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본인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 실행에 옮기는 동물입니다. 물론 동물들은 열망하는 것을 목표로 설정하고 그 앞으로 우직하게 걸어나갑니다. 동시에 동물들과는 달리 인간은 성찰이라는 것이 되는 특이한 성질을 지니고 있는 존재이기에 본인이 부족하다고 느끼는 것이 있으면 단점을 복기하면서 더 나은 방향으로 향하도록 경로를 재설정하면서 현실과는 간극이 존재하는 이상이라는 것이 개인의 이념으로 자리잡게 됩니다. 그러면서 현실과 이상과의 괴리로 인해 스스로를 고립시키고 주변인들로부터 도태된다는 착각에 빠져 피해의식을 지니게 되고, 결국에는 선천적인 영역이기에 불가역적인 요소들을 인위적인 힘으로 바꾸려는 기술을 발전시켜 어떻게든 열등하다고 생각하는 현재의 모습을 바꾸려 노력합니다. 이 중 대표적인 예시가 성형입니다. 물론 탐미적인 관점이나, 진화생물학적인 측면에서 우월한 유전자를 지닌 인원은 상대적으로 그 무리와 공동체에서 원하는 것을 비교적 쉽게 얻고 그들에게 유전자를 제공해주어 상생하면서 그들이 지켜야 할 재산, 안식처, 후손들을 보호하며 의존하며 살아왔습니다. 이런 행동양식이 현대까지 이어져 외모적인 측면, 지능적인 측면, 신체적인 측면 전반적인 부분을 고려했을 때 우월하다고 느낀 인원이 있다면 이를 얻어내려고 그에 맞는 외모를 가꾼다던지, 그게 힘들다면 지식 습득이나 경험 축적을 통한 지혜의 확장이라는 전략을 채택하여 지능적인 측면을 월등히 향상시키던지, 운동을 통해서 신체적인 단련을 하여 이 부분을 다른 부분보다 월등히 키우는 전략도 있으며, 한 분야를 우월하게 키우는 것보다 다양한 분야를 고루고루 기르는 비교적 안정적인 전략을 채택합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한 순간에 비춰지는 일시적 이미지를 더욱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많습니다. 그 사람의 성격이 좋을지라도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타인이기에 한 번에 봐서는 그 사람의 진가를 알아보는 것은 여간 쉬운 일이 아닐 뿐더러, 위장을 하여 회유를 하는 전략을 택한 종자도 많기에 위험성을 고려하여 안정적인 방향으로 간다는 생각으로 용모와 기본 외모가 깔끔하고 단정하다면 호감을 느끼고 다가가려 하는 경향성을 지닌 것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러기에 첫 인상 통과를 위해서 외모에 상대적으로 치중한 느낌을 많이 받는데, 이로 인해 한 때 성형이라는 키워드가 사회적인 문제로서 대두되던 시대가 있었습니다(물론 현재도 진행형이긴 합니다).
이 단편 애니메이션은 이러한 전 세계적 사회현상의 문제점을 비교적 적나라한 연출로 각인시키고, 이로 인해 파생된 문제점을 한 곳에 집약적으로 집합시켜 조금은 과장된 표현주의를 차용하여 미용과 우월한 종자의 선택으로 비롯된 욕심으로 인해 야기될 결과는 운이 좋다면 무탈히 마무리 되지만, 운이 좋지 않다면 죽음이나 평생동안 안고 가야 할 부작용이라는 측면을 꽤 잔인한 이미지의 배치를 통해 드러냅니다. 이 작품은 일러스트를 소스로 스톱 모션기법을 차용한 애니메이션인데, 초반에는 나름 준수한 외모를 지닌 나체의 여성을 캔버스에 등장시킵니다. 이 여성은 데우스 엑스 마키나의 역할을 하는 일러스트 작가의 손(의사라고 불리는 조물주의 손)에 의해 지방을 인위적으로 제거당하고 입술의 두께를 상당한 정도까지 발달시키는 수술을 집행하면서 사회적으로 비너스와 같이 균형적이고 정갈하다고 대다수가 동의하는 미적인 프레임대로 마치 클레이 조각상을 만들 듯 이리저리 빚어냅니다. 심지어 이제 다리 부분에 포진된 지방을 없애는 단계에 이르면서 피를 뽑는 건지 지방을 제거하는건지 그 경계를 모호하게 만들 정도로 강도가 심해집니다.
