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농민의 몫을 빼앗아가는가> 서평
우리는 흔히 질문 안에 이미 답이 있다는 말을 하곤 한다. 아니면 질문하는 위치 즉, 어디에서 질문하느냐 하는 것에서 이미 우리가 취해야 할 지향들이 정해져 있다는 말도 한다.
그러니까 문제는 질문을 제대로 된 위치에서 올바른 방향을 향해 던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질문을 던지는 행위 자체에서 이미 변화의 씨앗이 움트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 의미에서 오래된 문제들은 그만큼 그 문제를 둘러싼 우리의 질문 형식에 어긋남이 존재할 가능성이 있다. 물론 보통의 경우 이런 한 가지 문제 때문에 어려움이 생기기보단 보다 중층적인 관계의 문제들이 도사리고 있는 게 맞지만 그래도 우리는 제대로 질문하는 것이 문제 해결의 출발이라고 믿는다.
농업을 둘러싼 한국적 상황들은 너무나 오래도록 보이지 않는 암흑 속에서 길을 헤매고 있다.
왜 그 수많은 사람들이 농업의 중요성을 이야기하면서도 전혀 나아지지 않는 것일까 ?
우리는 왜 그 어떠한 해결책들을 만들어내지 못하면서 몰락하는 농업을 바라보고만 있는 것일까 ? 이미 수많은 책들과 이야기들 속에서 그 해결 방안들이 제시되었고, 일 년이면 숱하게 많은 사람들이 소위 선지지견학처럼 국내외 우수 사례지 들을 답사하고 글로 이야기로 만들어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르 자비크가 쓴 <누가 농민의 몫을 빼앗아가는가>라는 책도 그중의 하나이다.
우리가 이미 접했을 만한 문제들을 제시한다. 이번에는 농업을 둘러싼 국제적인 먹이사슬 관계를 중심으로 이야기한다. 다만 읽다보면 이것은 하나의 완결된 책이라기보다는 현 시기에 대두되는 문제들에 대한 보고서의 형식이다.
출발은 이렇다.
“...... 우리 농촌도 별반 다르지 않다. 농업을 영위하며 자녀를 키우는 부모들 중, 자녀가 자신과 같은 직업을 갖기를 바라는 사람이 한국 농촌에는 얼마나 있을까? ......”(p.7)
그리고 보고서의 작성자들은 곧바로 농업이 맞닥뜨린 문제의 핵심을, 아니 해결을 위한 중요한 지점들을 이야기한다.
“공정무역 운동이 개입해야 할 생산지에서의 농민 조직화 사업, 소농과 선진국의 무역관계, 그리고 선진국 내부에서의 공정거래 관행 확립에 관한 중요한 시사점을 전해준다.”(p.9)
“농산물 구매업체의 힘은 이전보다 더 크고 집중화되었습니다. 농산물 구매업체들은 수직적 조직화를 확장해 농민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며, 이를 통해 자신의 고객인 식품산업의 요구에 부응하고자 합니다. 식품가공업 또한 빠르게 통합되고 있습니다.”(p.12)
결국 이 보고서의 주요 내용은 공정무역이 진전되어감에도 불구하고 왜 농업에 종사하는 농민들의 삶은 지속가능하지 않는지를 공정무역에 참여하고 있는 농업 관계자들에게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이 문제의 핵심적인 부분들도 보고서의 초반에 이미 드러낸다. 그중 일부는 이렇다.
“대규모 구매업체가 가진 권력 때문에 농업사슬에서는 네 가지 반복적인 거버넌스 패턴이 발생하는데, 즉 수직 통합(위계형 모델), 종속적 계약방식, 관계형 네트워크, 모듈형 사슬이다. 이를 통해 구매업체는 생산단계의 소농까지 통제할 수 있는데, 이는 완전경쟁의 시장모델과는 거리가 멀다.”
“구매업체의 권력남용은 소매 단계뿐만 아니라 생산국을 비롯해 농업사슬의 모든 단계에서 불공정 관행을 낳는다.”
“농업사슬의 권력집중이 시장 자유화, 금융화와 만나 가격 압박과 변동성이 심화되며, 농업체계는 보다 집약적이고 기계화된 영농으로 전환하도록 강요받는다. 이는 결국 다양한 업종과 지역의 소농과 노동자에게 상당한 영향을 끼치고 생계불안과 아동노동, 불안정 고용, 환경 파괴를 가져온다.”(p.21)
이후 보고서는 이후 초국가독점기업들의 문제를 실제 예를 통해 명징하게 보여주고 있다.
결국 많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농업의 미래가 밝지 않은 건 결국 점점 더 강화되고 있는 몇몇 기업들의 독과점의 문제, 이 독과점의 가장 뚜렷한 행태로서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구매력”을 바탕으로 하는 “거대 자본”의 횡포를 보여주는 것이다.
