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이란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한 것!
‘사실이란 무엇인가?’라고 누군가 내게 묻는다면,
‘존재하기도, 존재하지 않기도 한 것’이라고 답할 것이다.
———
인간은 사물이나 현상에 대해 저마다의 관점으로 주관적인 해석과 판단을 한다.
그렇기에 사실이란 지극히 상대적일 수밖에 없다. 주관적 해석에 따라 사실일 수도, 사실이 아닐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해를 돕기 위해, 한 가지 단적인 예를 들어 보자면,
“A는 착한 사람!”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누구는 그것을 사실로 받아들이고 누구는 말도 안 된다며 부정할 수 있다.
인간은 본인의 경험과 관점에 따라 해석을 달리하기 때문인 것이다.
—
하지만 여기에도 예외가 있다.
누구에게나 보편적으로 사실인 것이 존재한다. 바로 수학과 과학이다.
‘1 + 1 = 2’
‘지구는 둥글다.’
이를 누가 부정할 수 있단 말인가.
물론! 누군가 부정할 수도 있다. 철학적/인문학적 관점으로 보면 또 다른 생각이 나올 수도 있으니 말이다.
그 외에는 과연 어떠한 논리로 부정할 수 있을지 상상이 가지는 않는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보편적’ 사실이라는 것에서는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을 거라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여기서 인지하고 있어야 할 것이 있다. 이마저도 홀로 존재할 수는 없었다는 것이다.
누군가 규정 지음으로써, 이름 붙임으로써 사실이 될 수 있던 것이다.
그 이전엔 그저 하나의 현상에 지나지 않았다.
—
누군가에게는 이 말이 엄청난 궤변으로 느껴질 수도 있다.
왜인지 아는가?
내가 지금 하는 이 말 또한 사실일 수도, 사실이 아닐 수도 있기 때문이다.
각자의 관점에서 내 말에 동의하는 누군가에게는 사실로, 동의하지 못하는 누군가에게는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받아들여질 테니 말이다.
이 통찰의 핵심은 이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규정되고, 명명된 사실에 매몰되지 않도록 늘 경계해야 한다는 것.
이러한 고정된 생각은 자유로운 사고를 막기 때문이다.
지금 생각나는 가장 좋은 예가 하나 있다.
‘천동설, 지동설’이다.
천동설에서 지동설로 넘어가기까지는 정말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다.
한번 정립되고 명명된 ‘천동설’이라는 사실이 사람들에게 고정된 생각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고정된 사실 속에서 ‘지동설’을 생각할 수 있었던 것은, 누군가는 정립되고 규정된 사실에 매몰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창의적인 생각을 하고 싶다면, 우리의 일상을 채우고 있는 ‘사실’들을 다른 관점으로 바라보고, 때로는 의심해 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