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렌지 ㄱ'

그냥 음식 에세이

by 민달래


태초의 음식이 있다면 만두

charlesdeluvio-D-vDQMTfAAU-unsplash.jpg Photo by charlesdeluvio on Unsplash


아빠의 기억을 빌리자면 나는 이유식의 다음 스텝으로 물만두의 길을 밟은 아기였다. 남이 떠먹여 주는 밥만 열심히 먹을 수 있던 시절, 곱게 끓여준 이유식을 냉대하는 날이면 비장의 무기처럼 만두를 꺼냈을 아빠의 모습을 상상해본다. 어릴 때 습관 커서까지 유지된다는 옛 속담이 틀린 것 하나 없이 나는 지금까지도 만두 중에서는 물만두를 제일 좋아한다. 보통 만두라면 3~4개만 먹어도 허기를 해결할 수 있을 만큼 큼지막한 게 보통인데. 물만두는 한입에 쏙 넣기 좋게 자그맣고 속이 옹골지게 뭉쳐있으며, 찜기 없이도 만들 수 있고 부드러운 겉피가 뜨순 물로 코팅되어 있어 꿀떡꿀떡 잘 넘어가는 점이 매우 좋다.


생각해보자면 만두같이 다채로운 변신이 반가운 음식도 없다. 기름에 바싹 튀겨 먹어도 맛있고 매운 음식과 곁들여 먹어도 합이 좋은 데다가, 폭폭 뜨건 김에서 쪄 먹으면 입 안과 몸이 풍족하게 따듯해지니 좋고, 꿀꿀한 날씨에는 레토르트 사골 국물에 냉동 만두를 몇 개 넣고 계란 물을 한 바퀴 둘러 풀어주면 한 끼 남부럽지 않은 만둣국도 손쉽게 만들 수 있다. 워낙에 한 봉지로도 다양하게 즐길 수 있으니 n년 동안 자취하면서 친구들의 냉동실 속 브랜드 냉동만두 하나쯤은 꼭 들어있었던 이유가 아주 간단하게 설명이 된다.


자취 얘기와 만두가 함께 연결되는 또 다른 이야기가 하나 더 있다. 대학생이 됐을 때부터 사회인이 된 지금까지 오랜 시간 자취를 하면서 제일 서럽던 일을 꼽자면 실수로 차가운 만두를 먹었을 때였다. 나는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이 기억을 단순한 에피소드로 여겼었다. 오랜만에 고등학교 친구들과 만나 카페에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가 자취하면서 힘든 점이 대화 주제로 나왔다. 각자만의 불편 사항들을 꺼내놓던 와중에 문득 혼자서 차가운 만두를 먹다가 울었던 기억이 떠올라서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를 했는데 말을 하다 보니 마음이 꽤 먹먹해지는 거다. 그때 처음 느꼈다. 아, 그게 나한테는 좀 서러운 일이었구나. 슬픈 기억이었구나.


회사에 다니고 얼마 안 돼서 새벽에 배가 고픈 적이 있었다. 새벽까지 야근하고 돌아와 무언가 거창하게 해 먹기도 애매한 시간이었다. 모든 끼니를 회사에서 해결하는 것이 일상이다 보니 냉장고에는 달걀 1개도 들어있지 않았다. 그래도 자취 초반 아빠와 함께 장을 보면서 1+1 하는 냉동만두 두 팩을 사서 한 팩은 본가에 두고 한 팩은 자취방으로 챙겨왔던 것이 생각이 났다. 빡센 루틴의 회사생활에 한창 적응하고 있던 때, 그 좋아하는 만두에도 별 흥미가 가지 않아 냉장고에 2달이 넘게 방치해놨었다. 늦은 새벽이고 편의점에 가기도 애매한데 먹을 건 없으니 그제야 만두를 먹고 싶은 마음이 슬쩍 들었더랬다. 주섬주섬 꺼내서 냄비에 물을 넣고 팔팔 끓이며 냉동된 물만두 대여섯 개를 퐁당퐁당 빠뜨렸다. 분명 푹 삶았다고 생각했고 상을 펼 생각도 없이 만두가 든 접시를 들고 벽에 기대앉아서 무턱대고 한 개를 입에 넣었다.


