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먼 바다로 나아가기 위해선
한 번도 해외여행을 가 본 적이 없었을 때, 도서관에만 가면 그렇게 여행기를 빼다 읽곤 했었다. 그 시절에 여행 에세이부터 관광 실용서까지 가리지 않고 읽었던 까닭은 넉넉하지 않았던 주머니 사정 때문이었다. 비행기 삯이라곤 언감생심 넘 볼 수도 없는 처지였기 때문에, 대리만족이라도 하고 싶었던 것이리라.
글은 종종 가본 적 없는 곳으로 우리를 데려다준다. 이 작은 반도 밖으로 벗어나 본 적이 한 번 도 없었던 내가 프라하의 어느 광장에서 아코디언을 연주하는 소년에 대해 상상하거나, 발코니에 놓인 피라미드가 담긴 샴페인 잔을 그릴 수 있었던 것은 그곳을 다녀온 누군가의 경험이 적힌 여행기 덕분이었다.
2019년의 마지막 달에 나는 세부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12박 13일이다. 여태까지 이만큼이나 길게 여행을 다녀와 본 적은 없었다. 막탄의 앞바다에서 한 번에 갈 수 있는 다이빙 포인트에 이어, 코론섬의 바라쿠다 레이크와 렉 다이빙 포인트에 이르기까지 여행 일정 중 8일 동안, 총 24번 물속을 들락거렸다. 이제 곧 서른에 접어드는 나를 위해 큰 맘먹고 저지른 일이었다. 나와 애인은 둘이 합해 웬만한 월세방 보증금에 버금가는 비용을 지불해가며 13일간의 여행 계획을 세웠다. 불과 5개월 전에 다녀왔던 세부였지만 한국에서의 찬바람이 거세질수록, 퇴사일이 다가올수록 세부의 바다가 그리워서 견디기가 힘들었다. 그 고요한 물속에 있고 싶었다. 들리는 것이라고는 나의 숨소리밖에 없던 그 바다가 그리웠다.
한 수 앞을 내다보며 일하는 것에 적잖이 지쳐있었다. 육지에서는 어떠한 일을 하고 있으면, 그다음의 일까지 머릿속에 그려 둬야 한다. 하지만 물속에서는 그럴 필요가 없다. 팔을 한 번 저어도 어느 정도 텀을 두고 그 추진력이 붙기 때문에 급하게 움직일 필요가 없다. 급한 마음에 허우적거린다면, 불필요한 동작만 늘어날 뿐이다. 불필요한 동작을 줄이면 정말 필요한 동작만 하게 된다. 들숨과 날숨에 온 정신을 집중하다 보면, 모든 것이 느리게 흘러간다. 육지에서 하는 무의식적인 호흡과는 다르다. 물속에서 우리는 숨 쉬는 법부터 다시 배우게 된다.
확실히 여행은 여행지에 보내는 시간만을 위해 떠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여행을 떠나기 위해 들이는 비용과 노력 대비, 누릴 수 있는 시간이 턱없이 아쉽기 때문이다. 여행지에서 떠나온 우리는 길을 걷거나, 하늘을 올려다볼 때 그곳에서 보냈던 시간들을 떠올린다. 이를테면, 강남의 번화가를 걸으며 오사카의 도톤보리를 떠올린다거나, 용산을 어슬렁거리다 덴덴타운을 떠올리는 식인 것이다. 물론, 내게는 다이빙 영상에서 들을 수 있는 다이버들의 호흡소리를 들으며 세부의 바닷속을 상상하는 일이 가장 즐겁다.
다시 말해, 우리는 목적지를 향해 떠나기 전의 설렘과 그곳을 떠나온 뒤 남는 잔향을 음미하기 위해 그렇게도 여행을 갈망하는 것 같다는 말이다.
이 기록은 다음 설레임을 느끼기 전까지
이전의 잔향을 누리기 위함이다.
언더더時