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원에서 오시는 환자분들은 생각보다 다양한 소개 경로를 통한다. 아주머니가 치료받고 좋아졌다며 다음에는 남편을 데리고 온다. 아버지가 와서 치료받고는 딸을 데리고 오거나, 반대로 딸이 치료받고 아버지를 소개하기도 한다. 치료받은 한 남자분이 직장 동료를 데리고 같이 내원한 적도 있다. 모든 경우가 감사하기 그지없으나, 그중에 잊을 수 없는 순간이 있다.
20대 남자 환자분을 여러 번 치료했다. 아팠던 허리가 생각보다 빨리 좋아져서 나와의 라포(rapport, 친밀함)도 상당히 깊어졌다. 어느 날, 그분이 머리가 허옇게 센 할머니를 옆에서 부축하며 들어왔다.
"저를 어렸을 때부터 키워주신 할머니예요. 여기저기 아프신데 잘 좀 부탁드립니다."
손자가 할머니를 모시는 경우는 흔치 않았다. 그 한 마디는 수십 년 전 기억을 소환했다. 나 또한 어렸을 적 할머니와 함께 살았기 때문이다. 맞벌이하느라 바쁘신 부모님을 대신하여 할머니는 나와 형을 몇 년간 키워주셨다.
워낙 어렸을 때라 할머니의 노고를 제대로 기억하지는 못 한다. 이제 아이를 낳아 키워보니 당시 할머니 연세로는 감당키 어려웠을 중노동이었음을 깨닫는다.
지금은 하늘로 떠나버린 할머니를 살아생전 이렇게 챙겨드리지 못한 데 부끄러움이 일었다. 그 날 봤던 할머니와 손자는 그 자체로 나에게 묵직한 여운을 주었다.
2021. 2. 18(목) 퇴근 무렵에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