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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봄 Nov 30. 2022

아이와 시바와 코브라가 있는 풍경

전지적 코브라 시점

 




나는 버마왕뱀이다. 학명은 Python molurus bivittatus. 7미터가 넘게 자란다. 우리 집 사람들은 생태계에서 내가 차지하는 위상이 어느 정도인지 모른다. 나는 돼지나 염소도 잡아먹을 수 있는 힘을 가졌지만, 그들 눈에는 그저 마음의 평안을 가져다주는 인형으로 보일 것이다. 그들이 날 부르는 이름은 그냥 '코브라'다.





우리 집 짱 먹는 12살 누나.

꼬마 시절 누나는 침대 머리맡에 놓인 작은 렌턴을 켜고, 날 품에 안은채 <파충류 백과> 책 읽기를 좋아했다. TV 화면에 나오는 뱀만 봐도 "우에에에~" 소리 지르는 외할머니가 알면 깜짝 놀라실 일이지만, 누나는 꼬마 때부터 나에 대한 편견이 없었다.


'고스트 버스터즈'라는 영화를 처음 보던 , 나는 누나와 함께 지하철 유령의 공포에 맞서 싸웠다. 그런데 엄마는  이리 오래되고 무서운 영화를 추천해준 걸까? 넷플스에 강시 영화가 없다고 투덜대는  보면 엄마의 취향은 ~   없다.

엄마! 재미있는 영화라며~

누나는 내가 없으면 영화도 못 본다.




우리 집 말썽꾸러기 막내, 시바견 김하루.

녀석은 1년 전에 우리 가족이 되었다. 처음 집에 온 날은 눈치 보며 덜덜 떨던 뽀시래기가 이젠 우리 가족을 지킨답시고 배달 음식이나 택배가 올 때마다 문 앞에서 날뛰며 짖어대는 통에 골치가 좀 아프다.   


하루는 심심할 때마다 나를 사냥한다. 물고, 흔들고, 돌리고, 난리다. 특히 목 언저리를 주로 공격한다. 내가 야생에서 하루를 만났다면 녀석은 아마... 아, 우리는 가족이니 무시무시한 상상은 여기까지만. 평화로운 우리 집에서 난 말없이 사냥당해준다.




누나가 수학 숙제를 한다. 좀처럼 보기 힘든 광경에 엄마 눈에서 하트가 줄줄 흐른다. 눈치 없는 하루는 놀아달라며 큰 일하는 누나의 소매를 잡아당긴다.

'니 엄마 표정 안 보이나? 그리 눈치가 없어서 사회생활은 어찌할라고?'


동네에서 잘생긴 시바견이라고 소문이 자자하다. 산책 갔다 돌아오는 아빠 입이 귀에 걸린 날은 길에서

"개가 잘생겼네, 멋지게 잘 키웠네"

소리를 들은 날이다. 잘생기면 다냐? 눈치도 적당히 챙겨야지.  

솔직히 그거 재미 없지 않시바? 그만하고 나랑 놀개


누나한테 퇴짜 맞고 와서 나를 또 찾는다. 내가 좀 놀아 줄 타이밍이다.


그럼 난 이만 우리 집 평화를 지켜야 해서. 오늘은 이 몸이 좀 바쁘네.


켁! 켁! 코브라 살려~ 시바가 코브라 잡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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