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출 일지 1화
세 번의 퇴사, 그리고 네 번의 입사.
어떻게 보면 끈기가 없지만 또 다르게 보면 능력이 있다 할 수 있지 않은가?
간단히 내 약력을 소개해 보자면 꽤나 복잡한 삶을 살았다. 짧지 않은 인생 동안 뭐 그리 시작하고 때려치운 게 많은지. 우선 나는 자아가 형성됐을 때부터 단 하나의 목표만이 있었다. 그렇게 뚜렷하지도 명확하지도 않던 꿈은 그저 한 회사에 들어가는 것이었다. 그 회사가 뭘 하는 사람들이 들어가는지도 중요치 않았다. 격동의 90년대생인 나는 어렸을 적 TV에 나온 그 회사가 뇌가 다 자라기도 전에 한 곳에 박히고 말았다.
그렇게 형체 없던 꿈을 좇길 몇 년, 관련된 학과를 알게 되고 그 학과에 진학하기 위해 과감히 재수를 결정했다. 물론 6 논술 3 정시가 다 떨어진 탓이기도 했다. 신촌에서 둘째 가는 재수학원에 들어가 1년을 죽은 듯이 공부만 했다. 결과는 대박이었다. 그래서 막상 원하는 학과에 가려하니 점수가 아까웠다. 내 평생 잘한 일 중 하난데, 점수에 맞춰 학과를 진학했다.
그럼에도 꿈을 포기 못한 나는 대학을 다니던 중 취업 준비를 슬슬 시작하라는 주변의 압박에 못 이기는 척 원하던 회사 계약직에 도전했다. 운이 좋게도 덜컥 붙어 버려 곧장 휴학을 하고 1년을 다녔다. (어찌나 붙을 생각을 안 하고 지원했는지, 그 사이 공무원 책 10만 원어치를 충동구매했다. 그 책들은 방구석 어딘가에 3년간 박혀있다가, 후에 지인에게 기증되었다.)
그 후 무사히 1년을 다닌 후 학교로 돌아와 신나는 대학생활을 즐기다 보니 4학년이 됐다. (후에 1년간 회사 생활에 대해 얘기할 날이 오길 바란다.) 또다시 취업의 압박이 다가오고 있었다. 가고 싶던 곳이자 계약직 근무를 한 그 회사는 공채를 뽑지 않기로 유명했기 때문에 하는 수 없이 비슷한 업종의 회사로 원서를 넣고 졸업 전 한 회사에 붙었다. 이것도 참으로 신기한 일이 아닐 수가 없었다. 물론 그 업계에서는 나름 이름 있는 회사였지만 대중이 모르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는 걸 그때는 알지 못했다.
이 불경기 속 당당히 취업한 4학년이라니! 곧장 교수님께 다음 주부터 수업에 들어갈 수 없다는 안 죄송한 메일을 보내고 첫 출근을 기다렸다. 하지만 세상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나는 출근하자마자 주변의 만류로 하루 만에 때려치웠다. 이게 두 번째 퇴사되시겠다. 그리고 밝은 얼굴로 다음 수업에 참석했다.
그 후 졸업을 유예하고 또 다른 동종 업계의 회사에 계약직으로 붙었다. 그곳은 대중도 아는 회사였기에 천천히 공채 준비를 하며 경력을 쌓을 생각이었다. 나는 첫날 8시에 출근하여 5시에 퇴근했다. 응 오전 8시에 출근해서 다음날 새벽 5시라는 뜻이다. 전 직장을 하루 가고 때려치웠기에 어떻게든 버텨 보려 했지만(개 등신 같은 짓) 한 달이 되었을 때 나는 때려치웠다. 주변에선 한 달도 많았다며 극찬을 했다. 세 번째 퇴사였다.
이제 다시는 그 업계 쪽으론 머리카락 한 올도 보게 하지 않겠다는 일념 하에 곧바로 전공으로 방향을 틀었다. 학원을 등록해 5달 동안 관련 자격증을 8개 정도 취득했다. 학원이 끝난 달부터 취업 준비를 해 두 여달 후 나름 이름 있는 기업에 입사가 결정되었다.
