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비스 인플레이션
명예퇴직하신 선배님께서, 최근 다른 곳으로 이동하신 분을 위해 모임을 주선하셨다. 두 분 다 워낙 평판이 좋으셨던 분들인지라, 모임 구성원이 하나 둘 불어나기 시작했다. 이동하신 분이 작년 나의 부장님이셨기에 자리를 함께 할 기회를 얻었다. 명예 퇴직 하신 선배께서 식당도 예약하시고, 만남 당일 일찍 장소에 도착하셔서 자리를 잡고 기다리고 계셨다.
먹고 싶은 거 다 먹으라고 챙겨주시는 마음과 함께 푸근히 끓는 샤부샤부로 모임은 따끈하게 시작되었다. 먼 곳에서 도착한 주인공이 합류하고 분위기는 한층 더 활기를 띠었다. 새직장 적응의 어려움과 골칫거리 사춘기 아들의 문제 등등 모임은 점차 다층적인 분위기로 풍성해져 갔다.
좋은 사람들이 모이면 늘 그러하듯, 퇴직한 선배님께서 계산을 하러 나오셨을 땐 이미 작년 부장님께서 식사 비용을 결재를 하신 뒤였다. '내가 위로하려고 부른 건데'라며 커피는 당신이 사겠다고 인테리어도 근사하고 넓은 근처 카페로 향했다. 메뉴판에 적힌 아이스 카페 라테 한 잔이 7000원 정도. 모임의 인원이 7명가량이라, 카운터가 부산스러웠다. 나는 얼른 직원에게 디카페인 아이스 라테를 주문하고 우리가 앉을 위치를 찾았다. 이미 행동력 있으신 분께서 구석 테이블 2개를 붙여두셔서 함께 의자를 옮겼다. 자리를 잡고 앉아 이야기를 시작하는데 주문을 받던 카페 직원이 우리에게 왔다.
'이 테이블은 바닥에 맞춤으로 되어 있어서 옮기시면 안 돼요.' '아 죄송합니다.' 직원이 테이블 하나를 원래 자리로 다시 옮기기 시작했다. 7명이 테이블 하나에 옹기종기 모여 앉았다. 옆에서 테이블을 옮기며 직원은 바닥에 종이를 끼우기 시작했다. 아마 바닥이 고르지 않아 종이로 균형을 맞추는 것 같았다.
잠시 멈추었던 이야기가 다시 시작되었고, 몇 분 뒤 3잔의 음료가 먼저 나왔다. 좀 있다 나온 음료는 2잔. 그때까지 내 음료는 나오지 않아 막내로서 음료도 나르고 이야기에 맞장구도 쳤다. 마지막으로 나의 음료가 나왔다. 내가 직원에게 주문한 건, 디카페인 카페라테 아이스. 그런데 내가 받은 건 따뜻한 카페라테였다. 내가 주문한 게 아닌데, 싶어서 다시 카운터로 가 제가 주문한 건 디카페인 카페라테 아이스라고 말씀드렸다. 카운터에는 다섯 명 정도의 직원이 있었다. 음료를 제조하신 것 같은 여자분께서 당황해하셨다. 그러자 주문을 받고, 테이블을 옮기셨던 분이 '내가 처리할게'라고 하시고 '제가 일행분께 주문 다시 한번 확인했어요'라고 했다. '저는 디카페인 아이스라테라고 말씀드렸어요.'라고 하니, '그래서 제가 일행분께 다시 확인했을 땐 이거라고 하셨어요'라고 하셨다. 잠깐의 침묵이 이어졌다.
몇 번의 대화가 오갔지만, 그분의 태도는 '이건 내 책임이 아니다'였던 것 같다. 이젠 불편한 기분이 들었다. 내가 가져온 음료의 쟁반만 쳐다보고 있었다. 마주한 공기의 저항감의 무게와 뒤에서 보고 있는 모임 사람들 걱정스러운 눈빛과 테이블을 치우던 직원의 태도가 겹치며 나는 당황스럽고 억울한 기분이 들었다.
'얼음이라도 몇 개 넣어드리까요?' '괜찮아요'하고 쟁반을 다시 집고 테이블로 돌아왔다. 원치 않았던 음료가 놓인 쟁반을 들고 테이블로 돌아오는 길, 음료 주문의 '진실공방'과 '책임추궁'에서 졌다는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동시에 지금 내가 '진상'일까 하는 생각도 했다. 원하던 음료를 얻지도 못하고, 함께 온 동료들도 불편해졌으며, 스스로에 대한 검열로 에너지까지 소모되었다. 동료분들께서 '제가 주문 확인을 제대로 못했나 봐요 죄송해요', '내 음료랑 바꿔서 드실래요'등의 말씀들을 하셨다. 신경 쓰이게 만들어서 오히려 내가 죄송했다. '괜찮아요! 저는 따뜻한 라테 마셔도 됩니다. 저분의 태도 때문에 그랬나 봐요."라는 말이 입 밖으로 나왔다. 찰나동안 감정을 추스르느라 모임에 집중하지 못했다. 하지만 곧 따뜻한 분위기에 동화되어 모임을 잘 마무리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그 일이 자꾸 생각이 났다.
