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시푸스와 함께
유한한 생을 사는 인간으로 글 쓰는 행위를 되돌아본다. 신의 형벌을 받은 시시푸스와 함께.
대학교 1학년, 교수님께서 과제로 내주신 대학생 교양 필독서로 '이기적 유전자'를 읽었다. '나'라는 인간이 유전자를 옮겨주는 '기계'에 불과하다니. 나를 이토록 사랑하는 우리 엄마의 모성이 유전자를 지키기 위한 호르몬 작용일 뿐이었다니. 그 충격이 얼마나 컸던 걸까. 엄마와 싸운 어느 날 밤, '엄마는 결국 엄마 자신을 위해서 나를 사랑하는 것 아니야?' 엄마의 사랑도 이기적이라고. 비겁하고 유식하게 화를 냈다. 그런 나를 쳐다보던 엄마의 표정은 당혹감과 슬픔이 섞였던 것 같다.
생명체를 돌아보면, 인간은 참으로 모순적인 존재임이 틀림없다. 수정란에서부터 세포분열을 시작한다. 생을 위한 분열은 필연으로 텔로미어를 단축하여 노화와 죽음으로 향한다. 살고자 하는 노력이 죽음으로 간다. 발생 후 매 순간이 삶이지만 동시에 죽음으로 향해가는, 존재의 기본적 행위가 모순이다.
객관적 시선에서 사람의 삶이란 무얼까. 신의 시선으로 인생길을 걷고 있는 인간을 본다. 우린 유전자를 건네받아 잘 지닌 후 다음 세대에 건네 주기 위해 태어난 걸까. '~위해'라는 말이 거창하다면, 살고자 발버둥 치다가 죽는 게 나에게 주어진 삶인 걸까.
고민을 품은 채 학부를 졸업하고 대학원에 진학했다. 당시엔 별 목적 없이 공부했다고 생각했는데 돌이켜 보면, '유전자 전달 기계'라는 사실은 '책 트라우마'처럼 내 영혼에 상흔을 입혔었나 보다. 나뿐만 아니라 너도 그런 거야?라는 질문의 답을 찾고 싶었다.
객관적인 시선에서 주관적인 나로 돌아온다. 인생이란 길에 서서 죽음을 마주한 채로, 태어난 시작점을 돌아본다. 걸어온 길엔 겨울날 먹던 엄마의 수제비의 따뜻함과 처음 떠났던 여행의 설렘과 가슴을 도려내는 것 같았던 이별들이 자욱 자욱 남아있다. 신의 설정 값이 의미 없는 나의 소멸이라 한들 과정 속에 나의 감정은 실재한다는 것. 이 인식은 나에게 큰 위안이 되었다. 내가 유전자 보관소이고 따뜻한 엄마의 사랑이 호르몬의 결과물인들, 어떠하리. 이로부터 창발(創發)된 나의 삶이 실재하는 것을.
나는 오늘도 다시 쓴다. 내가 느낀 것, 내가 생각한 것들을. 오르막길을 오르는 '시시포스'와 함께 여정을 시작한다. 그는 돌이 떨어질 것을 알지만 그치지 않고 돌을 올린다. 정상에 돌을 올려두려는 게 아니다. '지난번 굴린 돌의 자국이 남았구나. 오늘 역시 돌은 떨어지겠지. 하지만 나는 다시 돌을 올린다'라고 걸을 뿐. 오늘 그가 걸은 길 위로 새로운 돌 자국을 남길 때 나는 유전자로 반복되는 길 위에 내 글을 남긴다. 신에 대한 반항로서. 실재했다는 증거물로써. 지금 여기에서 이렇게 살다가 간 내가 있었노라. 나의 유전자가 전해진 뒤편에 이러한 삶의 모양이 있었노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