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날을 며칠 앞둔 점심시간, 직장 동료분들과 밥을 먹다가 '언제' 산타가 없는 걸 알았는가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한분께서 자신의 이야기를 실감 나게 풀어주셨다. 어린이 집 선생님께서 크리스마스 날 받고 싶은 선물을 산타할아버지께 전달하기 위해 그림으로 그려보라고 하셨고, 당시 최고 유행이었던 미미 인형의 집이 갖고 싶어 아주 열심히 그림으로 그리셨다.
그런데 다음 날 선생님께서 인형의 집 말고, 갖고 싶은 다른 걸 그려보라고 하셨단다. 집에 와서 어머니께 '선생님이 혹시 모르니 크리스마스 선물 하나 더 그려보래. 난 인형의 집이 갖고 싶은데 왜 자꾸 그러나 모르겠어'라고 말씀드렸고, 어머니께선 '그래? 그래도 하나 더 그려봐. 뭐 예를 들면 운동화라던가'하셨단다.
운동화가 별로 갖고 싶진 않은데 하나 더 그리라니 귀찮은 마음 반, 그래도 엄마 말씀 들어야지 하는 마음 반으로 운동화도 그리셨다. 대망의 크리스마스 선물 증정식 날, 인형의 집이라기엔 턱없이 작은 사이즈의 선물을 건네받자마자 '이건 운동화구나' 하고 아셨다고 했다. 그리고 깨달은 거다. 아 산타는 없구나. 엄마가 사주는 거구나 하고.
이 이야기를 나누며 우린 어린아이 마냥 엄청 웃었다. ‘그래도 산타는 미미인형이 갖고 싶은 내 진심을 알 테니까’하며 운동화를 그린 아이의 순진함이 귀여웠고, 최대한 운동화를 자연스럽게(?) 선물로 사줘야 하는 엄마의 조금은 어설픈 노력이 웃펐다. 한편 어른들의 허름한 술수를 간파한 똑똑한 어린이가 영특하기도 한 그런 마음이었다.
그분의 이야기를 마치고 그럼 나는 언제 산타가 없다는 걸 아셨냐고 물으셨다. 기억을 더듬어 보면, 나에겐 어른들이 크리스마스날 뭐 받고 싶어? 하고 물어본 적이 없다. 유치원 크리스마스 선물 증정식 날, 모두의 눈길을 사로잡은 집채만 한 상자와 나머지 조그마한 선물들이 트리 아래 옹기종기 놓여 있을 때. 무대의 산타를 보면서도 마음속으론 열심히, 저 커다란 선물, 그러니까 인형의 집 같은 저것이 내 것이기를 간절히 기도했었다. 그렇지만 그때 내가 받은 건 몇 권의 책이었다. 선물 받는 게 빈번하지 않았던 그 시절의 나는, 산타에게 책을 받는 것만으로도 잔뜩 들떴던 기억이 있다. 선물을 받는 게 마냥 좋았다.
돌이켜보면, 어린 나는 크리스마스에 매번 마음이 설레었다. 일기 예보를 확인하며 화이트 크리스마스를 기다렸고, 거리에서 들리는 캐럴의 박자와 함께 발이 움직였으며, 이브 날에 울려 퍼지는 성가대의 찬송가엔 마음이 같이 반짝였다. 크리스마스 당일 내 머리맡에 놓인 선물은 없었어도, 뭔가 매년, 그렇게 크리스마스를 기다렸다. 이십 대 초반이 되어서도 그랬다. 막연하게, 산타가 없는 걸 알면서도 그 시즌만 되면, 곳곳에 초록 빨강 노랑 전구의 반짝임이 촌스럽고, 장갑을 낀 손끝이 하얗게 얼어붙어도 뭔가 모를 기대감이 있었다.
그러다 첫 직장 생활을 하던 즈음이었나. 아마 이십 대 초중반, 크리스마스이브 저녁, 이미 해가 져 어슴프레 어둠이 내려앉았을 때. 지하 식당에서 저녁을 먹고 계단을 올라오며, 'OOO 기증' 문구가 촌스럽게 인쇄된 전신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봤다. 그리고 문득, '아... 산타는 없구나'하는 생각이 스쳤다. 그리고 곧이어 마음이 가볍게 내려앉았다. 뭔가 막연하게 어딘가에 살아 있었을 나의 산타가 죽은 날이었다.
그날 전까지만 해도 나는, 원하는 선물을 받아 보지도 못했으면서, 말이 안 되는 걸 머리론 알면서도. 마음속 한 구석엔 계속 어떤 막연한 느낌이 있었다. '올해 내가 산타 할아버지가 만족할 만큼 착하게 살지 않아서 선물을 받지 못했나 보다...' 하는. 뭔가 모를, 언어로 된 문장으로 정리할 순 없지만, 가슴속 손 끝의 간질거림 같은 그 어떤 어린 마음이었다. 그날, 특별할 것도 없이, 계단을 오르던 내 모습과, 그 순간의 생각과, 어린 마음의 크기만큼 차분하게 내려앉던 마음은 짧은 영상처럼 나에게 남아있다.
그 무렵부터였나, 캐럴을 들어도 옛날만큼 발을 구르진 않고, 크리스마스에 내리는 눈을 봐도 강아지처럼 들뜨지 않았던 게. 그저 크리스마스도 나에게 지나가는 12월의 하루가 된 것이.
동료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부서로 돌아오는 길엔 부장님의 이야기를 들었다. 허술한 남편이 택배 박스를 뜯지 않고 두어 잔뜩 의심이 생긴 아이들에게, 산타가 바빠서 택배회사가 대신 업무를 수행했다며 어설픈 변명거리를 지어낸다고 진땀을 뺐다고 하셨다.
이야기를 들으며 문득, 어른들이 크리스마스에 아이들에게 주고자 하는 것은 어쩌면, '착하게 살면 보답을 받을 수 있다'는 그 어떤, 순수한 세상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힘든 하루를 보내더라도 연말의 산타를 기다리며 조금은 더 오래 마음이 행복하길 바라는 어른들의 어설픈 노력들이 크리스마스의 선물은 아니었나 하는. 돌아오는 길, 오월의 하늘은 화창하고 공기는 상쾌했다. 자꾸 마음에 바람이 불었다.
인형의 집을 선물해주진 못했지만, 조금 더 오래, 착한 세상에서 살아가길 바랐을 가난했던 나의 부모님과 그저 크리스마스가 설레었던 유년시절의 내가 자꾸만 마음에서 일렁였다. 만약 나에게도 자녀가 생기면, 그 아이들 덕분에 다시 크리스마스가 기다려지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