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 세우기

모래성 위에 첨탑 쌓기

by 길바닥 화초

건강한 경계 세우기가 참 어렵다. 나의 한계와 타인의 한계를 이해하고 사회적 상황과 제삼자의 관계까지 고려해야 하는 아주 다층적인 작업이기 때문이다. 또한 타인의 영향력으로 나의 한계를 축소하거나 경계가 흐려져서는 안 된다. 침범당했을 때 여기까지가 나의 경계니 침범하지 말아라고 행동할 용기도 필요하다. 표현 역시 상대방과 제삼자가 받아들일 수 있는 적절한 선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상대와 적절히 소통할 수 없다면, 혹은 나의 경계를 존중할 의도가 없는 사람이라면 우리는 속수무책일 수도 있다.


이토록 고민하는 까닭은, 최근 우리 부서에 계약직으로 오신 한 분과 공동업무를 시작했기 때문이다. 4월 초, 예측할 수 없는 분의 등장으로 화기애애했던 부서의 분위기가 순식간에 살엄음판이 됐다.


그분 행동의 대표적인 예를 들자면, 우린 자유 출퇴근제가 아님에도 정해진 시간에 부서에 나오지 않는다. 건물 이곳저곳, 본인과 관련된 공간을 옮겨 다니며 자리를 잡는다. 그래서 그분에게 들어온 업무 문의는 부서원들이 대신 처리하는 상황이 반복된다. 두 번째, 약속시간을 안 지키신다. 인수인계를 위해 3시까지 부서에서 만나기로 해놓고 40분이 넘도록 나타나지 않으셨다. 심지어 비상 연락망 핸드폰 번호를 바꿔놓곤 알려주지 않아 온 건물에 찾아다녀야 했다. 제일 다루기 어려운 건 그분의 예측할 수 없는 감정 반응인데, 어디 계시냐는 몇 번의 전화에 부장님께 갑자기 화를 내며 '갑질 신고 하겠다', '앞으로 통화 녹음 하겠다'라고 말씀하셨다. 이후 이분과의 의사소통은 공식적인 메시지로만 이루어지고 있다.


사회에서 상호존중의 가장 기본은 시간과 공간을 침범하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서로의 시간을 지키고, 나의 공간에 함부로 들어오지 않는 것. 너무나 당연한 부분에서 문제가 발생하여 이분께 말씀드리면 감정적인 폭발로 대응하시니, 일개 말단인 나는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이 많았다. 그래서 공동 업무 시작 전, 부장님과 협의하여 시간과 날짜를 나누고 업무 분장의 경계를 명확하게 했다. 관리자와 자리도 마련하여 그분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었다. 진행해야 하는 행사가 그분 전문 분야였기 때문에, 그분의 반응은 '당연히 내가 해야 할 일이다'였다. 하지만 그분의 성향을 알고 계신 부장님이 각자 해야 할 업무 목록과 기한을 작성하여 나와 그분에게 메시지로 보내셨다.


하지만 역시나 일까. 그분이 업무의 ’주‘로서 먼저 해야 하는 일에 딜레이가 생기기 시작했다. 연쇄적으로 나의 일까지 딜레이가 됐다. 이걸 어떻게 해야 하나 혼란스러운 틈에, 상의도 없이, 내가 해야 하는 일을 본인이 해버리셨다. 이후 분업과 일정은 어떻게 해야 하나 부장님께 상의드렸다. 그분께 상황을 여쭤보니, 부장님의 공식 메시지를 확인하지 않으셨다고 했다. 다음 단계의 일은 처음 업무 분장상 그분께서 하기로 협의가 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분 혼자서 일을 계속하게 되는 상황이다 보니, 부장님께서 내가 해도 될 것 같다고 조율해 주셨다. 그런데 그날 오전 그분이 메시지를 보냈다. 그다음 일인 홍보와 공지를 자기가 오늘 오후까지 하겠다고.


퇴근 30분 전, 급한 업무로 바쁜 와중 갑자기 그분이 나타났다. '계획서 기안이랑 결재는 내가 받았다. 계획서를 작성한 내가 하면 빠르니 내가 했다. 홍보 포스터 인쇄와 게시도 내가 하면 되는 거냐.' 인사 없이 다가온 그 말에, 나는 순간 말문이 막혔다. 급한 일을 잠시 제쳐 두고, 오전에 보내주신 메시지를 함께 확인하며 '이걸 보고 직접 하시겠다는 뜻으로 나는 이해했다. 하지만 내가 해도 상관없다. 내가 하겠다.'라고 말씀드렸다. 그러니 갑자기 자기 자리로 돌아가시며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아니 뭐 포스터 인쇄하는 게 어려운 일도 아니고' 라며. 그래서 나는 '그 일 제가 해도 괜찮아요. 제가 할게요.'라고 했다. 갑자기 그분이 어이없다며 실소를 터트렸다. '아니 뭐 인쇄가 어려워요?' 공간의 공기가 휘는 기분이었다.


말이 길어지면 오히려 역효과만 날 것 같아, '제가 하겠습니다.'라고 한 문장으로 말씀드렸다. 그 후는 공기를 휘감는 폭력적인 분위기 때문인지, 이유와 맥락을 따라가기 힘든 그분의 말 때문인지 기억이 잘 안 난다. 이야기는 업무 분장으로 흘러갔고, 그분께서 '나는 그런 메시지를 받은 적이 없다'라고 하셨다. 그러자 부장님께서 '제가 그때 보내드렸다'라고 했다. 그분께서 자기가 계약하기 전에 받은 메시지라 없다고 했다. 부장님께서 '그 이후 보내드렸다고' 말씀드렸다. 갑작스러운 고요가 찾아왔다.