내 평생 그렇게 차가운 만두는 처음 먹어봤다. 입안에서 살얼음과 부대낀 만두 속이 이리저리 굴러다녔다. 아무래도 냉동실에서 꽝꽝 얼어있었으니 겉면이 익는 정도로는 안까지 완전하게 따듯해질 수가 없나 보다. 분식집에서 뜨끈한 만두를 사다가 한겨울 바깥에 5시간을 빼놓으면 이 시림을 좀 닮을 수 있을까. 한 입을 삼키는 게 고역처럼 느껴졌다. 방의 불이라곤 부엌 쪽 간이 등 하나만 켜 놓고 집의 절반 이상은 어둠으로 뒤덮인 새벽. 홀로 구석에 구겨져서 차가운 덩어리를 삼켜내는 기분이 썩 좋지 않아 그만 찔끔찔끔 울어버렸다. 혼자서 늦은 새벽 눈물을 흘리는 건 늘 적응되지 않는 일이다. 누가 듣는 것도 아닌데 소리 내서 울지 않으려고 했다. 이미 눈은 젖어서 시야가 부옇게 변했지만, 집안이 온통 번져 보였지만. 혹시라도 우는 소리를 듣게 되면 나 스스로가 정말 크게 슬퍼질 것 같았다.


아마 그즈음 나는 발들인지 얼만 안 된 사회에서 허우적대는 중이었고 뭐가 잘못된 건지, 잘된 건지도 모르는 채 하루하루 나 자신을 지켜내기 급급했다. 속절없이 팔팔 끓는 물 속을 떠다니는 물만두 덩어리들처럼 파도같이 다가오는 사회의 흐름 속에서 이리저리 휩쓸려 다니기 바빴던 시절이었다. 어쩌면 배가 고팠던 게 아니라 속이 허했던 건지도 모른다. 몸에 시린 바람이 너무 많이 들어서 그걸 좀 달래고자, 속을 채우고자 만두를 꺼냈는데, 믿었던 만두마저 냉하게 날 외면한 기분이니 울고 싶었을 거다.


얼마나 속상했으면 개인 SNS에도 만두 속이 너무 차가워 서럽다고 한탄하는 글을 올렸다. 포스팅한 지 얼마 안 돼서 고등학교 친구의 댓글이 하나 달렸다. ‘전자렌지 ㄱ’ 너무도 간단명료한 다섯 글자에 부은 눈으로 그만 피식하고 웃어버렸다. 당연한 사실이지만 음식이 너무 차갑다면 물에 다시 넣고 끓이거나 전자레인지에 돌려먹으면 그만인데 슬픔에 빠진 사람은 그 당연할 걸 쉽게 떠올리지 못한다. 보글보글 끓는 물 속에 빠져 소리와 시야가 차단당한 것처럼 말이다. 우울감에 빠져 있던 나를 건져낸 건 친구의 단순한 한마디였다.


사람은 하나의 음식으로도 필요 이상의 감정을 느끼곤 한다. 한 덩어리의 만두가 받기에는 과한 의미를 부여 하기도 한다. 음식은 요구한 적도 없는데 멋대로 추억을 넣고 이름을 붙여서 그걸 먹을 때마다 떠올린다. 만약 어느 날 외계인 침공 같은 게 발생해서 사람과 사람이 아닌 자를 구분하라고 한다면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 뭐야!’라고 물어봐야겠다. 사람이라면 적어도 8초 이상은 고민할 테니 말이다. 좋아하는 음식과 싫어하는 음식에 대한 이름을 하나씩은 알고 있고 그걸 왜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설명할 수 있는 생명체는 사람뿐일 거다. 음식 하나에도 울고 웃고 감동하는 그런 생명체들이 수십억도 넘게 살아가는 곳에 태어나서 다행이다. 내가 만두를 먹고 울었다는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하더라도 따끔한 충고를 해주고 다정하게 손 잡아주고 등을 두드려줄 이들이 곁에 있으니 말이다. 이제는 더 이상 만두를 먹으며 울지 않는다. 차가운 음식을 만나더라도 에이- 다시 데워야겠네 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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