌어댔다. 그런데 막상 '졸업 이후의 '이란 미지의 세계가 점점 다가오니 마음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살면서   번도 어느 곳에 소속되어있지 않은 적이 없었는데, 졸업  거처 없는 나는 너무나 보잘  없을  같았다. 아마도  시절 나에게 '소속'이란  마디로 나란 사람에 대한 정체성, 아니  솔직히 말하자면 겉옷 같은 것이었다. 그런데 졸업이란 문을 거치면  겉옷이 벗겨지고  이상 나를 누구라고 이야기할 수도 없게 되는, 그런 겪어보지 못한 공포가 점점 커져 나를 압도했다. 정신 차려 보니 나도 모르게 200군데가 넘는 곳에 무작위로 이력서를 날리고 있었다. 남들  가는 대기업, 나도 그중 하나는 어떻게든   알았는데 통과한 곳은 고작 두어 곳이었고 그마저도 모두 인적성 탈락이었다. (미술학도의 99% 집합에서 수학을 포기한 일명 수포자이다, 인적성 자체를  수가 없다.)


결국 졸업은 왔고,

나는 일명 백.조가 되었다.




_Vol.2

삶이라는 것은 무의식 중에 뿌려놓은 점을 잇는 것과 같다.


나는 대학 시절 모자란 1학점을 채우기 위해 포토샵 수업을 들었고, 그곳에서 우연히 포토샵 능력과 A+라는 뜻밖의 수확을 얻었다. 그리고 졸업 후 그 수업을 진행했던 강사의 소개를 받아 한 갤러리에서 1년이 채 되지 않는 기간 동안 소소한 돈벌이를 할 수 있었다. 적어도 백조 주제에 집에 빌어먹기만 한다는 소리는 듣지 않아도 되었다.


그리고 그 시절 어디에서인가 승무원은 4년제 대학만 나오면 면접 기회는 주더라, 는 소식을 주워 들었다. 그 전 까지는 항공 승무원이란 내 삶과 전혀 관련 없는, 말 그대로 '그들이 사는 세상'이었는데, 알아보니 도전 못 할 일은 아니었다. 4년제 대학, 20대 중반의 여성, 토익 650점 이상, 키 160cm 이상이면 적어도 면접의 기회는 주어질 수 있었고 내가 그토록 취약한 인적성을 보지 않아도 된다는 어마 무시한 장점이 있었다. 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그 길로 승무원 학원에, 스터디에 온갖 노력을 쏟아부었다. 한 개의 항공사를 제외하고는 모두 면접에 올랐고, 이거 '가능한 건가, 나 되는 건가?' 하는 부푼 꿈을 안아보기도 했다. 물론 이내 다 탈락하고 지금은 이렇게 노트북을 두르려 대고 있지만.


낙방에 낙방을 거듭하던 어느 날, 승무원 스터디에서 만난 친구 A가 '너 포토샵 할 줄 알지 않냐'며 한 패션 애플리케이션 스타트업의 인턴 자리를 소개해주었다. 어플에 등록된 온갖 온라인 쇼핑몰 상품을 포토샵으로 적당이 크롭 하여 등록하고, 고객이 설정한 취향에 맞게 상품이 노출되도록 밑단 작업을 하는 일이었다. 때마침 다니던 갤러리의 계약기간이 만료되어, 다시 돈 벌 구석을 찾던 내게 오아시스와 같은 제안이 아닐 수 없었다.


인생은 뿌려놓은 점을 잇는 것과 같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곳에서 있는 한 달 동안, 또 다른 제안이 들어왔다.

'포토샵을 할 줄 아는 자, 온라인 관련 업무를 해본 자 면접 보러 오라.'


나는 그게 내 지긋지긋한 온라인 MD 인생의 시작이 될 줄 몰랐다.

사실 내가 하고 있는 일이 온라인 MD 일이라는 것도 다니면서 한 참 뒤에야 깨닫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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