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바다가 사라졌다
그날도 같은 아침이었다.
빛은 창문 아래로 조용히 흘렀고, 내 몸은 그것을 거부하며 이불 속에서 부풀어 있었다.
움직이지 않으려는 몸, 움직이려는 시간.
익숙한 힘겨루기였다.
가스불 위에서 기름이 지직거렸다.
달걀의 노른자가 천천히 붉은 빛을 품으며 부풀었고,
간장 한 방울이 후라이팬 안에서 조용히 터졌다.
나는 그것을 밥에 얹었다.
뜨거운 것과 짠 것, 비릿한 것의 결합.
그것이 이 아침의 모든 일이었다.
그리고, TV에서 들려왔다.
익숙한 뉴스 앵커의 얼굴.
낯선 침묵.
그의 입이 무너지듯 열렸다.
“전 세계의 바다가 사라졌습니다.”
그 순간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방 안의 사물들도 마찬가지였다.
컵은 물기를 말리고 있었고, 달걀껍질은 부엌 싱크대 옆에 조용히 기울어져 있었다.
아무도 놀라지 않았다.
단지 내가, 아주 오래 전부터 이 말을 기다려왔던 것처럼 느껴졌다.
그 말은 너무 조용해서
내 몸속으로 천천히 흡수되었다.
어떤 독처럼, 또는 아주 미세한 비처럼.
눈에 보이지 않되 분명히 닿는 방식으로.
해안도시에서 보내온 위성사진에는
푸르름이 없었다.
남아 있는 건 갈라진 진흙과 오래된 조개껍질의 더께,
빛바랜 고래의 그림자였다.
사람들은 그것을
‘해양의 후퇴’라고 불렀고,
‘자연의 침묵’이라고도 불렀다.
하지만 그것은 후퇴도, 침묵도 아니었다.
부재였다.
존재의 맨살을 들어내는, 거대한 결핍.
며칠 동안 도시의 하늘은 이상하리만치 맑았다.
습도는 급격히 떨어졌고,
강의 물은 매일 조금씩 줄어들었다.
사람들은 출근을 했고, 회의를 열었고, 고기를 굽고, 맥주를 마셨다.
하지만 그들의 말에는 파도가 없었고,
눈빛에는 수면이 없었다.
아이들은 바다를 모른다.
그들은 바다가 어떻게 웃는지도,
어떻게 슬퍼하는지도 알지 못한다.
그들은 이제,
바다를 종이 위에만 그릴 수 있다.
시간이 흐르면서 사람들은 적응해 갔다.
물 대신 탄산음료를 마셨고,
수영장은 여전히 운영되었으며,
곤충 단백질이 생선회를 대신했다.
바다가 사라졌다는 사실은,
점점 뉴스의 마지막 꼭지로 밀려났다.
하지만 나는 밤이면 여전히
내 손끝이 물에 잠기는 감각을 느꼈다.
무릎 아래로 파도가 스며들고,
귀 속으로 밀려오는 해조류의 냄새가 있었다.
그것은 몸이 기억한 바다였다.
그것은 마음보다 오래 살아 있는 기억이었다.
어떤 과학자는 말했다.
“우리가 바다를 떠나보낸 것이 아니라,
바다가 우리 곁을 떠난 것이다.”
나는 그 말에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바다는 사랑을 받을 수 없는 존재였다.
우리는 그것을 먹고, 파고, 오염시키고, 밀어냈다.
그리고 결국,
그 사랑하지 못한 대가로
그 존재 전체를 잃어버린 것이다.
나는 여전히 계란을 굽는다.
간장을 떨어뜨리고,
밥을 비빈다.
그리고 무언가를 기다린다.
다시, 바다가 돌아오기를.
아니면,
적어도 누군가가 바다의 부재를 슬퍼해 주기를.
그러지 않는다면
우리는 언젠가,
바다가 사라졌다는 사실조차
잊어버릴 것이기 때문이다.
난 부재를 느끼며 언제나처럼
지겨운 아침을 맞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