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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봄 Oct 24. 2022

이번 주 수요일엔 살아납니다.

알람 소리도 날 깨우지 못한 지난 수요일 새벽. 문자가 도착했다.


정신이 번쩍!


내 이럴 줄 알았다. 전날 창덕여중에 있는 독서교육지원본부에서 독서토론 연수가 있었다. 연수가 끝나고 집에 돌아오는 밤 길, 제정신이 아니었다.


난 말하는 게 어렵다. 자기소개로 시작하는 낯선 자리라면 더더욱이다. 머리에는 말이 되지 못한 단어가 떠다니다 부딪치고, 깨지고, 뒤엉킨다. 목소리는 듣는 사람까지 긴장하게 만들 만큼 강력하게 진동한다. 샤이샤이 촌년병. 말보다 글이 조금, 아주 조금은 편하다. 혼자 하는 독서는 좋지만,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과 해야 하는 토론은 어렵다. 그러면서 독서 토론 연수는 왜 신청한 거냐?


연수 첫째, 둘째 주는 책을 읽고 개별 질문을 만들고, 모둠원 4명의 질문을 모아 대표 질문을 만든다. 우리 반의 지정 도서는 데이비드 이글먼, 엔서니 브란트의 《창조하는 뇌》다. 뇌과학자와 예술가가 함께 인간의 창의성에 대해 글을 썼다.


“우리는 이미 잘 돌아가고 있는 것도 계속해서 바꾼다.”라는 문장에 의문이 들었다.


이미 잘 돌아간다면 더 이상 바꿀 필요가 없는 것 같지만, 자본주의 사회는 생산과 소비를 멈출 수 없다. 항상 새로운 무언가를 만들고, 소비해야 거대한 경제가 굴러간다. 창의적인 생산이야말로 끝나지 않는 소비를 이끌어 낼 수 있는 원동력이다. 그래서 창의성을 가진 자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리더가 될 수 있는 것인가? 창의성을 강조하는 이유는 자본주의 사회를 지탱하기 위함인가? 이런 생각들이 삐딱하게 떠오르는 문장이었다.


책을 읽으며 계속 뭔가 부족한 느낌이 들었다. 상업과 거리가 있지만 좋은 가치를 추구하며, 소외되는 사람이 없이, 모두를 위한 창의성은 외면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생각 끝에 우리 모둠에서는 

'새롭고 유용하면 창의적인가?(유용성이 있으면, 좋은 가치 추구가 없어도 창의적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만들었다.



독서토론 연수 마지막 셋째 주에는 연수 참가 교사 40여 명이 모두 모여 '월드 카페 토론'이라는 것을 한다. 내일 8개의 모둠에서 만든 질문을 가지고 토론을 하면 된다. 토론 진행은 모둠의 호스트 선생님이 해 주신다. 호스트를 제외한 선생님들은 토론하고 싶은 질문이 있는 모둠을 찾아가 30분간 토론을 하고 또 다른 모둠 테이블로 이동한다.


세상 창의적인 가위바위보로 호스트를 정했다. 이긴 사람 호스트! 문제는 샤이샤이 촌년병인 내가 눈치 없이 가위바위보는 잘해서 우리 모둠의 호스트가 되었다는 사실.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다. 모르는 사람들과 토론을 진행하라고요? 우리 모둠 주제 토론은 망했다. 큰일 났다. 난 죽었다. 아이스를 브레이킹 해야 하는 호스트가 제일 얼어있을 테니… 꼬리에 꼬리를 무는 망한 생각에 종로 시내를 거쳐 집까지 오는 길에 도로 표지판을 제대로 보지 못한 것 같다.


범칙금 통지서200% 납득되는 상황이다. 잠이  달아났다. 신호나 속도위반을  위치가 어디인지 궁금해 문자의 url 클릭했다. 사이트로 들어가니 윈도우상에서 접속하라는 문구가 떴다. 나중에 컴퓨터로 확인해야지 하고 출근 준비를 하는데 뭔가 ~ 하다. 새벽 6시에? 문자를 다시 확인해보니 발신 번호가 010이다. 이런...  낚인 거다. 나의 개인정보는  세계로 훌훌 자유롭게 날아갔다.


출근 후 경찰청 교통민원 24 사이트에 들어가 최근 단속내역을 확인했다. 짜슥~ 망한 생각으로 가득 찬 머리로 운전은 조심조심했군. 최근 단속내역이 없다. 스미싱 문자에 낚이는 백만 가지 방법 중 하나는 바로!

... 월드 카페 토론 호스트가 되는 것이다.


'교통범칙금 문자'를 검색했더니 나랑 비슷하게 문자 사기를 당했다는 사람이 많다. 그들은 어떤 연유로 스미싱 문자에 낚이게 되었을까? 스미싱 사기꾼들을 창의적이라 말할 수 있을까? 이런 질문으로 독서 토론하면 재밌겠다는 쓸데없는 생각만 떠오르니... 얼른 내일이 지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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