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회사를 나왔다 다음이 있다》와 노래 <잘 부탁드립니다>
유난히 인사받고 인사할 일이 많은 요즘이다. 이사 가는 사람도, 선거에서 후보로 뛰는 사람도, 면접이나 새 직장에 들어서는 사람도 모두 다 먼저 건네야 하는 말이 바로 “잘 부탁드립니다”. 어쩌면 참 부담스럽고 떨리는 이 말을 발랄하고 솔직하게 그린 노래가 있었다. 2005년 대학가요제 대상 수상곡이였던 익스의 <잘 부탁드립니다>.
2005년 대학가요제에서 데뷔한 익스 @jtbc <투유 프로젝트-슈가맨> 영상 갈무리
긴장한 탓에 엉뚱한 얘기만 늘어놓았죠 바보같이
한잔 했어요 속상한 마음 조금 달래려고 나 이뻐요 히
기분이 좋아요 앗싸 알딸딸한 게
완전 좋아요 몰라요
- 노래 <잘 부탁드립니다> 가사 중에서.
리드보컬 이상미의 취업실패 이후 멤버들이 함께 작사/작곡한 이 곡은 2005년 대학가요제에 처음으로 전파를 탔고, 이후에 젊은 층에게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면접의 긴장감, 그 후의 아쉬움, 반복되는 상황 속에서도 나를 응원하고 싶은 마음이 잘 담겨 있는 이 곡은 취업이 그야말로 ‘전쟁’이 되어 버린 당시 20대들의 마음과 욕망을 제대로 읽었다. 대학 입학년도로 굳이 나눠보자면 98학번부터 05학번까지의 세대들은 학생 시절에 1세대 아이돌과 영상 문화를 가장 많이 흡수했고, IMF 경제한파를 맞았다. 암울한 2년을 보낸 후 ‘21세기의 시작’이라는 뉴밀레니엄을 맞이했고 이들은 ‘TTL세대’라고도 한때 불리며 희망의 상징이 될 뻔, 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될 뻔, 한 거지 된게 아니다!) 경제한파의 후폭풍으로 인해 대학은 ‘돈 되는’ 학과에 집중했고, 졸업생들에게는 학문이 아닌 취업을 위한 공부와 졸업만이 요구되기 시작했다. 이렇게 자신의 기존 정체성은 선명하나 표출할 수 있는 해방구가 없었던 이 세대에게 노래 <잘 부탁드립니다>는 그들의 색깔을 잘 담아낸 곡이였다. 이 노래가 (지금은 폐지되었지만) 대학가요제에서 대상을 수상했다는 점도 시대의 맥락과 연결된다고 볼 수 있다.
‘월급이라는 소중한 약속’을 포기하고 새로운 길을 나선 이들이 있다. 친구출판사 산디에서 펴낸 신간이자 첫번째 책인 《회사를 나왔다 다음이 있다》는 직장 생활을 하다가 좋아하던, 또는 관심있어하던 것과 관계된 일로 전업한 열 명의 인터뷰를 담고 있다. 공교롭게도 이들을 인터뷰하고 심지어 책까지 펴낸 이민희 씨 또한 음악평론가이다가 이 책을 만들면서 출판사까지 차려버린(!!!) 전업자다.
저자와 인터뷰이 열 명은 1977년생에서 1987년생, 평균 나이 1981년생이다. 이민희 씨는 심지어 나와 동갑인 1981년생이며, 이들은 앞서 소개한 노래 <잘 부탁드립니다>를 직접 들은 세대이기도 하다. 인터뷰 내용을 읽어보면 그 세대가 IMF로 인한 타격으로 굳어있던 노동시장에서 어쩔 수 없었던 선택들에 쉽게 동감하게 된다. 이들의 전업은 여러분이 기대한 것보다 운명적이지 않다고 느껴질 것이다. 자연스러운 선택인만큼 각자의 온도와 현재의 만족도는 다양하다. 하지만 그들은 좋아하는 것을 버리지 않았고 현재로 좀더 가까이 끌고 왔다. 사회는 사람의 성공을 재정적인 기준으로 평가하지만, 나는 이들이 자신을 평가할 때 ‘그러지 말았으면’ 하는 마음이 들었다. 나 자신에게 기울이는 시간 이상으로 주어진 시간도 많다는 걸 그들을 잘 알고 있지 않을까?