직원분의 입장이 되어봤다. '아마 하루에도 수많은 크고 작은 요구들을 듣겠지. 음료를 제대로 받아놓고 아니었다 우기는 사람도 있었을 거야. 또 테이블을 계속 옮기고 다시 바닥을 맞추는 것도 에너지가 드는 일일테야. 그러니 기준이 필요했을 테지. 다양한 사람을 계속 상대하다 보면 감정적으로도 많이 피로할 거야. 여러 가지 관점에서 이해는 된다.'
그때 그 정도가 우리가 지불한 돈으로 얻을 수 있는 서비스였을 것이다. 만약 라테 한 잔에 2만 원이 넘는 5성급 호텔 카페에서 이 일이 일어났다면, '불편을 끼쳐 죄송하다. 혹시 어떻게 해드릴까요?"라고 묻지 않았을까. 커피 가격 2만 원에는 음료 값은 물론, 멋진 공간을 사용하는 비용도 포함되었을 것이다. 더하여 나의 말에 대한 신뢰, 문제 발생 시 적극적으로 해결해 주겠다는 의지, 불필요한 감정소모 방지 비용도 들어있겠지. 결론적으로 어떤 일이 생겨도 당신이 우리 공간에서 불편함을 경험하지 않도록 하겠다는 책임감이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칠천 원짜리 금액표가 없던 시절에는 어떻게 서비스를 교환했을까? 그러니까 화폐가 발행되기 전 인간의 자원 교환은 어떻게 시작될 수 있었던 걸까. 사람들이 만드는 유형의 물건뿐만 아니라, 현재 서비스의 형태로 제공되는, 예를 들면 농사일 도와주기, 아이 봐주기 등등은 내가 베풀었을 때 상대도 언젠가 도와줄 것이라는 상호신뢰를 바탕으로 교환행위가 이루어지지 않았을까.
그래서 '돈'으로 이루어지는 거래의 본질은 '신뢰'를 기반으로 한 시스템이라고 생각한다. 금액은 인간이 제공하는 서비스의 가치를 숫자로 측정할 수 있게 한다. '돈'은 구체적인 액수를 제시하고 화폐로 지불함으로써 상호교환을 성사하게 하는 현실적 매개체가 된다. 특히 도시화가 된 현대사회에서 개인과 개인 간의 거리가 멀어지면서 '돈'을 통해 우리는 일시적으로 신뢰관계를 맺어 서비스를 교환하는 행위를 지속하고 있는 게 아닐까. 그렇다면 도시 구성원간 신뢰는 사회적 서비스 질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소셜 미디어에서 스치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다. 특히 자극적인 진상 손님에 대한 이야기들도 자주 접한다. 이렇게 소비되는 가상의 만남이 오프라인 관계의 질에 영향을 미치진 않을까. 그날 처음 만난 직원과 나의 관계도 그 영향을 받진 않았을까. 그래서 더 직원의 피로감은 누적되고 나는 자기 검열의 감정소모가 있진 않았나. 현대 사회 미디어의 지속적인 진상 고발로 인한 불신의 축적은 우리가 서비스를 이용하는데 지불해야 하는 비용을 높이고 있진 않을까. 신뢰가 약해지고 만남의 기쁨이 줄어듦으로써 우리 사회는 '서비스 인플레이션'을 겪고 있진 않을까 생각했다.
'다음번에는 더 야무지게 이야기해야지', '그래도 동료를 안 불편하게 하려고 한 나의 최선이었던걸' 등등 자꾸 이런 생각들이 머리를 지나니 또다시 피곤해졌다. 자꾸 상황을 곱씹고, 사회적으로까지 이해하려고 하는 건 내가 아마 억울해서겠지. 먼 옛날, 현대와 같은 삶을 누리려면 나는 얼마나 질 좋은 관계를 맺어야 했던 걸까. 커다란 도시를 지탱하며 나에게 서비스를 제공하고 일시적으로 이어졌다 헤어지는 사소한 객체들을 돌아봤다. '우리의 신뢰는 언제부터 얄팍해져갔던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