그 다음으로는 부검용 칼로 안구를 제거하여 더 큰눈으로 교체하고 광대를 더욱 확대시키는 수술을 단 1초만에 감행하며 얼굴형을 바꿔버리고, 가슴부분에 실리콘을 부착하고, 머리결을 더욱 풍성한 것으로 교체하고 두피를 잘라 뇌를 꺼내 분홍색으로 짙게 화장된 인공적인 뇌로 갈아낀 후 두개골을 닫고, 그 다음으로 태닝을 하여 피부를 검게 만들고 코를 절단하여 더 높은 코로 바꾸어 끼워버립니다. 더 나아가 갈비뼈의 일부분을 떼어내어 허리 사이즈를 얄상하게 변형시키는 이 순간부터 이미 이 인물은 생명으로서 존재 자체를 존중받아야 할 권리를 상실해버린 공산품과 같은 존재로 전락해버렸기에 이 뒤로는 신체에 왜곡과 기형이 발생하기 시작합니다. 잉태한 아이를 재왕절개를 통해 꺼내 그냥 땅바닥에 내동댕이 쳐버리고 가슴에 부착한 실리콘을 더욱 큰 것으로 교체할 때 오른쪽 가슴은 이미 쳐져 유방 덩어리가 피부를 뚫고 녹아버리고, 팔 다리 쪽의 지방을 지나치게 많이 제거하여 팔은 스스로 절단되고, 사지 연장술을 통해서 다리를 늘린 후 지방 제거 수술을 하여 다리가 떨어져 나가고 다시 한 번 태닝을 할 때 지나치게 오랜 시간동안 하는 장면을 연속적으로 배치함으로서 정도를 지나쳤다는 단계적 도달을 시각적으로 화이트 아웃을 통해 강조하고 고주파수음을 통해서 관객들이 화면에서 눈을 떼게 할 정도로 극단의 순간까지 인물을 유도합니다. 그 후 피부는 새빨갛게 변하여 살가죽은 벗겨지고 코 필러와 입술 발달 시술로 인한 덩어리는 녹아 내리고 오로지 근육가죽만이 남은 인물을 보이며 끝이 납니다.
이런 일련의 과정을 통해서 목표를 향해 정진하는 인간의 모습은 철저히 다른 짐승들과는 그 존재의 특별성을 부여한 고귀한 행동양식의 산물이지만, 지나치게 괴리감이 심한 높은 목표만을 추구하느라 잡을 수 있는 다른 사소한 부분들을 전부 간과하고 행복감을 스스로가 박탈시켜버리는 기형적인 문화에 대해 3분동안 원 테이크의 스톱 모션으로 강렬한 이미지의 나열을 통해 통렬히 경고를 날립니다.
우리 인간은 더 나은 존재가 되고 최소한의 누리고 싶은 행복감을 성취하기 위해서 부단히 노력하고 단점을 찾아 이를 보완하고 장점으로 바꾸려는 데에 에너지를 많이 소모합니다. 이는 우리 존재 자체로 소중하다는 다소 허무맹랑한 말보다는 현실적이고 강인하지만, 스스로의 장점을 찾고 단점을 없애고 변형하려는 전략보다는 자신이 갖고 있는 장점을 더욱 극대화시켜 차별화를 하고, 단점은 빨리 인식하여 이를 본인의 인간적인 일부라는 것을 받아들이고 여유로워지는 높은 자존감을 키우도록 정진하는 것이 현명한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우월한 부분을 키우고, 타인의 장점을 벤치마킹하여 그 부분들을 그 사람들보다는 아니더라도 적당히 평균정도로만 고루고루 끌어올려도 본인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매력적이고 호감을 이끌어내어 원하는 요소를 쟁취하는 진취적인 인간상이 될 것이라는 자기계발적 메세지를 내포하고 있음을 작품 전반적으로 함의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