일면 너무나 익숙한 문제들을 지적하는 것처럼 보여서 식상할 수도 있지만 결국 농업이 안고 있는 문제의 핵심적인 질문을 “힘은 어떻게 재분배될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담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 책은 공정무역 혹은 세계무역을 중심으로 풀어가는 세계체제에 대한 이야기여서 그닥 흥미롭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책이 가진 진정한 가치 혹은 전혀 다른 의미로서 이 책이 영향력을 가질 수도 있다고 믿게 되는 지점이 있다. 이 간략한 보고서 내용이 전혀 다른 위치에서 다른 방향을 향하는 순간 우리는 우리의 현실을 아프게 인식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아니 어쩌면 우리가 가진 현재적 한계 상황들과 맞닥뜨리거나, 그것도 아니면 우리가 넘어서야 할 벽이 무엇인지 눈에 들어올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이 글을 읽는 우리는 어디에 서서 누구에게 말을 하는 것인가?
왜 우리들은 가장 가까운 우리들에게, 스스로에게 질문하지 않는 것일까?
간략하게 이야기해보자면 구매력에 기반한 권력의 집중은 그 자체로 신자유주의경제체제의 핵심으로서 오랫동안 농업의 기반이 되었던 농업생산조직의 파괴, 농업을 중심으로 한 지역공동체의 파괴를 몰고 왔다는 것이다. 문제는 우리가 그 대안으로 상정하는 수많은 활동들이 이 신자유주의 노선을 매우 충실하게 따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대안으로서 수없이 거론되고 있는 소비협동조합의 강력한 힘들은 그 자체가 수직계열화함으로써 생산을 통제하는 것을 넘어서 농업을 중심으로 하는 지역공동체 자체의 붕괴를 더욱더 가속화시키고 있다고 보여진다. 따라서 이젠 각각의 소비협동조합에 소속된 생산농업인들은 소위 주체적으로 공동체의 성원에 귀속되기보다는 구매/소비조합의 생산기계로 전락한 삶을 받아들이고 순응한다.
또한 강력해진 소비조합들은 더욱더 금융화를 가속화시키면서 농업의 대안이 아닌 신자유주의 초국가독점기업의 행태들을 따라가면서 그 경쟁력이 곧 기업화의 형식, 자본의 예찬론을 사회에 각인하는 이중의 덫으로 전락해버린 것은 아닐까?
물론 농업이 꼭 상품경제의 바깥에, 그리고 자본의 대척점에 서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다만 이 보고서에서 문제를 삼고 있듯 결국 농업이 살기 위한 생산의 조직화는 외부권력에 의한 강제가 아닌 주체적인 지역역량의 상호협의 안에서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질문을 가져야 하는 게 아닌가 싶다.
아니 우리가 대안의 이름으로 개입해야 할 것은 결국 “생산의 민주적이고 주체화된 조직화”가 아닐까?
그러기 위해서라도 결국 우리가 질문을 던져야 하는 첫 번째 지점은 어떻게 누구와 어디에서 “힘을 재분배할 것인가?”일 것이다.
내가 굳이 농업을 이야기하고자 함은 농업이 처한 현실이 내가 속한 한국사회 사회운동의 민낯을 적나라하게 증명해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사회가 그동안 끊임없이 “퇴행의 민주주의” 때문에 고통받았다면, 삶과 괴리된 정치의 몰락에 지배받아왔다면, 그래서 새로운 민주주의, 정치, 권력을 필요로 한다면, 이제 한 번쯤 그 기반을 허무는 근본적인 질문에 답해야 하지 않을까?
한국사회의 퇴행이 곧 사회운동의 퇴행을 불러왔다는 것을 인정한다면, 현재의 사회운동이 가는 길 자체도 퇴행이거나 문제가 있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그것을 증명해주는 것이 농업을 둘러싼 다양한 운동세력들의 현재 모습이 아닐까 싶다.
우리는 새로운 사례들, 소위 성공적이라 평가되는 외국 사례들이 더 필요한 것이 아니라 그런 사례들을 포함한 모든 대안들의 논의와 실행과 결과를 이끌어가는 농업의 생산에 관한 모든 것들이 결국 자본과 외부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은 아닌지 하는 의심을 해보아야 한다. 이러한 외부에 의한 강제력의 행사가 결국 현실을 왜곡하거나 아니면 한국사회의 현실을 의도적으로 회피하거나, 문제 자체를 상품화해버리는 “빈곤의 상품화” 같은 현상들을 보여주는 것은 아닐까?
우리는 기억해야 할지도 모른다.
자본의 이익 극대화를 위해 “빈곤”은 원인이자 결과로서 끊임없이 순환되며 그 생명력을 극대화하듯이, 사회운동도 빈곤을 필요로 한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