그리고 지금 나는 다시 때려치울 생각을 하고 있다. 쉼 없이 달려와 번아웃이 심하게 온 탓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이곳은 도저히 이리 봐도 저리 봐도 답이 없는 회사였다.
신입은 계란 프라이 업무를 처음 맡은 셰프와도 같다.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불 앞에 던져져 계란으로 프라이를 만들라는 지시를 받는다. 열정이라는 불을 얼마나 어떻게 세게 해야 이 프라이가 반숙이 될지 흰자도 안 익어 이도 저도 아닌 무언가가 될지 새카맣게 타버려 쓰레기가 될지는 신입 자체는 알 수 없다.
옆을 둘러보면 이미 프라이는 물론 양손으로 5성급 호텔 미슐랭 3 스타를 받은 스떼끼를 만드는 셰프가 있는 것이다. 그들에게 프라이 어떻게 만들어요? 하면 그걸 왜 못해? 하고 답이 돌아오는 것이다.
그나마 착한 셰프는 레시피를 던져준다. 그럼 적혀 있는 것은 간단하다. 약불에 계란을 깨고 적당한 때에 불을 꺼서 소금이든 원하는 것을 추가하면 된다. 어 쉽네 ~ 옆에서 거들면 이 정도는 간단한 것처럼 느껴진다.
어떻게든 형편없는 프라이를 만들어 짜잔 그래도 완성했어 이 자식들아 하고 보여주면 의미 없는 칭찬과 100개는 거뜬하겠지? 하는 과업이 돌아온다.
100개가 동일한 프라이면 얼마나 좋겠느냐고? 불행하게도 이건 반숙 이건 완숙 이건 반숙도 완숙도 아닌 적당한 익힘, 원하는 게 모두 다르다. 레시피엔 적혀 있지 않은데. 열심히 주변을 둘러보자 가장 막내로 보이는 셰프가 있다 가서 혹시 반숙은 어떻게 하나요? 물어보면 돌아오는 대답은 간단하다. 완숙되기 전에 불을 끄면 돼요. 자신감에 넘쳐 자리로 돌아오면 그때부터 고민이 시작이다. 언제가 완숙인데? 반숙은 어느 정도가 반숙이지? 완성하려면 소금을 쳐야 해 케쳡을 쳐야 해?
어떻게든 눈치를 봐 가며 만든 프라이 100개를 뿌듯하게 가져가자 상급 셰프가 말한다. 누가 너 맘대로 하래? 억울한 마음이 차오르지만 하는 수 없이 처음부터 다시 만들기 시작한다. 그때 주방 전체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이 주방에서 계란팀이 가장 바쁜데, 인원은 딱 넷 뿐이다. 그 마저도 팀장은 이미 정년퇴직을 바라보고 막내는 10년 차가 넘었다. 모두 베테랑뿐이다.
불안한 마음에 주변을 둘러보면 다른 곳은 화기애애하다. 이게 그릇이야 ~부터 시작하는 다른 팀 신입들을 보면 상대적 박탈감이 이루 말할 수가 없다. 그럼에도 우리 팀은 프라이 100개를 성공시켰다는 명목 하에 이제 간장계란밥을 100개를 만들라고 지시한다. 아직 완숙도 못하는데.
그렇게 몇 달을 버티다 보면 서서히 사람들의 얼굴이 들어온다.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표정으로 출근한 그들의 눈은 퀭하기 짝이 없다. 일말의 생기를 잃지 않으려 노력하며 나는 절대로 저런 텅 빈 눈을 갖지 않으리라 다짐한다. 그러다 문득, "어? 어디 아파요?"라는 소리를 종종 듣곤 할 때면 아 나도 적응을 해 버렸구나 하고 마는 것이다.
세 번의 퇴사와 네 번의 입사, 누군가는 끈기 없다며 비난할 수 있지만 한 편으로는 능력이 있지 않은가? 세 번이나 네 번이나 어차피 오너가 아닌 이상 회사는 그만두게 되어 있다. 그렇게 생각하며 나는 매일 품에 고이 접어 놓은 사직서를 내밀 적절한 타이밍을 기다리며 출근을 해버린 신입이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
사진은 제가 먹은 관자 요리인데요, 아주 맛있었습니다. 글과는 전혀 관련이 없음을 안내 안 해 드려도 아시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