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팔꿈치를 주세요>를 읽고 새긴 것들
책을 구입하기 전 필수적으로 하는 일이 있다면 책의 둘러싼 포장지를 살펴보는 것이다.
뒷면과 표지, 한 바퀴 둘러싼 띠지까지.
우리가 이 책을 왜 구매해야 하는지, 어떤 걸 어필하고 싶은지 별 어려움 없이 확인할 수 있는
나름의 메시지들이 그곳에 적혀있다.
나는 보통 책에서 발췌된 하나의 문장에 홀려 책을 구입하는 일이 허다하다.
책을 자주 읽지는 않지만 끊임없이 읽으려고 노력하며 구매는 지속적으로 한다.
나와 같은 류를 보고 sns에서는 '출판시장의 빛과 소금'이라는 농담을 하기도 한다.
이러면 어떠고 저러면 어떠하리. 이렇게나마 재밌고 설레는 책들이 나오는 데에 이바지할 수 있다면
나는 닿는 데까지 계속해서 책을 구매하고 싶다.
... 바람은 그러하나, 아무래도 책장에 책들이 아무런 의미 없이 쌓여 가는 게
영 신경이 쓰여서 이럴 시간에 사 온 책은 다 읽어보자!라는 작은 다짐으로 이 글을 시작했다.
“나는 나한테 주어진 모든 세계를 빠짐없이 살아보고 싶어요”
이번 <팔꿈치를 주세요>라는 책도 띠지에 적힌 위의 문구를 보고 망설임 없이 결제를 했다.
어쩌다 저런 말이 나오게 됐을지, 그 흐름은 얼마나 다정하고 로맨틱할지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이미 1차 독서를 마쳤다고 할 수 있다.
구병모 작가님의 ‘버드 스트라이크’ 이후로 오랜만에 나만 읽고 싶을 만큼 소중한 책을 만났다. 평소보다 글이 너무 잘 읽혀서 점점 넘길 수 있는 책장이 줄어드는 게 아쉬운 경험을 했다.
에세이나 평소에 즐겨 읽는 SF소설들을 읽으려고 하니 쉽게 손가락이 안 떨어졌다. 그간 여러 일들로 속이 너저분했던지라 다른 것보다도 마음 노곤 노곤하게 해주는 사랑 이야기가 보고 싶었다.
얼마 전 아끼던 책갈피를 너무 허망하게 지하철에서 잃어버린 적이 있는데, 나의 경우에는 소중한 무언가를 내 손에 쥐게 되었을 때 잃을 걱정을 하기보단 소중한 것이 내 곁에 있는 게 좋아서 그 순간을 즐기는 편인 것 같다. 물론 잃었을 때는 상실감이 때로는 크게 찾아오기도 한다.
6개의 단편 중 안윤 작기님의 <모린>에서는 있음과 없음 그리고 그 사이를 잇는 ‘잃음’ 총 3가지의 세계가 있음을 등장인물의 언어로 표현하는 부분이 나온다. 세 세계를 빠짐없이 살아보고 싶다는 그 마음이 내 어딘가를 울컥하게 했다.
“둘 중 하나만 택해야 한다면 난 나중에 잃는 것을 선택할 거예요. 그건 두 세계를 살아보는 거잖아요. 어쩌면 세 세계 인지도 모르죠. 있음과 없음, 그 둘을 연결하는 잃음. 나는 나한테 주어진 모든 세계를 빠짐없이 살아보고 싶어요.”
(인상 깊은 문장과 떠오르는 이미지를 엮어 만든 발췌 이미지입니다.)
이 세상을 살아갈수록, 점점 해를 거듭할수록 나는 모든 것에 ‘단언’ 할 수 없어졌다. 세상은 너무 시시각각으로 바뀌는 터라 어제와 오늘이 다르고 오늘과 내일이 다를 거라는 게 여실하게 느껴졌기 때문. 사람 간의 감정도 비슷한 영역인 것 같다. 뭐든지 ‘절대’라는 건 존재하기 어렵고 변화는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며 살고 있다.
사랑에는 정말 다양한 형태가 있다. 이성, 동성 간의 사랑이 있을 수 있고, 사랑의 감정이 없을 수도 있으며 자기 자신을 사랑할 수도 있다. 한 사람이 이 지구를 구석구석 다 살펴보는 데 있어서 과연 그 한 사람의 생 안에서 완벽하게 관찰이 마무리될 수 있을까?
우리는 아마 죽을 때까지도 모르고 가는 무언가가 있을 거다. 그게 사랑이 됐든 인간이 됐든 외계인이 됐든.
그러니 지레짐작하지 않고, 단언하지 않으며, 어떤 것을 한 개의 틀에 가두지 않는 것이 내가 실천할 수 있는 가장 큰 노력이자 화합이라고 생각한다. 앞으로는 좀 더 다양한 사랑들이 당당히 모습을 드러내고 마음껏 그 사랑을 누릴 수 있었으면 한다.
<팔꿈치를 주세요>를 읽는 동안 나는 일상의 쉼표를 찍었다.
어딘가 담담하고 건조한 문장들을 따라가다 보면 나도 모르게 한 박자 느리게 호흡을 하게 되는 거다. 모든 것이 평소보다 한 템포 느려지면 그때는 비로소 놓치고 있던 것들을 마주하게 된다. 너무 빨리 흘러가는 세상에서, 그 속도에 함몰되어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것들이 내 안에서 떠오르는 것을 느낀다.
나의 경우에는 내 안에 허술하게 뚫린 구멍들을 발견했다. 나아가고는 있지만 좀처럼 진전이 없어 의문이 들던 차에 어쩌면 계속 같은 구간에서 구멍 속으로 빠지고 빠지고 빠져서 결국 제자리로 돌아오는 게 아닌가란 생각이 들었다. 나는 알지 못했던 내 안의 함정을 발견한 거다.
그러다 문득 떠오른 생각은 경험이란 내가 가진 구멍을 발견해가는 것이고, 성장은 그 빈틈을 채워나가는 과정이라는 거다. 그렇다면 삶은 그 빈틈을 끊임없이 채워나가는 우리들의 걸음이지 않을까.
빈틈이란 말이 조금 정 없이 느껴진다면 나는 의미 있게 <빈칸>이라고 정리하고 싶다. 내 안의 무수히 떠오른 빈칸들에 어떤 말을 새겨 넣을지, 어떤 문장으로 원동력을 줄지, 나를 정의할지 조금은 가볍게 게임을 하는 느낌으로 채워나가고 싶다.
느린 호흡으로 담담한/날것의/마음에 스미는 사랑 이야기를 보고 싶으시다면
'큐큐퀴어단편선' 의 네 번째 책 <팔꿈치를 주세요> 를 추천드려요!
https://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2088338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