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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m May 28. 2022

VIDEODROME(1963)

미디어의 유기화, 미디어-인간의 감각 확장

우리는 생각을 무기 삼아 우리를 발전시켜왔다. 그리고 그런 생각은 우리가 실천함으로써 메시지로서 전달되어 현세까지 꾸준히 남아왔습니다.


지금 주위를 둘러보면, 본인을 감싸는 모든 것들이 전부 고유한 목적을 가진 유기체라면 과연 우리는 어떤 존재인가?? 온전히 단독적인 존재로서 절대적이거나 누군가에게 연민의 감정을 느낄 만큼 우월한 존재라고 여겨질 수 있을까?라는 궁금증이 생깁니다. 액자 속의 액자에서 각 차원별로 존재하는 그들이 무한 확장 가능성을 지닌 내용 즉 메시지로서 치환될 수 있다는 것을 내포하고 있기도 합니다. '데이빗 크로넨버그'라는 아트하우스 느낌의 바디 호러의 인플루언서와 같은 존재가 이끄는 신체개조 스릴러물과 미디어로 인한 콘텐츠의 자극에 대한 무감각함을 미디어의 유기화, 숙주-기생충의 관계와 유사하게 상충하는 인간-매개체의 감각의 확장에 관한 디스토피아적 보고서로 현대시대의 자극의 경량화에 대한 문제점을 고찰합니다.

Videodrome, 정지된 사진의 연속체인 Viedo라는 단어와 외부의 영향으로 인한 증상을 나타내는 증후군을 나타내는 drome의 합성어로 특정 시퀀스의 파편화된 연속체인 영상을 보여주는 매개체로부터 최면에 걸린 듯이 인지의 마비로 인해 어떠한 자극에도 무감각해지는 현대인의 고질병을 인간이 느끼는 지배-피지배의 관계에서 형성되는 피지배에 대한 숨겨진 원초적인 쾌락과 합일되어 폭력에 대한 희락의 집결체를 상징하는 '비디오드롬'이라는 비디오테이프의 생물화라는 설정 자체부터 미디어의 유기체화라는 80년대에 상영되기에 굉장히 파격적이고 추상적이고 대중성을 철저히 배제한 독단성을 띄는 영화라는 것을 시작부터 TV 속 사람의 신체 일부(확대된 입술, 나체의 모습들이 합쳐진)를 스크린에 그대로 송출하면서 대중매체를 인간의 모습처럼 표현합니다.


미디어의 유기화. 미디어-인간의 프로이트적 해석.

영화는 제목인 비디오드롬은 주인공이 주재하는 콘텐츠의 제목과 동일한데, 이 비디오테이프에 담겨있는 영상물은 스너프 필름을 연상케 하는 가학적이고 선정적인 장면들이 대거 연출된 사물로, 여기서 사회적 가면을 쓰고 인간의 청교도적인 윤리를 절대선이라고 여기는 현대사회에 살고 있는 대중들이 그 이면에는 피지배적 욕구와 같이 가장 동물적이고 원초적인 문명화된 사회에서 터부시 되는 말초적 충동의 부류를 상징하면서 문명의 절정의 산물로 비유될 수 있는 미디어와 본능적인 부분들이 상충하는 집결체로 '비디오드롬'이라는 설정으로 비판적인 시선을 보내는 크로넨버그의 통찰력과 뚝심 있는 연출력이 여과 없이 발휘됩니다. 사실 초반부에 등장하는 비디오드롬의 사회자라고 불리는 인물이 '미디어는 메시지이다' '미디어는 인간 감각의 확장된 버전이다'라는 마셜 맥클루언의 미디어이론에 대한 언급을 하면서 텍스트, 이미지로 직접적으로 하고자 하는 말을 던집니다. 그리고 유혹의 뿌리에 잠식되는 주인공의 배가 비디오테이프를 넣는 입구처럼 갈라져 '유혹'을 상징하는 투사체로 나오는 주변인들이 그의 뱃속에 비디오(비디오드롬)를 집어넣고 비디오에 담긴 폭력성(실제 주인공이 내면적으로 가지고 있는)대로 최면에 걸린 듯이 행동하여 실제로 비디오드롬에 나오는 인물들이 주인공과 실시간 소통을 하는 것처럼 대화하며 이윤과 인기를 위해서 비디오드롬이라는 폭력성의 결정체를 방송하겠다는 금기시되는 욕망을 투영하여서 매체가 살아 움직이는 유기체처럼 움직이면서 심지어는 인간의 피부로 뒤덮인 브라운관 스크린 속에서 뻗어 나오는 손과 비디오드롬에 나오는 채찍을 활용한 가학적인 장면들을 주인공이 마치 환각에 걸린 듯이 때리면 그 안에 있는 인물(주인공이 직접 사회생활을 하며 만나는)이 실제로 그에게 맞는 것처럼 스크린에 비치고 주인공이 실제로 그 처참한 피해자와 같이 잠자리에서 깨는 장면을 통해 미디어는 인간 감각의 확장자라는 말의 의미를 너무나도 명확하게 보여주어 보고 싶지 않은 어두운 면을 보여줍니다.

'미디어는 메시지다'라는 부분에서 영감을 얻은 스크린에 비친 인물(주인공과 육체적 사랑을 나눈)이 비디오드롬이라는 괴물에 의해 목이 졸려 죽음을 맞이하는 장면을 통해 정작 중요한 미디어 밖의 세상을 철저히 배제시키고 오직 미디어가 2차원의 틀에서 전하는 메시지에만 집중하여 미디어는 그런 영상물을 담은 네모난 비디오테이프를 담는 무생물의 존재 그 이상으로 서로 대화하는 유기체라는 난해한 이론을 아주 명시적으로 시각화합니다. 그리고 마침내 가학성과 선정성을 상징하는 외계 문명처럼 꾸며진 비디오드롬이 만들어지는 세트장에서 유혹의 상징체인 인물이 넣었던 비디오가 전달하는 '비디오드롬에서부터 자유를'이라는 메시지를 주입받은 주인공의 손과 총이 살이 엉켜 결합된 기괴한 모습으로 모든 것을 담당하는 사회자를 죽이고 난 뒤 주인공 앞에 놓인 살로 뒤덮인 텔레비전이 총상을 입어 피를 흘리는 장면이 비디오드롬이라는 무감각한 폭력성을 담당하는 주인공이 스스로를 쏘는 장면과 병치되어 텔레비전이 파괴되는 모습이 마치 숙주를 옮겨 다니는 기생충처럼 비디오드롬이라는 메시지가 주인공이라는 숙주로부터 해방되어 또 다른 이들에게 영향력을 미치는 악순환적 구조를 그려내어 현대인의 비극을 그려냅니다.


이를 통해서 데이빗 크로넨버그는 문명화된 인간이 숨기는 터부시 되는 욕망을 스크린으로 훤히 드러내어 불편한 진실을 마주하기 싫어하는 인간의 심리를 간파하여 심하면 역겨울 정도로 주변에 평범한 것들이나 숨어있는 엄청난 의미에 비해 다소 평범한 것으로 간주하는 모든 것들을 되돌아보고 동떨어져있다고 생각하는 요소들을 우리와 밀접하게 연관시켜 현실을 똑바로 직시하도록 안내해주는 비전을 가지고 있는 안내서처럼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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