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대 나와서 뭐 먹고사나, 어떠다 온라인 MD 된 썰
*2017.08~2019.04 유아동 카테고리*
_Vol.1
주렁주렁 포도송이처럼 열려있는 먼지, 고흐의 감자 먹는 사람들 속 풍경 마냥 깜빡이는 하나의 전구.
입사 후 2주 만에 따라간 지하 낡은 창고는 그 흔한 진열대 하나 없이 무너져가는 박스가 뒤죽박죽 쌓여있었다.
"이제 하루에 한 번씩 여기 와서 포장 작업하면 됩니다, 한 십 분 정도?"
"서울에서 4년제 대학 나온 애, 여기 일찍 데려오면 도망갈까 봐 이 주 만에 데려왔지. 다들 너 여기 일찍 보여주면 안 된다고 했어."
처음에는 넷이었다가, 둘이었다가, 혼자가 되었다.
십 분이 곧 두어 시간이 되었다.
입사 전엔 들어 보지도 못한 공간이요 업무였지만, '우리는 1인 전담제입니다, 각자 일은 각자에 맡겨 전문 인력으로 키우지'라는 말에 속아 순진하기만 한 사회 초년 시절을 보내게 된 것이다. (심지어 업무의 A to Z를 경험해 어쩌면 행운일 수도?라고 정신 승리까지 해버렸다!)
진열대 없이 얼기설기 쌓인 박스는 곧잘 무너졌다. 무너지면 들어 올려 다시 쌓고, 새로운 물건이 들어오면 채워 넣고... 그곳에 있는다는 건 곧 포장만이 내 일은 아니란 것이었다. 그렇게 호흡기 장애가 오고 관절이 다치고 마음 상해도 일이란 게 다 그렇게 하는 건 줄 알았다. 내가 모자라서, 내가 겁 없이 전공을 선택해서, 미대 나온 주제에 감히 취업을 넘보아서 받는 벌 같기도 했다.
그나마 창고에서 보내는 시간이 나은 날도 많았다.
줄어드는 출산율로 인해 유아동 카테고리의 매출이 성장할 리가 없었고, 이곳에 오래 몸담은 이들에게도 변화가 생겨 버렸다. 생산을 온통 중국에서 하다 보니 그동안 쉬웠던 일도 그만 영 어려워져 버렸는데, 당연지사 한국 공장에서 쉽게 되던 것이 멀리 떨어진 중국에서 한 번에 잘 될 리 없던 것이다. 그 어려운 일을 해주기 위해 고용된 중국인 차장이 한 명 있었는데, 그녀는 매일매일 중국 공장을 대신해 혼이 났다. 어쩌면 중국을 대신해 혼이 나는 날도 많았다. 회사가 무리해서 사업을 진행할수록 공장의 잘못이 곧 그녀의 잘못이 되는 날이 늘었고, 공장의 잘못은 곧 중국의 잘못이며 중국의 잘못은 곧 중국인인 그녀의 잘못이 되어버린 것이다.
상사의 짜증은 곧잘 고성으로 번졌다. 무시는 빠르게 진화한다. 그녀를 향한 무시는 경멸로 진화하여, 이제는 일이 아닌 다른 일에도 '중국인라서'라던가 '짱깨가 뭘 알아?' 수준까지 가버렸다. 하루는 울면서 뛰쳐나가는 그녀를 보며 아무것도 해줄 수 없는 내가 너무나 무기력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언젠가 저 무시와 경멸이 그녀가 아닌 내게 향할 수도 있다는 공포를 본능적으로 느꼈던 것 같다.
그녀의 수치심을 그녀 몰래 나눠 가지며, 두어 시간 지하 창고에서 보내는 일이 외려 도피처럼 느껴질 무렵이었다.
"그동안 참았는데 더 이상은 안돼. 어떻게든 매출 만들어와."
_Vol.2
아, 맙소사.
그때 알았다, '오호라, 내 직무는 매출 만들어내는 거구나...'
부끄럽지만, 매일 같이 온라인 판매 채널에 올라가는 상품의 이미지만 기계처럼 찍어 내고 상품 출고만 하니 내 직무가 무엇인지 그때까지 알지도 못했던 것이다.
그런데 대체 이런 직무를 대체 뭐라고 부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