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과 공허는 같은 접시 위에 놓인 두 개의 과일 같았다.
겉으로 보기엔 둘 다 잘 익어 있었다. 윤기가 있었고, 향도 났다. 사람들은 그것을 보고 삶이 제법 괜찮아 보인다고 말했다. 그러나 칼을 대보면 안은 달랐다. 한쪽은 지나치게 물렀고, 다른 한쪽은 씨만 가득했다. 나는 오래전부터 그 접시 앞에 앉아, 썩어가는 것과 비어 있는 것을 번갈아 집어 먹으며 살아왔다.
매순간 행복했다.
정확히 말하면, 행복해야 할 순간들을 성실하게 수행했다. 아침에 일어나 물을 마시고, 해야 할 일을 적고, 적은 일을 지워가고, 식사를 하고, 대화를 하고, 웃어야 할 자리에선 웃었다. 사람들은 그런 나를 보고 단정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자신을 잘 관리하는 사람. 무너지지 않는 사람. 내일을 준비하는 사람.
하지만 숨이 잠깐 멎는 듯한 고요가 찾아오는 순간이 있었다.
이를테면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고, 혼자 거울 속 나를 보게 되는 몇 초.
샤워기 물줄기가 어깨를 때리고, 욕실 환풍기 소음이 갑자기 멀게 들리는 몇 초.
자기 전, 불을 끄고 난 뒤 천장이 아니라 어둠 그 자체를 바라보게 되는 몇 초.
그 몇 초 동안 공허는 늘 늦지 않게 도착했다.
마치 출근 도장을 찍듯 정확하게.
이루어내야 하는 것들, 채워내야 하는 것들, 누구도 요구한 적 없지만 스스로 목록을 만들고 스스로 줄을 그어가며 수집하던 것들이 있었다. 성취, 미래, 안정, 증명, 어른스러움, 적당한 체면, 그리고 지나치게 예의 바른 불안. 그런 것들은 원래 눈에 보이지 않아야 하는데, 내 안에서는 언제부턴가 물성을 얻었다. 그것들은 허파 속에 조금씩 쌓였다. 먼지처럼, 혹은 이산화탄소처럼. 죽을 만큼 유독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그게 문제였다. 사람은 즉시 죽는 것보다 천천히 숨 막히는 데 더 잘 적응하니까.
내일도 부지런히 살아가야지.
나는 그 말을 매일 정답처럼 외웠다.
기도문처럼 중얼거렸고, 주문처럼 반복했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그 문장은 기능을 잃었다.
방향을 잃은 돛단배처럼, 불 꺼진 방 안을 맴돌았다.
바다도 아닌데 배가 떠 있었고, 바람도 없는데 돛이 흔들렸다.
아무래도 내 머릿속 어딘가에 항구를 가장한 고장이 난 것 같았다.
그날도 별다를 것 없는 화요일이었다.
회사에서 돌아와 현관문을 닫았을 때, 신발장 위에 검은 봉투 하나가 놓여 있었다. 나는 혼자 사는데, 가끔 택배 기사도 양심이 있어서 문 앞에 두고 가지, 집 안까지 넣어주지는 않는다. 잠깐 도둑을 의심했지만, 도둑이라면 조금 더 가져갈 만한 걸 건드렸을 것이다. 내 집에는 중고로도 값이 안 나갈 우울과 마감 기한 지난 쿠폰들밖에 없었다.
봉투에는 아무 글자도 없었다. 보낸 사람도, 주소도, 경고문도 없었다. 검은색은 언제나 자신만만했다. 세상에는 색조차도 자기 확신이 넘치는 것들이 있다.
나는 봉투를 열었다.
안에는 종이 한 장과, 조그마한 열쇠가 들어 있었다.
종이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귀하의 공허가 일정 기준을 초과하여 세계 전이 대상으로 선정되었음을 안내드립니다.
나는 한동안 그 문장을 읽었다.
세 번쯤 읽었을 때부터는 화가 났다.
내 인생에서 드디어 국가기관이 나를 인정해주는 줄 알았더니, 겨우 ‘공허’ 부문 우수 시민 표창이라니.
종이 아래쪽에는 작고 친절한 문장이 이어져 있었다.
불편을 드려 죄송합니다. 전이는 자정에 자동으로 시작됩니다.
취소를 원할 경우 열쇠로 문을 잠그지 마십시오.
문제는 내 집에 그 열쇠가 맞을 만한 문이 없다는 것이었다.
욕실 문은 오래전에 부서져 잠기지 않았고, 현관문은 전자식이었다.
나는 봉투를 들고 집 안을 한 바퀴 돌았다. 베란다, 싱크대 아래, 세탁기 옆, 침대 밑. 혹시 내가 모르는 사이 판타지 세계 입구가 옵션으로 딸려온 전셋집이라도 계약한 건 아닐까 싶었다.
자정까지는 세 시간이 남아 있었다.
나는 라면을 끓여 먹었다.
