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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땡땡책협동조합 Nov 14. 2017

“억압받는 자”를 자칭한 민중에 답하라

<마을이 세계를 구한다>와 <현대인도저항운동사>

 처음엔 모든 것이 혼란스러울 때가 많았다.


처음부터 시민단체로 분류되었던 ‘청주지역 청년모임 일하는사람들’이라는 단체에 선배의 권유로 1인 상근자 일을 시작할 때, 기존의 노동/빈민/농민 운동과 별개의 영역, 그러니까 당시 민중운동 진영과 구별되는 방식의 시민운동을 한다는 자각이 컸던 건 아니었다. 당시 워낙 지역사회의 논의들 자체가 이렇게 흘러가다보니 내가 나의 활동들을 어떤 방식으로든 정의하기보다는 차라리 다수의 활발한 학계 중심의 논의에 휩싸여 흘러간 측면이 더 크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그렇게 나는 시민운동활동가가 되었다.     


청주 지역에서 시민운동이 민중운동과는 별개의 영역으로 확연하게 자리 잡은 건 어쨌든 김대중 국민의 정부 출범부터였던 것 같다. 당시 더 이상 기층 민중을 중심으로 하는 사안별 부문운동이 아니라 마을로, 지역으로 들어가서 시민들의 참여를 조직하는 방식, 그리고 이데올로기가 제거된 공공/공익적 활동들을 대변한다는 시민운동이 나름 대세를 형성하고 있던 때가 아마도 내가 본격적으로 삶의 방향을 활동가라는 방식으로 재구성할 때가 아니었나 싶다.     


그렇게 떠밀리듯 시민운동 진영에 자리를 잡는 순간부터 나에게 마을 혹은 지역을 중심에 놓아야 한다는 명제는 거의 숙명이었다.


정확히 마을이 무엇인지, 지역중심성이라는 것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아니면 생활세계라는 체계가 과연 기존의 이데올로기와 다른 층위의 무엇일 수 있는지를 고민해볼 생각도 없이 흘러들어간 시대가 아니었나 싶다.     

여하튼 당시에 무슨 바이블처럼 활동가들 사이에서 읽히던 책이 마하트마 간디의 <마을이 세계를 구한다>였다. 다들 기존의 반이데올로기 정서들이 강해지던 시대에 더 이상 어려운 이념 서적이 아닌 실생활을 중심에 둔 새로운 이론 서적을 구할 때여서인지, 아니면 더 이상 국가나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이야기들보다는 우리의 생활영역을 중심으로 하는 이야기들에 좀 더 열광적인 호응이 쏟아지던 시대여서인지.


나 또한 크게 다르지 않게 저 책을 탐독했었다. 뭔가 묘하게 나의 고민들에서 한 발짝 비켜나가는 것 같은 이질감이 있었지만 그래도 읽어야 할 것만 같은 시절이었달까?     


그렇게 마을이라는 다소 모호한 영역 안에서 아이들을 만나고 학부모들과 싸워가면서 새로운 활동 영역을 개척한다는 명분을 걸고 스스로 더 큰 모호함 속에서 지낸 몇 년간이었다.


과연 마을은 어떻게 대안이 되는 것이고 이것이 기존의 자본주의체제에 대항하는 활동들과 어떠한 차별점을 가지며 사회를 재구성해가는 것인가에 대한 명확한 상이 잡히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주민인 것처럼 주민운동을 하는 후회감이 들었던 시기이기도 했다.     


이 책은 간디가 다양한 경로를 통해서 발표한 글들을 스와라지라는 하나의 카테고리로 발췌해 모은 책이다. 자치와 자립, 상호존중과 협력을 바탕으로 우리가 만들어나가야 할 미래세대의 희망은 “아무런 강제와 무력이 없고 모든 활동이 자발적인 협력으로 이루어지는 작고 평화롭고 협력적인 마을에 있다.”는 선언이 핵심이다. 

자본주의 경제체제와 자립경제의 대비, 경쟁과 협동의 대비, 가장 크게는 도시에 대한 부정을 바탕으로 마을이라는 대안의 영역들을 제시하는 책이다.


그런데 이 책은 나에겐 종교적 잠언처럼 읽히는 경향이 있었다. 이는 인도 사회라는 실체에 대한 분석이 드러나지 않는 대신에 거기에 “상호존중과 사랑”이 자리함으로써 낭만화된 이상사회를 그린다는 느낌이 강했기 때문이다. 나 스스로 워낙 이미지화한 인도라는 국가 이외에 구체적인 사회의 실체를 알려주는 자료를 읽지 못했던 터라서 더욱더 종교적 영성 이미지가 강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나는 이럴 때마다 고약한 심성이 발현되어서인지 몰라도 “실제 인도가 그래?” 혹은 “이게 인도사회의 대안이 될 수 있었을까?” 비꼬듯 묻게 된다.   


과연 인도라는 사회가 간디의 마을자치를 중심으로 둔 이런 사상에 어떤 식으로 영향받고 수많은 난제들을 극복하고 새로운 사회를 만들어나간다는 것인지 궁금해진달까?     

