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 일병 구하기
60시간 연수만 채우면 된다. 내년 성과급 기준을 채우려면 연수만 남았다. 듣고 있던 온라인 연수가 종료되는 28일까지 남은 4시간을 더 들으면 딱 60시간. 아, 과제와 시험도 쳐야 한다. 한국에서 다 끝내고 홀가분하게 말레이시아로 떠나면 좋겠지만 학기말 몰아치는 업무 폭탄에 도저히 연수 마무리까지 할 수는 없었다. 23일 방학식 후 남은 연수와 과제, 시험을 마무리하기로 했다. 방학식 다음날 새벽에 말레이시아로 출발하니 연수는 그곳에서 마치게 될 것이다.
24일에는 아버님이 인천공항까지 데려다준다 하셔서 전날 모든 짐을 챙겨 시댁에서 하룻밤을 보냈다. 밤 10시가 넘은 시각. 노트북을 챙겨 오지 않은 생각이 났다. 충전기, 마우스까지 야무지게 가방에 잘 넣어 거실 의자에 고이 두고 왔다. 모바일로 연수 수강은 가능하지만, 과제 제출과 시험 응시는 할 수 없다.
말레이시아에 PC방이 있나? 과제를 제출하려면 한글 프로그램이 있어야 하는데... 한글 자판을 칠 수는 있나? 모르겠다. 가능성 없어 보인다. 아무리 머리를 굴려봐도 다른 대안이 없다.
내년 5월 성과급을 제대로 받으려면 난 왕복 1시간 거리의 집에 다시 갔다 와야 한다. 다른 조건들은 다 만족하는데 달랑 4시간 남은 연수 때문에 성과급 등급이 내려가는 건 좀 억울한 일이다. 등급 간 금액 차이가 얼마인가. 그 돈이면 새 패딩을 살 수 있다. 아이가 크면서 내 옷을 종종 가져가 입는다. 올 겨울엔 2개 있는 패딩 중 하나를 가져갔다. 그래서 난 추운 겨울을 남은 패딩 하나로 돌려 막기 중이었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카키색 롱패딩을 입고 출근했다. 날씨가 조금 풀려주면 코트도 섞어가며 입겠지만 그걸 입기엔 한국이 너무 춥다. 더위보다 추위에 조금 더 강하지만 얼죽코까지는 못 된다.
집에 갔다 오면 밤 12시쯤 되겠다. 남편은 쿨쿨 잔다. 흥, 이럴 때 도움이 안 된다. 성과급 받으면 나 혼자 쓸 거다. 다행히 시간이 많이 늦어 차는 덜 막힌다. 집에 도착해 아군이 모두 진격한 줄도 모르고 거실 의자 등받이 안쪽에서 혼자서 매복 중인 노트북 일병을 구했다. 중요한 장비인 충전기, 마우스도 다시 한번 체크. 창비교육연수원 사이트에 접속해 시험과 과제 메뉴가 잘 보이는지도 체크. 완벽하다. 내일 새벽에 노트북을 시댁 거실 의자에 놓고 가는 실수만 하지 않으면 O.K!
내년엔 패딩 2개로 자유롭게 스타일링할 수 있다. 카키색이 있으니 밝은 베이지색이나 하얀색으로 시도해 봐야겠다. 기왕이면 뒤집어 입을 수 있는 리버서블 스타일로 사야겠다. 한 벌로 두 벌의 효과를 낼 수 있는. 상상만으로도 어깨가 펴진다. 너도 이제 패딩 세 벌(같은 두 벌)이야! 당당하게 걸어. 짜샤!
완벽하다고, O.K!라고 외쳤지만 뭔가, 어딘가 조금 불안한 마음이 가시지 않는다. 아직 뭔가 남아 있는 것 같은 느낌. 이 찝찝함! 떨어져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