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대한민국 대도시에서
삶이 권태롭다. 희망에서 절망으로, 절망에서 무기력으로. 그리고 종착지는 삶에 대한 권태이다. 권태로움이란 어쩌면, 에너지 준위가 가장 낮은 전자처럼 제일 안정한 상태일지도 모르겠다.
직장 내 괴롭힘의 결과가 나왔다. 상급기관의 통보는 '일정 기간 공간 분리와 업무 분리 조치. 하지만, 직장 내 괴롭힘은 아니다.'. 결과와 근거의 괴리와 현실과 해석의 차이에서 꽤 오랜 시간 혼란스러웠다.
직장 내 괴롭힘의 여건은 1. 직장 내 관계적 우위를 이용할 것, 2. 업무의 적정선을 벗어난 지시, 명령, 모욕행위 일 것, 3. 지속성을 가질 것, 4. 피해자와 조직에 현저한 업무 저하를 일으킬 것이다.
종종 이해하기 어려운 말과 행동으로 주변을 불안하게 하는 A 씨는 계약직이었다. 사회적으로 약자로 분류될 그런 위치. 그래서 관계적 우위가 성립되지 않는다고 보는 것일까. 분명 나와의 갈등 상황에선 나에게 업무 지시를 하고 책임을 지는 '정'의 위치였다. 그리고 업무를 바탕으로 '저 사람이 짜고 일을 벌인 거다.', '자신을 음해하기 위해 일부러 그런 거다.', '다들 한통속으로 나를 괴롭힌다.'등의 공개적인 장소에서 나를 쫓아다니며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결과문에는 나보다 우위 지위에 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는 거였다.
이런 일은 한 달간, 사내 메신저와 공개된 자리에서 10회 넘게 반복됐다. 결과문에는 A 씨가 내게 했던 행동들이 '부적절한 행위'라고 인정했다. 하지만 공개적인 모욕과 폭력적인 언행은 '순간의 감정적 우발'로 치부했다. ‘단기간의 일회성 사건’으로 업무상 적정 범위를 넘어서는 행위라고 보기 어렵다는 것이 결론이었다.
나는 몇 달간 정신과 진료를 받았다. 부원들도 업무에 곤란을 겪었다. 하지만 이런 피해와 모욕성, 명예훼손 발언은 결과문에 전혀 기록되지 않았다. '분리 조치와 소통하는 문화를 만들 것을 권고한다.'라고. 짧은 글 한 장으로 나의 사건이 마무리되었다.
처음에는 이해해보려고 했다. 내가 겪은 일이 사회적으로 보았을 때는 사소한 일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개인과 집단의 견해 차이는 있을 수 있으니까. 하지만 분명 내가 겪은 일은 축소되거나 일부 삭제됐다. 그리고 A 씨가 내게 했던 일들은 순간적 감정의 폭발이기 때문에 문제는 아니라는 결론이 혼란스러웠다. 억울함이 커져갔다. 그렇다면 이 일을 사회적 파장을 일으킬 만큼 키워야 하나? 이 생각을 하는 나를 보며 내가 부서지고 있다고 느꼈다.
며칠을 아팠던 것 같다. 도저히 이렇겐 주말을 보낼 수 없을 것 같아, 함께 상급 기관 신고를 논의했던 관리자를 찾아갔다. 반가우면서도 단호하고 염려스러운 말투와 제스처로 나를 맞이해 주셨다. 관리자와의 대화로 나는 많은 것들을 이해했다. 나의 상황에 딱 맞는 법은 아직 없다. 그리고 법이 없는 곳에 행동하고 책임을 지기엔 또 다른 희생을 낳을 수 있다.
A 씨는 아픈 것 같다. 지금은 국정원이 자기를 도청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동된 부서의 사람들을 들쑤시고 다닌다. 하지만 A 씨의 계약직이라는 신분과 정신적 문제 가능성은 모두가 피할 수밖에 없는 우리 사회의 역린과도 같다. 사회가 책임지고 싶지 않은 진실. 그래서 그들은 그저 문서를 하나 내밀었을 뿐이다. 조직 내 문제를 일으켜도 계약직은 징계위원회의 대상이 아니기 때문에 여기서 손 쓸 방도가 없었다. 그래서 상급기관으로 내가 신고를 했고, 잘못한 사람은 명백하지만 A 씨의 책임을 묻자니 후폭풍이 두려웠겠지. 그래서 법적으로 책임 없도록 글을 쓰고 결과문을 내린 거였다. 나를 보호할 장치는 없다. 나의 일은 우리 사회 회색지대 어느 곳에 있다.
내가 겪는 일은 대한민국이 지나온 사회 문제의 반작용 흐름에 있는 것 같다. 계약직 처우 불공정에 대한 반작용으로 만든 사회 보호 장치의 허술한 지점. 정신병이라는 명분으로 인권을 유린한 시대를 비판하고 함께 사는 사회를 만든다며 도덕적, 정치적 선호를 얻을 수 있는 시점. 하지만 나는 소통할 길 없는 사람들과 살아가야 하는 일개 서민의 위치. 그것이 지금 시대적, 국가적 나의 위치.
