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성을 존중하는 것으로 부터
"인간관계는 늘 힘들어요.."
사람이면 누구나 입에 달고 사는 말.
나 역시 늘 관계의 늪으로부터 겪는 어려움에 사무치게 힘든 나날들이 있었다.
까마득한 학창시절 나는 사뭇 지금의 내 모습과 많이 달랐다. 여자아이 치고는 너무 당차고 개구쟁이 남자 아이들 마냥 장난치는 걸 좋아하는 말괄량이 소녀였달까. 물론 세월이 흘러 다양한 사회를 겪으면서 조금은 여성스럽게 보이는 방법을 자연스레 터득하였지만 나는 아직도 여전히 어릴적 나의 모습만큼 순수하고, 티 없이 맑았던 때가 없는 것 같다.
가끔 길을 걷다 보면 나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이 한없이 낯설때가 있다.
같은 인간이지만 각기 다른 생김새 부터, 옷차림, 하물며 걸음걸이까지 천차만별이다.
최근에는 MBTI 가 대세인만큼 더욱 많은 사람들이 서로 다름을 존중할 수 있는 매개체가 생겨나고 있다.
직장에서, 소개팅 장소에서, 하물며 일부 기업에서 면접시 구직자의 MBTI 유형을 요구하거나 특정 직무에서 선호하거나 배제하는 MBTI 유형을 구인광고에 등록하는 등 사람의 성격 유형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이 대단한 만큼 많은 이들에게 연구 대상이다.
인간은 모두 주관적인 생명체라 본인을 닮은 것에 끌리고, 다른것에 경계심을 느낀다.
하지만 이런 매개체가 늘어날 수록 사람들은 더욱 스스로에 대한 자부심을 갖고, 더욱 스스로를 특별한 존재라 여기며 더이상 내가 어떠한 사고와 행동을 하여도 이는 다른 것들과는 다를 뿐, 전혀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과거의 나는 나와 조금이라도 결이 맞지 않거나 전혀 다른 성향을 가진 사람들을 가까이 하지 않았다.
사회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접하면서 결코 사람과 더불어 살아가기 위해서는 더이상 이렇게 살면 안되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면서 내 스스로 포용할 수 없었던 많은 것들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고, 이 사회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이 결코 내 뜻대로 해서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라는 것도 배웠다.
처음으로 대기업에 입사 했을 때 나는 부푼 마음을 안고 입사했다.
첫 출근 날 사무실에 가게 되었을 때, 도서관 보다도 조용하고 삭막한 분위기에 내 성향으로는 여기서 도무지 근무를 하다가 퇴사 전 숨막혀 죽어버릴 것 만 같은 느낌에 출근 3일차 빠른 퇴사를 결심하였다.
IT 계열의 회사였지만 내가 속한 부서는 전반적인 기획 업무를 담당하는 부서였고 나는 주로 회계 업무를 담당하였다. 그래서 그런지 사원들은 주로 전형적인 공대생 스타일에 생각보다 소극적이고 조용한 연구실이나 환경에 익숙해져 있는 사람들이였다. 나 같이 정적을 버티지 못하고 속히 '오디오 비는 것' 을 싫어하며 조용한 분위기 보다는 광란의 파티가 더 좋은 파티피플과는 한마디로 상극이였던 것 이다.
3일만에 퇴사를 결심했지만 역시 인간의 적응력은 그 어떠한 힘보다도 강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입사 후 한달차 되던 날은 모든 업무가 익숙해져 제법 업무를 즐기는 시간이 찾아오자 언제 또 그랫냐는듯 지루한 루틴을 일상이라 부르며 그저 그렇게 보냈다.
업무가 익숙해지니 내 업무에 필요이상의 간섭을 하는 일명 '꼰대' 팀장 덕에 회사 생활에 적신호가 울린 적이 수도 없이 많았다. 처음에는 서로 다른 상극의 성격과 업무성향 덕에 배울 점도 많고 내 방식으로는 도달할 수 없는 사고에 도달 할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하기도 했다. 처음에 팀장은 나에게 매우 우호적이였으며 작고 사사로운 업무들 마저도 도움을 주려했고, 가끔 있는 아주 작은 실수들에 관해서도 너그러이 이해해주고 내 뒤를 챙겼다. 하지만 어느정도 업무에 적응이 되고 연차가 쌓이면서 내가 맡은 업무에 관해서는 나보다 잘 아는 사람이 거의 없는 정도의 수준에 미쳤을때 마저도 팀장은 내게 시시건건 유치원 아이 가르치는 것 마냥 말도 안되는 간섭을 하며 나를 치를 떨게 만들었다.
모든 일에는 융통성이 있어야 하며, 아무리 정해진 규율이 있더라도 시시각각 변하는 상황에 맞게 유도리 있게 업무를 진행해야 한다는 내 입장과 어떤 일도 무조건적인 규칙이 있는 한 효율성이 떨어지더라도 그에 맞게 따라야 한다는 팀장의 성향이 날이 갈수록 지극한 스트레스로 돌아왔다.
직장 상사이기 때문에 사원으로서 따르는 것이 맞기에 나는 군말없이 따랐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내 개인적인 업무에 까지도 간섭을 하면서 본인의 주장만을 따라 이행하기를 바랬던 것이다.
예를 들면 내가 개인적으로 다른 사원에게 일정 기한 메일 회신을 주기로 한 기한이 있는데 그 전까지 몇시간 단위로 그 일에 대해 지속적으로 묻는 다던가, 자그마치 23년도에 화장실 가는 것 마저도 눈치보게 만드는 그의 행동들은 우리팀을 매너리즘에 빠지게 만들었고 시간이 갈 수록 지쳐가기만 했다. 결국 피해자(와 같은) 중 한 사원의 불만이 폭발하게 되면서 팀장과 언성을 높이는 해프닝이 생기면서 팀장은 나머지 팀원들의 신뢰마저 잃게 되었다.
지나고나면 모든게 다 배움의 과정이라고 하였는가. 물론 생각해보면 가끔 '그때 그러지 말걸' 이라며 까만새벽에 이불퀵을 날린 날도 수두룩하다. 하지만 어차피 다시 한번 그때로 돌아가 내 행동을 만회할 무엇인가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 하더라도 나는 그때와 똑같은 말과 행동을 했을 것을 뻔히 알기에 금새 나를 다독이고 있는 스스로를 마주한다. 그리고 어느 집단에 속해도 또라이는 분명 존재한다는 일명 '또라이 총량의 법칙'을 마음 한켠에 되새기며 어딜가나 그런 사람 한 두명 쯤은 거뜬하게 상대할 마음가짐을 갖고 항상 준비된 자세로 임하고 있다. 그러니 내 글을 읽게 되는 독자들도 부디 직장에서나 또는 학교에서 유독 본인을 힘들게 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이런 '또라이 총량의 법칙'을 꼭 기억하길 바란다. 나 스스로가 유별나고 독특해서 인간관계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누구나 다 똑같은걸 겪으며 산다는 것을 인지한다면 조금은 인간관계로 부터 받는 스트레스를 덜 수 있을 것이다.
이 우주에 나 자신을 제외하고 나와 다른 모든 것들을 존중하면서 가끔 다름에서 오는 불편함과 고독한 외로움, 그럼에도 공생 할 수 밖에 없는 것이 피할 수 없는 숙명이자 우리의 삶이 아닌가 생각한다.
사랑하는 관계, 증오하는 관계, 또는 둘 모두인 관계. 여러 관계들이 복합적으로 뒤섞이면서 순환이 되고, 결론적으로는 살면서 어느 시기가 되었던 관계의 총량은 유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