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기하다
군대 시절, 행군 중에 곪아버린 발톱이 있었다.
그때의 통증은 시간이 지나 잊혔지만,
노랗게 변색된 흔적은 아직도 남아 있다.
발톱을 볼 때마다 묘한 불쾌감이 밀려온다.
그런데 그 불쾌감이 나를 현실로 끌어당긴다.
살아온 흔적, 견뎌낸 증거,
지워지지 않는 시간의 무늬 같은 것.
가끔 내 인생을 그 발톱에 비유하곤 한다.
한때는 곪아 있던 마음,
썩은 생각, 덧나버린 관계들.
그것들은 어느새 말라붙어 내 안에 눌러앉아 있다.
나는 그것들을 외면했고,
시간이 약이라며 무심히 덮어두었다.
하지만 상처는 나비의 날갯짓처럼
언젠가, 어딘가에서 다시 되돌아온다.
외면한다고 사라지는 건 아니었다.
피한다고 잊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래서 나는 회기하기로 했다.
불필요한 감정,
쓸모없는 욕망,
억지로 쌓아올린 허세를 벗겨내고,
무(無)로 돌아가기로 했다.
비워내는 일은 고통스럽지만,
그 고통 속에서만 진짜 평온이 자라난다.
밤마다 잠들지 못하던 시간,
허공을 메우려 켜던 야한 영상,
외로움에 못 이겨 붙잡던 관계들,
그 모든 것이 나를 ‘무’에서 멀어지게 했다.
그러나 이제는 안다.
결핍은 채워야 할 대상이 아니라,
그 자체로 살아 있는 감정의 증거라는 것을.
텅 빈 마음 안에서
나는 나를 다시 본다.
마치 군대 시절,
그 검고 두꺼워진 발톱을 깎으며
새살이 돋아나던 순간처럼.
나의 회귀는, 퇴행이 아니다.
돌아감은 다시 시작하기 위한 준비다.
나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
그곳에서 무언가를 피워내려 한다.
어쩌면 ‘무로 돌아간다’는 건
모든 것을 잃는 게 아니라
잃은 것들로부터 자유로워지는 일일지도 모른다.
밤은 길고, 생각은 무겁다.
그러나 이 고요한 무게 속에서
나는 서서히 살아간다.
지워지지 않는 발톱의 흔적처럼,
내 삶도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겠지.
다만, 조금씩 투명해질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