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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필 Feb 14. 2021

허리 다치고 깨닫다

택배 물건 몇 개를 들다가 허리를 삐끗했다. 자세를 잘 못 잡아서 척추 인대와 근육이 버티다 못해 쭉 늘어난 모양이다. 다친 순간부터 허리를 굽혔다 펴는 동작은 물론 앉기조차 힘들었다. 


아는 분과 점심 약속이 있어 차를 타야 하는데, 허리를 숙일 수가 없어 좌석 높이를 최대한 낮추고서야 겨우 탈 수 있었다. 내릴 때는 한 번에 못 내리고 차 문턱에 엉덩이를 한 번 걸치고서야 겨우 나갈 수 있었다.


이런 볼썽사나운 쇼를 몇 번 치르고 나니 다치기 직전까지 멀쩡했던 허리가 몹시 그립다. 허리가 낫기만을 절실하게 바라는 순간 , 이런 생각이 든다. 


요즘 줄넘기를 할까, 달리기를 할까, PT를 받아볼까, 필라테스를 받아볼까 고민했는데, 그 모든 상념이 사라진 것이다. 지금 내 허리 상태에서는 하나하나가 다 사치스러운 선택이다.


정반대로, 병상에 누워서 거동조차 힘든 환자에게는 나 정도 몸 상태는 몹시 부러웁다. 아파도 좋으니 걸을 수만 있기를 열렬히 바랄 것이다. 


그래서 행복이란 절대적인 조건의 충족이 아니다. 내 결핍이 누군가에게는 만족임을 깨닫는 순간, 행복감과 불행감은 종이 한 창 자이가 된다. 또 현재의 당연함이(지금 나의 건강이나 나이 등등) 언젠가 결핍이 될 수 있음을 안다면, 지금의 당연함조차 감사하고 행복해할 이유가 된다. 행복, 그건 아무것도 아니다. 


2021. 2. 14(일) 설 연휴 마지막 날에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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