결정을 내린 시기는 저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책에 채운 이야기는 내 또래가 겪고 내가 겪는 우리의 당연한 고민일 것이고, 사실 나도 전환이 필요하다고 감지한 시기에 시작해 어쩌다보니 전환을 통해 마무리한 책이다. 나는 음악과 기타 여러 가지 잡문을 쓰는 프리랜서 작가로 10년을 보냈고, 클라이언트와 마감이라는 상호간의 약속 없이 과연 스스로 일을 벌이고 마칠 수 있을까를 확인하고 싶었다. 월 1건씩 인터뷰와 원고가 차곡차곡 쌓여 조금씩 확신을 얻을 무렵 마침 나와 같이 사는 사람 이범학도 17년 다닌 직장을 관두는 바람에 우리는 돌연 출판사를 차리고 말았다. 여기저기 주변에서 고마운 걱정이 따랐지만 나는 생각보다 괜찮다. 내가 준비하고 감당하기로 한 첫 책에 이미 무언가 저지른 열 명의 또래가 동참했다. 불안과 위기는 출간한 뒤에 고민해도 될 일이고 고충을 나눌 친구도 열 명이나 있으니 나는 그리 외롭지 않은 사장이라 생각한다.
- 책 ‘들어가는 말’ 중에서 발췌
친구출판사 산디의 구성원들은 2016년 땡땡책협동조합에서 주최한 <1인출판 길잡이 강좌 - 할 수 있다 1인출판!>의 수료생이다. 이번 책에서는 이민희 씨가 글을, 이범학 씨가 사진과 편집을 맡았다. 열 명의 인터뷰이를 통해 다양한 직업과 선택의 순간들을 만나는 것도 흥미롭지만, 이 책을 더욱 풍부하게 만드는 것은 산디의 두 구성원이자 부부의 과정이다. 책을 다 읽고 나서 여러분이 각자 그들의 취재 과정을 상상해보는 것을 권해드리고 싶다. 이 책의 섬세한 호흡 - 특히 인터뷰어를 담아낸 사진의 구도 - 을 한층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익스의 보컬 이상미가 10년 만에 무대에서 이 노래를 불렀다
@jtbc <투유 프로젝트-슈가맨> 영상 갈무리
1999년 수능, 수리영역Ⅰ에서 딱 한 문제를 틀렸다. 시간이 남아서 검산을 했는데 처음에 한 게 맞았고 정작 검산한 답이 틀렸던 것이다. 당시 수리영역Ⅰ의 난이도가 쉬웠기 때문에 한 문제 틀린 게 전체 석차에 꽤 영향을 줬는데, 그 결과가 실은 석차보다 내 인생을 어떻게 바라보냐에 영향을 더 줬다. 처음의 선택을 믿자, 대신 순간에 최선을 다하자고 마음 먹었다. 그러고나니 시험 볼 때 결과에 매달리기보다 오히려 과정에 집중하게 되었다. 나는 순간에 집중했는가? 최선을 다했는가!
귀촌을 고민하고 있을 때 사람들에게 제일 많이 들었던 조언이 ‘생각날 때 가야지 이것저것 따지다간 정말 못 간다’라는 말이였다. 고민을 시작하고 지역을 확정해 준비하고 있는 지금까지 2년이 조금 안 되는 시간이 걸렸다. (요즘 나는 ‘더 일찍 내려갈걸’이라고 엄청나게 후회 중!) 나야 1인가구인데다가 새로운 도전을 겁내지 않으니 결정이 그나마 수월했는데, 반대로 내 주변 사람들은 귀촌으로 인해 내가 잃게 되는 기회나 조건을 걱정하고 있다. 어찌보면 삶에서의 선택은 결국 현재의 해석에 따라 평가가 갈리지 않나 싶다. 그러니 선택을 고민하고 있는 그대여, 고민할 시간에 과감한 선택에 도전해보시라.
확정되지 않은 경계의 순간이 있다. 일해보고 싶은 회사의 면접장을 나설 때, 긴가민가 싶은 소개팅에 나갔다가 괜찮다 싶은 상대방과 헤어지는 순간, 이사갈 집을 보러 갔는데 계약하는 게 좋을 것 같은 느낌이 올 때처럼. ‘잘 부탁드립니다’는 말은, 그 경계의 순간을 넘고자 하는 바람이기도 하다. 당신은 당신만의 가치가 있는, 반짝반짝 빛나는 사람이다. 낯선 누군가에게 나 자신을 보여준 오늘은, 꽤 괜찮은 날이다. 토닥토닥!
산디 펴냄 ∥ 이민희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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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 1집 <잘 부탁드립니다> (2005)
작사 · 작곡 익스 ∥ 러닝타임 3분 16초
All Night, All Right
땡땡책협동조합 친구출판사의 책들과 다른 문화예술 장르의 만남.
여러분의 깊은 밤은, 언제나 옳으니까요.
글쓴이. 루카
나이 먹을수록 ‘잘 부탁드립니다’라고 부탁받기보다는 먼저 부탁드리고 싶다.
세상을 바라보는 내 눈높이가 점점 낮아져야 할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