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멀미

가을 산책

by 길바닥 화초

올해 여름, 일본 소도시 여행을 떠났다. 워낙 작은 도시라, 운행하는 비행기도 자그마했다. 여름의 대기는 불안정했고, 그 속의 작은 비행기는 미세한 변화에도 출렁거렸다.


그래서 오랜만에 비행 멀미를 했다. 속이 메스꺼워서 혼났다. 어렸을 적, 수학여행 버스에서 처음 멀미를 느낀 후, 탈 것들에 적응되었는지 한 동안 모르고 지냈는데 오랜만에 괴로웠다.


착륙 후 뒤틀린 속을 달래러 고춧가루를 찾았다. 매콤함이 위장을 스치니 현실감이 돌아온다. 화끈한 입안을 달래러 물을 마시며 생각했다. 우리는 왜 멀미를 하는 걸까.


멀미의 까닭을 찾아보았다. 다양한 원인이 있지만 내가 이해하기론, 감각기관으로 들어오는 정보와 의식적으로 인지하는 정보 차이 때문에 뇌가 혼란을 느끼는 거였다. 주로 차를 타고 갈 때 책을 읽으면 멀미를 경험하게 된다. 인지하는 글자들은 움직이지 않지만 무의식에 포착되는 정보들, 소리, 전정기관의 떨림, 가속감 등등은 움직인다고 신호를 보낸다. 뇌는 혼란스러워한다. 그래서 나는 지금 대체 뭘 하고 있는 건가, 하고.


비행 멀미와 닮은 감각을 일상에서 경험한 적이 있다. 고요한 방 안 내 머릿속엔 과거, 미래가 떠다닌다. 해결하지 못했던 일의 원인을 다각도에서 살펴보거나, 앞으로 일어날 일을 여러 관점에서 대비한다. 몸은 지금 여기 있지만, 생각은 과거나 미래를 떠돈다.


유난히 더웠던 올해 여름, 주로 실내에 머물렀다. 일정한 온도, 사람 말소리, 고여있는 공기. 계절도 시간도 느껴지지 않는 그 속에서, 내 생각만 과거와 미래를 헤맸다. 지금의 감각으로 돌아오려 손등을 쓰다듬어보아도 현실에 집중하기가 쉽지 않다. 기분 전환을 하러 나가면 에어컨 실외기 소리만 삼각함수처럼 반복된다. 그 소리 사이로, 말매미 소리도 섞여 들어온다. 어느 쪽이 기계이고 어느 쪽이 생명인지 구분이 안 될 정도로. 일상 멀미처럼, 가벼운 어지러움이 인다.


여름의 진득함이 지루해질 때쯤, 가을에 접어들었다. 스치는 공기가 상쾌하고 푸르른 하늘이 선명하다. 커지는 공간감과 뚜렷한 시간의 흐름에 기분이 좋아 매일 저녁 공원으로 산책을 나섰다. 솔솔 부는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 소리가 들리고 팔을 스치는 공기는 점점 서늘해진다. 고요한 것 같은 머릿속엔 폭죽처럼 답이 터졌다가, 곧바로 또 다른 질문이 피어난다. 그러면서 나는 계속 걷는다.


문득 깨달았다. 일상 멀미가 잠잠해진 걸. 방 안에 있을 땐 고여 있던 나의 감각과 자꾸 흘러가는 생각의 속도차가 있었다. 하지만 걷다 보니, 내 감각 기관이 아는 거다. 지나가는 계절과 내가 있는 공간에 대해서. 감각기관으로 수집된 무의식 정보가 의식적 생각의 방향과 속도를 조절한다. 공항에서 혀끝의 매콤한 감각이 나를 현실로 잡아주었듯, 일상에서는 발바닥으로 느껴지는 땅의 감촉과 뺨을 스치는 공기가 나의 멀미를 잠재워 준다.


산책이란 건 어쩌면 나의 생각의 속도와 감각의 정보를 조율하는 과정인지도 모르겠다. 생각이 길을 잃을 때면, 나를 진단해 본다. 현재 감각과 동떨어져 있진 않았었나 하고. 그러면 자연스레 신발 끈을 묶고 현관문을 연다. 기분 좋은 차분함이 문밖에 있다.

작가의 이전글삶의 倦怠로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