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한 여자 아이입니다"
내가 태어나는 순간 또 다른 세상이 나에게 성큼 다가왔다.
나라는 존재가 어디에서 어떻게 오게 되었는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앞으로 복잡할 것이라는 것은 알았던 것 같다.
어릴 적부터 나는 여느 또래 아이들과 다르게 세상의 것들에 항상 의문을 가지고 무엇이든 쉽게 받아들이기를 어려워하였으며 인간으로 태어나 한계가 있는 부분들에 대해서 항상 고민하고 때로는 슬퍼했다. 다른 친구들이 놀이터에서 한창 뛰어놀고 누가 더 힘이 센가 겨루면서 패배한 친구가 본인이 가지고 있던 가장 아끼는 유희왕 카드를 빼앗겨 울고 있을 때 나는 그저 멍하니 내 방 책장 가장 위로 올라가 부뚜막에 앉은 고양이처럼 밖을 내다보며 이를 지켜보았다.
그러면서 유희왕 카드 한 장쯤이야 인생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을 왜 슬퍼하고 눈물을 흘릴까 시간이 참 아깝다고 생각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어리기 때문에 가질 수 있는 순수함과 영혼이 깃들어 있던 그렇지 않던 자신이 사랑하는 어떤 것이 있다는 것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것만 해도 축복받은 일인데, 그때의 나는 그렇지 못한 아이였기에 더 우울하고 힘들었을지도 모른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쓴 일기에,
학교란 학문을 가르치는 기관이지만, 한 인간으로 태어나 사회집단에 속하여 여러 활동을 하며 삶을 배우고 인간세상에 잘 적응을 하게끔 만들어진 건물일 뿐이다.라는 문구가 있었는데 이 글을 보며 마냥 천진난만한 아이였으면 좋았으련만 하는 마음에 가슴이 울컥했다.
어른이 되어서는 더 많은 것을 겪고, 배우고, 알게 되어 어릴 적의 나 보다
한층 더 업그레이드된 고독한 철학가가 되었다.
본래 꿈은 CSI 과학수사대처럼 인간으로 태어나 씻을 수 없는 죄를 지은 사람들을 찾아내어 반드시 죗값을 치르게 만들기 위해 유전자공학과에 진학 후 국립과학수사원에 입사하여 세상의 범죄와 윤리, 나라의 청렴을 위해 이바지함과 동시에 멋있는 커리어 우먼이 되기를 꿈꾸었다.
하지만 고등학교 시절, 나의 행복에만 초점을 두어 하고 싶은 일들을 노트에 모조리 적어보았다. 수만 가지의 하고 싶은 것들 중 공통적으로 '자유' 그리고 '다른 세상과 문화'라는 것이 결국 내가 원하는 삶이라는 것을 깨닫고 가장 빠르고 효율적이게 이뤄낼 수 있는 직업이 무엇인가 생각하여 끝내 객실승무원이라는 꿈을 갖게 되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3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코로나 이전 공채 풍년이던 항공사들은 그 해 초 모든 항공업계가 코로나라는 직격탄을 맞아 앞길에 갈피를 못 잡는 시기와 기가 막힌 타이밍으로 나는 졸업을 했다.
처음에는 코로나를 원망하기도, 내가 태어난 해를 원망하기도 하였지만
곧네 변할 수 있는 사실은 내 마음가짐뿐이라는 것을 깨닫고 여러 일들을 찾아 나섰다.
그리고 나 자신과 타협했다. 선택과 집중 그리고 준비된 자세와 기다림.
사회에 처음 벌거벗은 채로 나와 수많은 날들을 날 병들게 한 회사부터, 인생의 좋은 연을
만나게 해 준 회사, 그리고 많은 가르침을 주었고 인간관계에 대해 더욱 깊게 배울 수 있었던 회사. 여러 곳을 떠돌아 현재 나는 다시 제자리로 돌아와 좀 더 나에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을 갖고 있다.
열심히 하는 것은 하기 싫은 것을 억지로 하는 것이라 하여 나는 주어진 시간에 자연스레 몸을 담고 살아가고 있다. 몸과 마음이 많이 괴롭고 지치는 때가 있다 하더라도, 여기서 내가 더 잘할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애써 노력하는 것 자체가 나를 더 괴로이 만들 수 있는 생각이라는 깨달음을 얻고 현재 내가 살아갈 수 있는 값진 시간이 주어 진 것 만으로 감사함을 느끼며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