세계가 전이되든 말든 배는 고팠다. 인간은 대체로 멸망 직전에도 면을 삶는다. 그것이 인간의 존엄인지 비극인지 나는 아직 판단을 유보하고 있다.
라면 국물을 반쯤 남겼을 때, 거실 벽지가 울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착각인 줄 알았다. 오래된 벽지 틈이 습기를 먹고 우는 소리를 낼 리 없으니까. 그런데 자세히 보니, 벽은 정말 울고 있었다. 아주 조용하게, 사람처럼 흐느끼는 게 아니라 젖은 종이가 조금씩 찢어질 때 나는 소리로. 벽 한가운데가 어두워지더니, 누군가 안쪽에서 손가락으로 밀어 올린 것처럼 볼록해졌다. 그 표면에 검은 실금이 생겼고, 금은 입처럼 벌어졌다.
나는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거기에는 문이 있었다.
처음부터 있었던 것처럼 자연스러우면서도, 방금 생겨난 것처럼 불길한 문.
나무도 아니고 철도 아닌 재질이었다. 오래된 관 뚜껑과 젖은 책등을 섞어 만든 것 같은 표면. 손잡이는 없었고, 딱 하나, 열쇠 구멍만 있었다.
나는 웃었다.
이쯤 되면 무서워해야 하는데, 이상하게 우스웠다.
평생 세상으로 나가는 문은 보이지 않더니, 세상 밖으로 나가는 문은 이렇게 노골적으로 생기다니.
나는 봉투 속 열쇠를 들었다.
금속은 차갑지 않았다. 미지근했다. 누군가 오래 쥐고 있었던 체온이 남아 있는 것처럼.
취소를 원할 경우 열쇠로 문을 잠그지 마십시오.
이상한 안내문이었다. 열지 말라는 게 아니라 잠그지 말라니. 그럼 이건 이미 열려 있다는 뜻일까. 아니면 내가 안으로 들어간 뒤 돌아올 길을 막지 말라는 뜻일까. 혹은 반대로, 반드시 돌아오지 말라는 뜻을 예의 바르게 돌려 말한 것일 수도 있었다. 관료주의는 언제나 잔인한 말을 친절하게 쓴다.
자정이 가까워질수록 집 안의 공기가 묘하게 가벼워졌다.
이산화탄소가 빠져나가는 걸까, 나는 생각했다.
드디어 내 폐 속에서도 어떤 행정 처리가 완료된 걸까.
그리고 정말로, 숨쉬기가 조금 편해졌다.
그 순간 나는 알아차렸다.
내가 떠나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쌓여 있던 것들이 먼저 떠나고 있다는 걸.
성취해야 한다는 강박, 증명해야 한다는 조바심, 잘 살아야 한다는 강요, 무너지면 안 된다는 습관. 그것들은 내 몸을 집으로 쓰고 있었을 뿐이었다. 공허가 문제라고 생각했는데, 어쩌면 공허는 비어 있는 공간이 아니라, 그런 것들이 빠져나간 자리에 잠시 생기는 정직한 정적이었는지도 모른다.
문은 조금 더 벌어졌다.
안쪽에서는 바람 냄새가 났다. 흙과 피, 타버린 허브, 오래된 양피지, 비에 젖은 모피, 그리고 아주 멀리서 끓고 있는 수프 냄새. 이상하게도 그 냄새는 어린 시절처럼 느껴졌다. 돌아가 본 적 없는 곳이 그리운 방식으로.
문턱 너머는 어두웠다.
그러나 완전히 어둡지는 않았다. 저 깊은 곳 어딘가에서 붉은 불빛이 흔들리고 있었다. 횃불인지, 용의 숨인지, 세금 고지서가 불타는 빛인지 알 수 없었다. 판타지 세계란 원래 그런 식이다. 지나치게 장엄하거나, 지나치게 허술하거나, 둘 중 하나다. 그리고 대체로 둘 다다.
나는 마지막으로 내 방을 돌아보았다.
싱크대에는 설거지가 쌓여 있었고, 건조대에는 덜 마른 셔츠가 걸려 있었고, 침대 맡 충전기 선은 꼬여 있었다. 아주 평범한 삶의 잔해였다. 떠날 만한 이유는 없어 보였고, 그렇다고 남을 이유도 뚜렷하지 않았다. 사람은 대체로 대단한 결심보다 사소한 무게 차이로 인생을 건넌다.
그때 휴대폰이 울렸다.
광고 문자였다.
고객님, 더 나은 미래를 위한 대출 상품을 안내드립니다.
나는 한참 웃었다.
세계가 나를 다른 차원으로 이주시키기 직전인데도 금융권은 미래를 포기하지 않았다.
인간 문명은 끝내 이 판타지보다 끈질길 것이다.
웃음이 멈추자, 문 안쪽에서 무언가 걸어 나왔다.
