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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필 Feb 18. 2021

할머니와 손자

한의원에서 오시는 환자분들은 생각보다 다양한 소개 경로를 통한다. 아주머니가 치료받고 좋아졌다며 다음에는 남편을 데리고 온다. 아버지가 와서 치료받고는 딸을 데리고 오거나, 반대로 딸이 치료받고 아버지를 소개하기도 한다. 치료받은 한 남자분이 직장 동료를 데리고 같이 내원한 적도 있다. 모든 경우가 감사하기 그지없으나, 그중에 잊을 수 없는 순간이 있다.


20대 남자 환자분을 여러 번 치료했다. 아팠던 허리가 생각보다 빨리 좋아져서 나와의 라포(rapport, 친밀함)도 상당히 깊어졌다. 어느 날, 그분이 머리가 허옇게 센 할머니를 옆에서 부축하며 들어왔다.


"저를 어렸을 때부터 키워주신 할머니예요. 여기저기 아프신데 잘 좀 부탁드립니다."


손자가 할머니를 모시는 경우는 흔치 않았다. 그 한 마디는 수십 년 전 기억을 소환했다. 나 또한 어렸을 적 할머니와 함께 살았기 때문이다. 맞벌이하느라 바쁘신 부모님을 대신하여 할머니는 나와 형을 몇 년간 키워주셨다. 


워낙 어렸을 때라 할머니의 노고를 제대로 기억하지는 못 한다. 이제 아이를 낳아 키워보니 당시 할머니 연세로는 감당키 어려웠을 중노동이었음을 깨닫는다.


지금은 하늘로 떠나버린 할머니를 살아생전 이렇게 챙겨드리지 못한 데 부끄러움이 일었다. 그 날 봤던 할머니와 손자는 그 자체로 나에게 묵직한 여운을 주었다. 


2021. 2. 18(목) 퇴근 무렵에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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