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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필 Apr 22. 2023

나는 도서관에서 책을 빌린다.


책을 좋아한다. 누구나 그렇듯 하늘에서 갑자기 뚝 떨어진 습관은 아니다.


어머니의 영향이다. 학교 선생님이셨던 어머니는 집에 책을 잔뜩 사다 놓으셨다. 밖에 나가는 걸 즐기지 않았던 나는 집히는 대로 아무 책이나 보았다. 덕분에 그 나이에 맞지 않는 책을 일찍 접했다. 초등학교 때 이문열의 '사람의 아들'·'삼국지', 조정래 대하소설 '태백산맥'·'아리랑'을 읽었다.


나중에 서울로 올라와 홀로 자취를 하며 책과 좀 멀어지긴 했으나, 서점이나 도서관을 보면 설레는 느낌은 여전했다. 비 오는 날 카페에서 책 한 권 읽는 행동은 최고의 호사였다.


읽을 책은 보통 직접 샀다. 대한민국에 중고서점 열풍이 불면서 알라딘이나 yes24 중고서점에 들러 한 무더기씩 책을 사곤 했다. 어느덧 책장이 가득 찼다. 책장을 더 늘릴 수는 없어, 안 보는 책을 버리고 남은 공간에 새 책을 구겨 넣었다. 그것도 어느덧 한계에 부딪혔다.


공간의 부족함보다도 가장 큰 문제는 안 읽은 책이 켜켜이 쌓인다는 것이었다. 우연한 기회에 헐값이라는 이유로 샀던 벽돌 책(류시화의 '나는 왜 너가 아니고 나인가'과 같은)들이 아직도 미지의 영역으로 남아있다. '설레지 않으면 버려라'던 '곤도 마리에'의 컨설팅을 받지 않더라도 이대로는 안 되는 상황이었다.


일단 책을 더 이상 사지 않기로 했다. 중고 도서도 사지 않았다. 집 근처 도서관을 다니기로 했다. 인터넷으로 클릭 몇 번이면 사는 책을 도서관에 가서 고르는 건 상당한 성실함을 요구했다. 보통 도서관 운영 시간은 일하는 시간과 겹치지 않는가?


주말 아침에 도서관을 간다. 책을 고른다. 가지고 간 장바구니에 책 여러 권을 담는다. 집으로 다시 가져온다. 2주 안에 다시 가져다 놓는다.


상당히 귀찮은 일이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꽤 좋았다. 뭔가를 얻는 과정이 험난할수록 그 가치는 더 올라가는 법이다. 쉽게 얻은 책은 안 읽지만, 몸 고생하면서 얻은 책은 그게 아까워서라도 읽게 되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깨달음이 있다. '파킨슨의 법칙'


어떤 일을 하는데 시간을 많이 주든 적게 주든 그 시간만큼 늘어진다는 법칙이다. 실제로 학교에서 그런 경험을 많이 하지 않았는가? 중간고사와 기말고사가 언제인지 미리 알지만 공부는 평소에 하지 않고, 시험 기간이 닥치면 한다.


책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새 책을 사든, 헌 책을 사든 그 책에는 마감이라는 꼬리표가 붙어있지 않았다. 내 것이기에 반납할 필요가 없었다. 그러니까 열심히 읽지 않는다.


도서관에서 빌리면 전산 처리가 되어 마감 기한이 생긴다. 2주가 다가오면 문자가 날아온다. oo 월 oo 일까지 oooo 반납 바랍니다. 그 문자를 보면 정신이 번쩍 들어서 미뤄놓았던 책을 다시금 펼치게 된다. 그렇게 읽은 책이 꽤 된다.


사람의 마음은 나태해지기 쉬워서 무슨 일을 하든 마감이라는 꼬리표를 붙여줘야 한다. 우연히 독서에 적용했더니 상당히 효율적이었다. 알고 봤더니 성과가 좋은 회사나 개인들은 이미 이런 식의 플레이를 통해 상당한 업무 효율을 보이고 있었다.


이른바 '역 파킨슨의 법칙'이다. 휴가 전 날에 일주일 치의 업무를 끝낼 수 있다는 사실. 이 또한 마감 시한을 통해서 생산성을 끌어내는 경우다. 이를 실천하기 위해 오늘도 도서관에 간다. 책을 사서 쟁여놓기만 하는 분들은, 한 번쯤 책에 마감이라는 꼬리표를 달아보기 바란다.(2023.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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