처음에는 사람인 줄 알았다. 두 다리로 서 있었고, 망토를 걸치고 있었고, 얼굴이 있어야 할 자리에 얼굴 비슷한 것이 있었다. 하지만 가까워질수록 그것은 사람이라기보다 사람을 급히 흉내 낸 존재에 가까웠다. 눈은 지나치게 많았고, 입은 하나뿐인데 표정은 여러 개였다. 마치 여러 감정을 동시에 담당하다가 인력 부족에 시달리는 공무원 같았다.
그것이 허리를 숙였다.
“전이 관리국에서 나왔습니다.”
목소리는 의외로 피곤했다.
오래 야근한 콜센터 직원의 목소리였다.
“공허 누적치가 기준 이상이셔서 모시러 왔습니다.”
“안 가면요?”
“안 가셔도 됩니다.”
“그럼 왜 온 거죠?”
“대부분 결국 가시거든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설득력 있는 말이었다. 인생의 중요한 선택들은 늘 자율적이라고 안내되지만, 선택지의 표정은 이미 정해져 있는 경우가 많다.
“거긴 어떤 곳인데요?”
그 존재는 잠시 서류를 넘기듯 허공을 만졌다.
“검, 마법, 왕국, 혁명, 예언, 괴물, 신탁, 배신, 귀족, 학살, 사랑, 역병, 회귀자, 멸망 예정, 그리고 형편없는 행정.”
“마지막이 제일 현실적인데요.”
“그래서 적응은 빠르실 겁니다.”
문 너머에서 차가운 바람이 불어왔다.
나는 셔츠 깃을 여몄다.
갑자기 우스운 생각이 들었다. 이 모든 것이 거대한 은유라면 너무 성의 없지 않나. 공허한 인간이 판타지 세계로 끌려간다니. 작가가 막다른 골목에 몰리면 흔히 쓰는 전개 같았다. 하지만 현실도 가끔은 삼류 소설처럼 무책임하게 굴었다. 문제는 우리가 독자가 아니라 등장인물이라는 점이었다.
“가면 행복해지나요?”
내가 물었다.
그 존재는 처음으로 망설였다.
“행복은 보장 사항이 아닙니다.”
“그럼 뭘 보장하는데요?”
“더 이상 같은 공허에 질식하지는 않게 됩니다.”
그 말이 이상하게 정직하게 들렸다.
행복을 준다고 말하는 것보다, 같은 공허에 계속 잠식되지는 않을 거라고 말하는 쪽이 훨씬 믿을 만했다. 희망은 늘 과장 광고 같았지만, 변화는 가끔 사실이었다.
나는 문턱 앞에 섰다.
방 안은 조용했다.
냉장고 돌아가는 소리, 멀리서 지나가는 자동차, 위층에서 무언가 끄는 소리. 세계는 여전히 성실하게 제 기능을 수행하고 있었다. 오직 나만이 기능을 상실한 부품처럼 그 안에서 달그락거리고 있었다. 어쩌면 오래전부터 나는 다른 세계가 아니라, 다른 고장 방식을 원했던 건지도 몰랐다.
문 안쪽의 어둠은 내 얼굴을 비추지 않았다.
거울과 다른 점이었다.
거울은 늘 현재의 나를 돌려주지만, 어둠은 아직 정해지지 않은 것을 품고 있었다.
나는 뒤를 돌아보지 않고 물었다.
“거기서 저는 뭐가 되죠?”
그 존재가 대답했다.
“대개는 별거 아닙니다.”
나는 다시 웃었다.
그 말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이 세계에서는 늘 뭔가가 되어야 했다. 더 나은 사람, 더 단단한 사람, 더 성공한 사람, 덜 불안한 사람. 그런데 저쪽 세계에서조차 별거 아닐 수 있다면, 오히려 좀 살아볼 만하지 않을까.
나는 열쇠를 쥔 손을 폈다.
열쇠는 어느새 사라지고 없었다.
처음부터 내 손에 없었던 것처럼.
문은 완전히 열렸다.
그 안에서 짐승의 울음소리와 누군가의 웃음소리, 종소리와 비명, 시장통의 흥정, 갑옷 부딪히는 소리, 그리고 아주 멀리서 누군가 수프를 휘젓는 소리가 한꺼번에 들려왔다. 살아 있다는 건 늘 지나치게 많은 소리가 동시에 들리는 일이었다.
나는 한 발을 내디뎠다.
그리고 그 순간, 내 뒤의 방 안에서 불이 꺼졌다.
아주 잠깐, 나는 생각했다.
이제 돌아갈 수 없겠구나, 가 아니라
드디어 그 불을 내가 끈 게 아니구나, 하고.
문이 닫히기 직전, 마지막으로 보인 것은 내 방 한가운데 남겨진 라면 그릇이었다. 국물 위에는 기름이 얇게 굳어가고 있었다. 행복과 공허처럼, 서로 섞이지 못한 채 같은 표면 위에 떠 있었다.
그것은 이상할 만큼 아름다웠다.
그리고 우스웠다.
내가 들어선 세계의 첫 하늘은 검은색이 아니라 짙은 자주색이었다.
죽기 직전의 멍처럼 아름다운 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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