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내가 좋은 엄마인 줄 알았습니다』앤절린 밀러, 윌북 출판사
얼마 전, 2019년이 100일 남짓 남았을 무렵에 아직 생기지도 않은 아이에게 보내는 100통의 편지를 썼던 일이 있다. 딱히 유별난 모성애로 인한 행동은 아니었다. 다만, 엄마가 처음인 내가 아이에게 할 만한 이야기를 미리 상상해보고 싶었다. 그 100일 동안 나는 아이에게 할 수 있는 이야기 중 넋두리와 잔소리나 그렇지 않은 것들을 구별해보고 싶었다.
아이에게 신세한탄을 하는 것도 가정폭력의 한 방법이 될 수 있다는 이야기를 어디선가 본 적이 있다. 그래서인지 이번 책이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지 참 궁금했다. 하지만, 이 책은 엄마 혹은 가정의 이야기에 국한된 이야기만을 하고 있지는 않았다.
저자인 앤절린 밀러의 삶을 통해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비단 좋은 엄마가 되는 방법 혹은 이상적인 가정을 꾸리는 것뿐만이 아니었다. 이 책은 엄마의 역할에 국한된 이야기가 아닌, 진실성 있는 인간관계를 맺는 방법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녀의 가정이 보여주는 모습을 통해 다양한 종류의 인간관계를 엿볼 수 있다. 부모, 자식, 친구, 애인 혹은 선생과 제자나 고용주와 고용인, 정부와 유권자에 이르는 등 세상의 다양한 형태의 관계를 비추어 볼 수 있다. 밀러는 이와 같이 다양한 인간관계에서 벌어질 수 있는 건강한 상호의존의 정의와 기생적인 의존의 정의를 구분하여 정리하고 있다.
인생에서 얻을 수 있는 가장 좋은 것들은
우리가 피하려고 노력했던
'변화'에서 오곤 한다.
그녀는 평생을 바쳐 남편과 자녀들이 살아가면서 겪을 수 있는 문제들을 대신해서 해결해주었다. 덕분에 그녀의 가족들은 아늑하고 단란한 가정에서 20여 년간 (겉으로 보기에)평화로운 가정을 안위할 수 있었다. 다시 말해, 그녀는 남편이나 자녀들이 살아가면서 누릴 수 있었던 '변화'에 직면하지 못하도록 한 몸 바쳐 희생(그녀의 표현을 빌리자면)했던 것이다. 가족 간에 발생할 수 있는 마찰을 미리 예측하고 그들이 부딪히지 못하도록 막는 것 또한 그녀의 역할이었다.
극 중 밀러가 본인이 인에이블러임을 인지하고, 가족들에게 그들이 원래 담당해야 했던 일들의 책임을 돌려주자, 그들은 놀랍게도 그들은 당면한 상황에 대해 귀찮아하거나, 그녀를 원망하지 않았다. 오히려 마침내 그 일들이 본인의 손에 떨어졌음을 기뻐하고 나아가 성장하는 모습까지 보였다. 그녀는 지금까지 그들이 변화를 겪으며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본의 아니게 막고 있었던 것이다.
돌이켜보지 않을 수 없었다. 나에게도 그녀와 같은 인에이블러의 기질이 있는 건 아닌지. 어렸을 적에 부엌에서 설거지를 하거나 잘 마른빨래를 정리하려고 하면, 할머니가 나서서 당신의 손으로 직접 하시곤 했다. 우리는 주변에서 종종 '직접 해야 직성이 풀리는'사람들을 만나기 쉽다. 나 또한 알게 모르게 가정에서, 연인 관계에서, 직장에서 우리 할머니와 같은 모습을 보였을 것이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내 남자 친구는 간혹 내가 부탁을 하게 되면 (연기인지 알 수 없지만)종종 기뻐하고 이따금 설레어하는 모습까지 보여준다는 사실이다. 손수 함으로 얻게 되는 기쁨이 있다. 그 기쁨을 대신 취해서는 안될 일이다.
감정은 선택할 수 없어도
반응은 선택할 수 있다.
우리는 감정을 선택할 수는 없지만, 반응을 선택할 수는 있다. 분노의 감정을 느끼더라도 화를 낼지, 다스릴지는 선택의 몫이다. 우울증 환자가 침대에 계속 누워있을지, 일어나 밖으로 나갈지 역시 어떠한 선택을 하느냐의 문제인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자신의 감정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감정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상황을 통제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이 책은 이야기한다. 그리고 그 방법은 누군가에게 배우거나 가르칠 수 없다. 살아가며 몸소 채득하고 또 수정과 보완을 반복해야 한다.
이와 같은 능력은 누군가에게 의존하는 상황에서는 성장하기 어렵다. 우리에게 안정감을 느끼게 해주는 기본적인 건강한 상호의존과 기생적인 의존관계는 분명히 차이가 있는데, 그 차이점을 알아차리기는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하는 만큼 한 발 뒤로 물러 서서 보아줄 수 있는 인내와 여유가 필요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