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단편집

사라져가는 것들

by 박요한

〈사라져가는 것들〉

— D-50, 사라지기 50일 전


그는 오늘도 눈을 떴다.

창문 밖으로는 아직 잠들지 못한 새벽의 공기가 맴돌고 있었다.

햇살이 들기 전, 방 안의 공기는 희미하게 차가웠다.

그는 일어나 이불을 정리하고, 아무 생각 없이 운동화를 꿰었다.


조금은 쌀쌀해진 바람이 얼굴을 스쳤다.

가을은 그렇게 왔다.

냄새로, 온도로, 그리고 말할 수 없는 어떤 기분으로.

그는 천천히 뛰었다.

특별히 목적지가 있었던 건 아니다.

그냥, 멈춰 있으면 더 깊이 가라앉을 것 같아서였다.


길가의 가로수는 여전히 초록이었지만,

잎의 가장자리가 아주 조금 바래 있었다.

그는 그 변화를 매일 목격하고 있었다.

조금씩, 아주 조금씩, 사라져가는 색들.

그는 그것을 보고 있으면 마음이 잠잠해졌다.

자신도 그 잎사귀처럼 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집으로 돌아와 커피를 내렸다.

커피포트가 끓는 동안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소리가 너무 선명해서 오히려 불편했다.

컵에 김이 올라오고, 김이 사라졌다.

그는 그것이 마음에 들었다.

무언가가 잠시 존재했다가 조용히 사라지는 그 순간이.


하루는 여느 때처럼 흘러갔다.

정해진 시간에 밥을 먹고,

정해진 시간에 책을 펴고,

정해진 시간에 창밖을 바라보았다.

모든 것은 여전히 정확했고, 그 정확함이 불안할 정도로 고요했다.


가끔 그는 생각했다.

사라지는 일에는 의식이 필요할까.

그저 잠들듯이,

서서히, 아무도 모르게 조금씩 흐려지는 것이라면

그 또한 자연의 일부분이 아닐까.


거울 앞에 서면, 어딘가 낯선 얼굴이 비쳤다.

어제보다 조금 더 옅은 눈빛,

조금 더 부드러워진 윤곽.

그는 그 변화를 유심히 바라보았다.

무언가가 빠져나가고 있다는 걸 느꼈지만,

그게 두렵지는 않았다.


밤이 되면 작은 탁자에 앉아 펜을 들었다.

“오늘도 무사히 지나갔다.”

짧은 문장 하나를 남기고 불을 껐다.

그리고 조용히 누웠다.


그는 이제 남은 50일을 세지 않는다.

날짜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

그저 매일의 공기와 소리, 빛과 냄새를 기억하려 했다.

그 모든 것들이 자신 안에서 조금씩 희미해지고 있다는 걸

그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희미함은 평화로웠다.

사라진다는 건

어쩌면 완전히 없어지는 게 아니라,

세상과 조금씩 겹쳐져 투명해지는 일인지도 모른다.


그는 내일도 일어날 것이다.

창문을 열고, 바람을 들이마시며,

조용히 또 하루를 보낼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누구의 기억에도 소란을 남기지 않은 채,

그는 천천히, 아주 천천히

기억 속으로 스며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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