이야기의 결론은, 그분께서 인쇄를 해주시고 내가 게시하기로 했다. 폭풍이 휘몰아친 바다를 항해한 기분이었다. 부서를 나오자마자 만난 동료분이 나보고 '무슨 일이 있냐'라고 물었다. 내 눈이 잔뜩 충혈되었나 보다. '침입자'에 대한 빨간불이었을까. 온몸에 피로감이 몰려왔다. 퇴근 후, 소파에만 한참 누워있었다. 밤새 경계를 서는 보초처럼, 내 집, 내 침대에서 웅크려 잤다.


다음 날 어제의 전쟁터로 돌아왔을 땐, 지피지기의 기분으로 그분을 이해해 보기로 했다. 그래야 경계를 잘 설정하고, 공동 업무를 하면서 내가 책임자로 처리해야 하는 중요한 일을 해낼 수 있을 테니. 나의 감정을 걷어내고, 상황만을 보자면 나보다 그분이 심리적 압박은 더 할 것이다. 회사에 마음 기댈 곳도 잘 없고, 자신의 의도를 명확히 표현하고 상대방의 관점을 이해하며 일을 조율하는 것도 어려워하시니. 내면의 불안으로 인한 건지 극도로 방어적일 땐 기억도 잘 못하시는 듯하다.


나를 돌아보면 기질적으로 상대방의 감정에 쉽게 공명하고 영향받는다. 상대의 감정이 느껴지면 내 마음이 불편해져서 대신 해결해 주려 행동 한다. 그분과 함께 있을 때면 그분의 불안과 걱정이 나에게 파도처럼 들이친다. 그래서 그토록 경계를 세우고 싶었는데. 방파제를 세웠는데도, 거대한 쓰나미 앞에 나는 속수무책이었다. 어떻게 하면 다른 사람에게 부정적인 영향 없이 주어진 일들을 잘 해낼 수 있을까. 한숨과 함께 오전 내내 고민했다. 그러자 들이쉬는 들숨에서 기도의 저항감이 느껴졌다. 아 내가 극심하게 스트레스를 받고 있구나. 스트레스에 대항하고 있는 내 몸이 느껴지자 알게 되었다. 아, 내가 나를 지켜야 하는 때이구나. 그래서 나의 장기들이 곤두서고 있구나. 내가 지금, 한껏 경계하고 있구나 하고.


다시 그분께 경계를 명확히 하는 메시지를 보내기로 했다. 메시지의 의도는, 현재 상황을 알리고 앞으로의 행동 지침을 분명히 하여 혼란을 줄이자는 거였다. '일을 적극적으로 해주셔서 감사하다. 하지만, 업무 분장과 기한대로 일이 진행되지 않아 내가 해야 하는 역할이 혼란스럽다. 어떻게 하면 되겠느냐.' 수신과 참조에 부장님과 관리자도 넣어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부장님께도 말씀드리니, 그러라고 하셨다. 점심 무렵이 되니 알 수 없는 화가 났다.


점심을 먹고, 부서 동료와 돌아오는 길, 초여름 낮의 해가 뜨거웠다. 그래도 바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주변을 산책하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부실 동료 분은 나보다 먼저 그 분과 한바탕 소동을 겪었다. 나의 쓰나미 현장에도 같이 있었다. 스트레스 증상을 말하고 어떻게 하면 좋을지 의논하는데 동료분도 화가 나신다고 했다. 우린 어떤 부분에서 공명했다. 혼자만의 분노가 아니라는 점에서 우리의 대화는 심층적으로 이어졌다.


시간과 공간이 지켜지지 않은 비틀어진 기초 위에 개인이 업무 분장을 나눠서 확실히 하고자 하는 노력이 얼마나 무의미한지. 그리고 우리의 체력과 에너지가 소진되어도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말하는 시스템은 이토록 무관심 한지에 대해. 기초가 무너진 모래성 위에 첨탑을 쌓아 무엇하는가. 명백한 귀책사유가 있는 사람에게 현실적 제제를 가할 수 없는 무력한 시스템 위에 쌓아 올린 개인의 처절한 노력은 얼마나 하찮은가.


작렬하는 여름 태양이 내리쬐는 산책 길 위로 바삐 움직이고 있는 까만 개미들이 보였다. 한 마리의 개미가 길을 가다 멈춰서 다른 개미와 더듬이를 비볐다. 이후 두 개미가 같은 방향으로 이동했다. 그들의 의사소통은 '말'이 아닌 '화학 물질'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한 개미의 감각이 다른 개미에게 고스란히 전해진다. '너'와 '나'의 개체로 존재하지만 동시에 거대한 '하나'가 되어 움직이는 개미 무리의 율동을 뜨거운 태양도 막진 못했다. 그래서 개미는 어쩌면 인간보다 더 사회적인 동물일지도 모르겠다. 잠시, 인간인 나를 돌아본다. 언어적 표현과 비언어적 표현을 총동원해 보아도 소통할 길 없는 개체와 공존하는 괴로움과 사회를 위해서는 그저 소모되어야 하는 개인이 느껴졌다. 어쩔 수 없음이, 무력한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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