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라떼

by 이수

* 표준어는 '카페라테'입니다.



'나는 뭘 좋아할까?' 생각하자마자 떠오른 단어다. 따지자면 모든 라떼 종류를 다 좋아하는 게 아니라 딱 카페라떼 한 종류를 특히 더 좋아한다. 내가 몸담고 있는 대한민국은 어떤 것 하나가 유행이다 하면 기다렸다는 듯 끝을 보고야 마는데 두바이초콜릿과 달고나, 소금이 토핑을 넘어 세상을 점령했을 때에도 나는 변함없이 카페라떼와의 의리를 지켰다. 물론 카페라떼는 바란 적 없고 내가 알아서 옆을 지킨 것이지만 마침내 주종목이 한우물파기였던 터라 그동안 한삽한삽 파뒀던 내 우물에서 함께 몸을 피할 수 있었다.


아직까지 카페라떼는 다른 커피에 비해 비싸지 않은 편이다. 에스프레소나 아메리카노가 가장 싸고 대체로 그다음이 카페라떼다. 비싼 것에 갈등을 멈추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적당한 가격은 굉장히 큰 메리트가 된다. 너무 먹고 싶은데 편하게 마실 수 없다면 너무 슬프니까 나는 내 행복 중 하나가 아주 비싸지 않아 줘서 고맙다는 마음이다.

카페라떼는 가격만큼이나 만드는 방법도 무척 간단한 편이다. 준비된 컵에 우유를 채우고 에스프레소샷을 넣으면 완성이다. 흰 우유의 고소함과 커피의 쌉싸름한 맛이 함께 느껴지는 게 좋다. 그리고 아메리카노나 차처럼 마구 찰랑이지 않고 조금 더 밀도 있는 게 입과 몸에 오래 남는 느낌이라 해야 할까, 우유도 무척 좋아하는 나로서는 좋아할 수밖에 없는 이유 중 하나다. 우유가 내 몸에 더 오래 남는다고? 두 팔 벌려 환영이지!


너무 당연한 말이지만 카페마다 음료의 맛은 다 다르다. '점바점'이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심지어 유명 프랜차이즈 브랜드에 같은 지점이어도 누가 어떻게 내리냐에 따라 달라져버린다. 만드는 게 간단하다고 해서 예외가 되진 않았다. 이런 소리가 무색하게도 나는 이 카페는 어떻고 저 카페는 어떻다-처럼 맛비교를 제대로 하지 못한다. '우유맛이 더 강하다' 라거나 '커피가 진하다'처럼 당장 느껴지는 맛에 대한 서술은 할 수 있지만 이전에 마셨던 라떼를 떠올리며 우위를 따지기는 어려운 것이다. 라떼라는 이유 하나로 만족해 버리는 이유가 큰 것일까. 입맛이 까다롭지 않은 운을 타고난 덕에 어지간히도 이상한 맛이 아니면 매번 감동하며 먹는 중이다. 덧붙이는 소리지만 두 달쯤 전 어지간히도 이상한 맛도 경험해 버렸다.(웃음) 작년 초여름 남자친구 W와 작은 동네카페 창가에 앉아 이런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어느새 20대 중반이 되었고 W를 만나며 더 자주 카페를 다녔지만 딱히 남는 데이터가 없는 것 같아 아쉬움을 느꼈던 때였다. 특색 있는 시그니처 메뉴들을 좀 더 먹어볼걸 그랬어요, 가본 카페는 많은데 먹은 메뉴는 거의 카페라떼 밖에 없네요 하고 건조하게 말하는 내게 W는 ”대신 누구보다 카페라떼는 잘 알 것 같은데요ㅎㅎ“라고 위로해 줬다. 그 말에 감명받아버린 나는 이제 아쉬움 없이 카페라떼를 주문하는 사람이 되었다. 그래도 지금은 다른 도전도 하나둘씩 해보는 편이다. 그렇지만 아무리 만족스러워도 마음 한 구석에선 괜스레 그립곤 하는 것이다. 그럼 생각한다. 나는 어쩔 수 없구나!


음료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차갑거나 뜨겁거나. 이곳 계절도 점점 닮아가는 것 같아 걱정이다. 아무튼 여름엔 시원한 카페라떼, 겨울엔 뜨거운 카페라떼를 챙겨 먹는다. 나는 시원한 카페라떼의 얼음이 녹아가며 밍밍해지는 맛도 꽤나 좋아해서 일할 때 텀블러가 있어도 옮겨 담지 않고 녹으면 녹는 대로 마시는 편이다. 반대로 뜨거운 카페라떼가 온기를 잃고 냉랭해져도 좋다. 그렇게 처음 같지 않아도 마음에 들어 하는 내 모습을 인지할 때면 난 정말 라떼를 좋아하나 보다 새삼 깨닫는다.


이제 라떼에 디저트를 담가먹는 경지에 이르렀다. 따듯한 라떼와 마들렌, 휘낭시에 조합으로 많이 먹곤 하는데 혹시 따라 해본다면 휘낭시에를 추천해주고 싶다. 적당한 크기로 포크에 찍어서 담갔다 빼면 달달한 휘낭시에 속에 라떼가 스며들어 촉촉하고 따듯한 게 자동으로 눈이 감길 만큼 좋다. 일부러 의도하지 않아도 콧소리가 나오는 맛이다! 라떼위를 덮고 있는 우유폼이 살그머니 묻어나는 것도 아주 좋은 포인트다. 커피와 우유라 단맛이 중화가 되어 조화롭기까지 한 게 다른 라떼로 갈아탈 수 없는 요소 중에 하나이기도 하다. 혹시나 담그다가 디저트가 빠져도 괜찮다. 다 먹을 즘엔 별미가 되어있을 것이다.


언제는 평소처럼 W와 카페에 앉아 음료를 시키고 -물론 나는 카페라떼였다- 각자 할 일도 하고 잔잔하게 이야기 나누며 시간을 보내는데, 그 순간의 불안 없는 소소함이 너무 행복해서 같이 와준 W에게 이 마음을 전하고 싶었다. 냅킨에 한 자 한 자 마음을 눌러 담아 건넸다. 그중 일부를 함께 쓰겠다.


아직 9월인데 초겨울 같은 밤이에요. 올 겨울은 따듯한 라떼를 더 많이 챙겨 먹어야지.
먹고 질끈 눈을 감아야지. 이거 시키길 잘했다며 열 번씩 말해야지. 라떼는 항상 옳으니까.


그 겨울이 올해의 끝과 함께 성큼 다가와있다.






수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