또한 조직 속 이기적인 개인의 역학도 있다. A 씨 전임자는 자신의 위치를 확보하기 위해, 다른 회사에 자리를 알아보고 있는 와중에도 관리자에게 말을 하지 않았다. 관리자는 전임자의 위치를 보호해 주기 위해, 다른 구성원들을 조금씩 희생하며 올해 조직을 편성했다. 하지만 전임자는 이동해 버렸고 갑자기 비어버린 자리는 큰 업무 역량을 요구하지 않게 되었다. 그래서 A 씨는 큰 사건을 만들지 않아 계약날까지 무사할 것이다.
시대, 사회, 그리고 개인들의 상호작용이 낳은 결과가 지금이다.
이해를 마쳤을 때는 큰 인생 교훈을 얻었다고 생각했다. 결과문을 받고 채 일주일이 지나지 않아 마음을 추스르는 단계였다. 부서원이 나를 불렀다. 점심시간 산책을 하며 내게 말했다. '자기 혼자 일하는 기분이다.', '사적인 일과 공적인 일을 구분했으면 좋겠다.' 부서원 역시 A 씨에게 폭언을 당해 정신병원 진료를 받았고, 총대를 메고 일을 처리한 나 덕분에 자신의 옆자리였던 A 씨가 이동하게 되어 다행이라고 말하던 사람이었다.
내 마음은 그때 무너졌다. 여름이 지나가는 하늘은 무섭게 푸르렀다. 내가 부서원에게 이 시간에, 이 자리에서, 이런 이야기를 듣고 있구나. 허탈감. 혹은 절망감이었던가. 긴 말로 내 상황을 설명하고 싶지도 않았다. 내게 바라는 건 어쨌든 자신이 일을 더하는 기분이 들지 않게 '공평'하게 심리적 부담을 지라는 거였다. 그냥, 알겠다 하고 일어섰다.
지쳐서 병가를 낼까 했다. 휴직을 좀 할까. 그래야 내가 얼마나 힘든지 증명이 되려나. 내가 지고 가는 일의 무게를 알까. 나의 업무의 구멍이 생기면 그땐 뭐라고 하려나. 여러 가지 감정과 생각이 스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계속 출근을 하고 있는 것은 첫째, 나를 진심으로 걱정하고 응원해 주는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에. 결과문을 받은 날 존경하는 선배가 '지금 이렇게 여기 있는 건 말이 안 돼' 하셨다. '우리 나가자.' 하며 나를 태우고 한 시간 반을 달려 맛있는 아귀찜과 멋진 뷰가 있는 카페의 커피를 사주셨다. 저녁노을 잔잔히 흐르는 강을 보니 내가 겪고 있는 일도 사소하게 느껴졌다. 내 마음을 말씀을 드리니 '그 말을 들은 내가 기쁘다'라고 하신다. 관리자는 부서가 힘들 테니 맛있는 거 먹으라고 회식비를 지원해 주셨다. 고급 레스토랑에서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광대 아프게 수다를 떨었다. 매 시간마다 내가 괜찮은지 정찰병 마냥 와서 웃음을 던지거나, 카페 갈 때마다 내가 좋아하는 라테 한 잔씩을 꼭 사다주시는 분들도 계셨다.
나를 진심으로 위로해 주시는 분들은 나를 통해 상처받았던 과거의 자신을 보는 것 같다. 시선 속 내가 잘 이겨내고 성장하기를 바라는 진심이 있다. 상황에 맞는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인간은 타인의 욕망을 욕망한다.'라고 하지 않던가. 내가 잘 이겨내길 바라는 그들의 마음을 이루길 내가 바란다.
둘째, 내가 이 전쟁에서 지고 싶지 않아서. 휴직을 하면 일상의 빈 곳에서 나는 거대한 흐름과 치열하게 싸울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 내가 바꿀 수 없는 것들과 미련하게 싸우고 싶진 않다. 그래서 일상 속에서 싸우기로 했다. 상급 기관에 결론 도출을 위해 필요했던 자료를 요구하고 매일 A씨를 마주하지만 나는 너랑 관계없이 내 삶을 살아낼 거야라고 보여줄 거다. 친밀하게 지냈던 부서원과는 심리적 거리는 두는 방법을 배우고 있다. 내가 심리적 거리를 두니 조금 불안해하는 것 같은데 그건 부서원의 몫으로 남겨두고, 나는 나를 지키고 나답게 살기 위해 나의 전쟁에 집중한다.
여러 개의 전선과 오랜 전쟁을 위해 나는 에너지를 비축한다. 안정한 전자처럼 에너지 준위가 낮은 상태에 머무르고 있다. 반응할 에너지가 없다. 그러니 삶이 권태롭다. 한편으론, 나만 이런 건가 내가 유별난가 싶은 외로움도 있다. 그래서 묻고 싶다. 2025년 대한민국, 이 권태로운 도시의 어딘가에서 나와 비슷한 전쟁을 치르고 있을 당신에게. 이 지리멸렬한 일상을 어떻게 견디고, 또 살아내고 있는지. 혹 너무 외롭진 않은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