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적 '영심이'라는 만화영화에서 기억 나는 장면 하나가 있다. 주인공인 '영심이'가 장학퀴즈에 나갔다. 주인공을 포함해 4명의 도전자가 있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문제를 맞히면 점수가 올라가지만, 틀리면 감점을 당하는 시스템이었다. 모두가 100점을 기본으로 가지고 시작했다.
쟁쟁한 도전자들에 비해 영심이는 아는 게 없었다. 문제가 나갈 때마다 부저를 울리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 점점 점수차가 벌어지고, 영심이는 꼴등이 되었다. 후반부로 접어들자 문제가 어려워지고 다른 도전자들이 섣불리 도전했다가 오히려 점수가 깎였다. 처음 시작했던 100점보다 깎이는 친구들이 나왔다. 영심이는 아무 문제도 풀지 않았기에 여전히 100점이었다.
어느덧 마지막 문제가 나왔다. "어금니를 영어로 뭐라고 할까요?" 마지막이라는 생각에 자기도 모르게 부저를 눌렀던 영심이. 사회자와 모든 청중의 눈길이 영심이의 입을 향했고, 그녀는 자신감없이 읊조렸다. "몰라요."
"몰라요? Molar? 정답입니다."
영심이가 마지막 문제를 맞히면서 최종 우승자가 되었다.
아주 오래 전 이야기를 꺼내는 이유가 있다. 모두가 하루하루를 뭔가로 채우려고 하지 않는가? 일이나 공부를 하다가 쉬는 시간이 됐는데 몸을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는다. 핸드폰을 꺼내서 뉴스를 보거나, 게임을 하거나, 카카오톡을 하거나, 전화를 한다.
출퇴근할 때도 마찬가지다. 이어폰을 꽂고 영화, 드라마, 웹툰, 유튜브, 틱톡 등을 본다. 잠시도 쉬지 않는다. 일분 일초도 허투루 놔두지 않는다. 밥 먹을 때도 마찬가지다. 그냥 밥만 먹으면 얼마나 허전한지 한 손에는 핸드폰을 들고 있다. 화장실에서도 배설에 집중하지 않고 액정화면을 들여다본다. 스티브 잡스 아저씨가 아주 좋은(?) 물건을 세상에 선물하셨다.
그런데 말이다. 우리의 뇌는 기계가 아니다. 일과 휴식 모두 필요하다. 기계 조차도 일정시간 동안 가동을 하면 멈춰서 열을 식혀줘야 하지 않던가. 쉬는 시간에 핸드폰을 만지면 뇌는 휴식을 취하는 게 아니다. 쉴새없이 쏟아져 오는 정보를 처리하느라 소위 말해 '빠가'가 된다. 장시간 핸드폰을 하면 멍해지는 것도 그러한 이유에서다.
세상에서 뒤쳐지지 않기 위해 여러 정보를 접하는 건 좋다. 하지만 무리하게 빨아들여봐야 머리에 안 남는다. 이미 창고가 꽉 차서 받아들일 수 없기 때문이다. 시간이 빈다고 핸드폰에 손을 대지 마라! 그냥 아무 것도 하지 마라.
머리가 맑아지고, 일처리가 빨라질 것이다. 밤늦게 핸드폰으로 뭔가 하려 말고 잠이나 자라.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라. 미라클 모닝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적어도 핸드폰 앞에서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게 더 낫다.
이렇게 말하는 나도 쉽지는 않다. 다만, 홈런을 치겠다고 예고하고 실제로 홈런을 친 '베이브 루스'처럼 얼마간의 사람들 앞에 약속처럼 내뱉을 뿐이다. 그러면 혼자 되뇌는 것보다 더 지킬 확률이 높아질 테니까.(2023.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