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전하는 마음

윤동주의 서시

by 길바닥 화초

침전하는 마음에 관하여


앙금이 생성된다. 어떤 투명한 용액에 폐포 곳곳에서 나온 이산화 탄소를 불어 넣으면 투명하던 용액이 뿌옇게 흐려진다. 그러고 가만히 용액을 보고 있노라면, 하얀 앙금이 느릿느릿 가라앉는다.


그러면 나도 앙금이 되어 같이 침전해 본다. 투명한 비커에 왜곡되어 내 얼굴이 비추이다가, 이젠 더이상 보이지 않게 뿌옇게 될 때즈음. 투명한 것 같은 내 마음속 깊은 곳, 그 안에서든 밖에서든 어떤 마음이, 가느다란 바람이든, 폭풍이든 불어온 것 마냥, 그리고 무언가가 침전한다. 그럼 그 침전하는 것과 함께 빛조차 들지 않는 그 어딘가의 깊이로 함께 내려앉는다.


이때는 숨을 참든, 마음을 참든, 깊이를 가늠하지 말고 같이 가만히 가라앉아야 한다. 깊이를 가늠하려다가 보면 시퍼런 아래가 문득 두려워져 발버둥을 치게 된다. 그렇게 반응도 다 이루어지지 못한 그 어떤 무언가가 되어 진득히 부유한다. 그 부유물이 마음의 길 어디를 떠다니다가, 막히고, 탁해지고, 결국은 반응을 마치지 못한 영혼이 되어버린다.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운’ 마음이 있다. 아마, 그 마음은, 침전하는 마음일 것이다. 외부 세계를 막지 않은 채, 들어온 무언가가, 내 안의 어떤 것과 반응하여, 뿌옇게 흐려질 때. 탁해진 마음으로 앞이 보이지 않아 괴로워 하면서도, 반응한 그 무언가와, 가만히 침전하고 있는 마음일 것이다.


용기내어 같이 가만히 가라앉아 본다. 그리고 반응하는 나의 용액을 아래에서 바라다본다. 반응이 끝날 무렵, 모든 것이 가라 앉아 투명해진 마음 용액을 본다. 그리고는 이젠 주위를 둘러보는 것이다. 나는 무엇인가. 왜 나는 반응했는가. 나는 어떤 용액인가.


깊이를 알 수 없는 마음이 두렵고, 반응이 언제 끝날지 막연하고, 이 하얀 앙금이 무엇인지 모르겠다고 한들, 중간에 도망치지 말고 가만히 함께 침전해 보자. 언젠간 화학 반응은 마치고, 앙금은 침전하며, 용액은 다시 투명해진다. 그러고 주변을 둘러보면, 용액이 무엇이었고, 가라앉은 나는 무엇이며, 불러들어온 바람은 무엇이었는지 알게 될 것이다. 그렇게 나를 알고, 바람을 알며, 바람에 반응하는 나를 이해하면서 살고 싶다. 그래야 결국은 투명해질 것이고, 그래야 앞이 보일 것이며, 그래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웠다’가도 앞을 보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갈 수 있을 테니.


다시 침전해도, 이제는 침전하는 시간이, 예전만큼은 두렵지 않다. 참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