그럴 때 단편적으로 혹은 풍문처럼 들려온 인도라는 사회에 대한 이야기는 나에겐 매우 당혹스러울 뿐 아니라 인도의 종교 혹은 관념적 철학자들에 대한 강한 회의감을 주었다.     

인도는 과연 우리가 추구하는 대안사회의 어떤 측면을 보여주는 것일까?

운동은 과연 종교화된 잠언들 안에서 이루어지는 영역일 수 있을까?


이러한 종교적 잠언들이 가지는 힘이라는 것은 더욱더 이상화되고 허구화된 이미지를 생산할 뿐, 그 안에서 소위 민중이라는 사람들의 삶은 더욱더 파괴되어가는 것이 아닐까 하는 의심들.     


왜 인도라는 사회에서 그 끔직한 체제 내 폭력, 국가 혹은 권력에 의한 폭압적 인권유린들이 자행되어오면서도 우리는 이런 이상화된 사회의 그림을 인도에서 보게 되는 것일까 하고, 여전히 어떤 회의감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편이다.      


그런 면에서 보자면 차라리 <현대인도저항운동사>가 보여주는 인도 사회의 민낯, 그 치열한 저항의 역사 속에서 우리의 대안들, 우리 지역이나 마을이 꾸려나가야 할 활동의 방향을 찾을 수는 없는 것일까?     

어쩌면 우리는 오랫동안 현실에 개입하고자 했으나 그 현실에 올바른 비판도, 제대로 된 개입도 하지 못한 것은 아닐까?

우리는 어떻게 자신의 활동 터전으로 삼고자 하는 마을/지역을 냉정하게 평가하고 비판하며 그 안에서 활동 영역들을 만들어가고 있는 것일까?     


국가와 자본주의 체제 같은 거대 영역의 운동에서 마을과 지역이라는 영역으로의 전환이 거대한 분기처럼 우리 활동의 근간을 바꾸는 작업이었다면, 우리는 그것에 맞게 우리가 살아가는 도시, 마을, 지역에 대해서 얼마나 치열하게 연구하고 고민하며 현실에 비판적으로 개입해 들어가고 있는 것인지 한번쯤 되물어봐야 하지 않았을까?     

<현대인도저항운동사>는 인도의 민낯을 보여준다. 그곳엔 어떤 허구화된 운동의 낭만적 이미지보다 모든 저항들이 갖는 고난과 엄혹한 현실이 드러나 있다. 이것이 인도의 모든 것을 보여주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우리가 여행자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단색화된 인도가 아님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인도가 외부세계에 보여주는 단편적인 이상향이 아니라 우리가 힘겹더라도 함께 연대해야 할 아시아 민중, 계급적 천민에서 여전히 자본의 노예화를 벗어나지 못한 노동하는 인간들의 어려운 현실들을 이야기해준다. 어쩌면 나에게 마을/지역은 이래야 했는지도 모르겠다.      


<현대인도저항운동사>를 읽다보면 인도라는 사회가 명망 높은 지도자나 제도 정당에 기대어 전진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오히려 민중의 요구는 바로 민중 스스로에 의해서 주장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힘겹게 증명하며 진행되어왔다는 것이다. 

저발전 상태와 분배 불평등이라는 경제적 현실은 카스트 차별, 여성 차별, 소수 부족민 차별의 문제와 맞물려 인도 민중을 더욱 혹독한 지경으로 내몰았다.      


그에 반해 저 ‘위대한 영혼’(‘마하뜨마’의 뜻) 간디를 필두로 한 민족 지도자들은 농촌 사회 내에 엄존하는 계급 대립을 부정하고 카스트 제도와 지주 기득권을 온존시키며 계급이 조화를 이루는 전통 사회를 이상으로 제시하는 계급 화해 노선을 민중에게 강요한 것이 아닌가 싶다.     


또한 강성 노동운동이 확산될 것을 우려해 자본가들의 후원을 받아 독자 노선의 노조를 설립하고 파업을 금지시켰다. 여성운동에 대해선 자기희생이 인도 전통의 여성적 미덕이라며 관념적 여성상을 내세웠고 명목뿐인 성평등 입법과 지원으로 하층민 여성들의 요구를 외면했다. 공산당 등의 사회주의 제도권 정당들 역시 민중의 요구를 제대로 수렴하지 못하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우리는 이제 인도라는 사회를 바라볼 때, 아니 우리 스스로 마을/지역을 중심으로 활동들을 구성할 때, 간디가 민중을 명명한 “신의 아들, 하리잔”으로 불리기를 거부하고 “억압받는 자”라는 뜻의 “달리뜨”를 자칭한 불가촉천민으로서의 민중에게 답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우리의 운동은 어찌해야 하는가를.          



박영길 '내가 나에게 시비 거는 책읽기'




<마을이 세계를 구한다> 마하트마 간디 


















<현대인도저항운동사> 한형식, 이광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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