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 아홉의 마지막 다이빙, Coron, Olympia Maru
당최 이해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입수 직후부터 지금까지 보이는 것이라곤 앞서 가는 다이버의 오리발 끝자락 밖에 없을 정도로 시야는 엉망이었다. 나는 수많은 관광객들이 새해 정초부터 이런 곳까지 종이비행기 같은 필리핀 국내선 항공기를 타고 오는 이유에 대하여 짐작하기를 포기했다.
이역만리 천리길을 헤치고 온 내게 남중국해가 보여준 것이라고는 사위를 분간하기 힘들게 만드는 희뿌연 부유물뿐이었기 때문이다. 사방에 떠다니는 부유물은 한겨울에 내리는 폭설 혹은 눈보라를 연상케 했다. 그것들은 고개를 돌릴 때마다 시야를 가리며, 우리가 앞으로 나아가는 것을 더디게 만들었다. 1m쯤 앞서서 유영하고 있는 현지 다이버(이하 맥스)는 웃옷을 입지 않은 데다가 반바지 차림이었다. 그는 간혹 가다 맨살에 닿는 부유물이 불쾌한 듯 양 손으로 다리며 팔을 비벼서 부유물을 떨어냈다.
수면 위에 떠있는 방카(주로 다이빙할 때 타게 되는 배의 한 종류)에서부터 30m 정도 가라앉은 수심에 난파선이 있었다. 2차 세계대전 때 일본군이 몰았다는 그 화물선은 뱃머리에서부터 선미까지 130m 정도 되는 웅장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물론, 이런 시야에 선박의 시작과 끝을 육안으로 확인할 길은 없었지만, 입수 직전 맥스의 설명에 의하면 그것은 웅장했다.
비록 나는 지금 그 웅장한 선박의 130m 중 10m도 채 제대로 보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 영 못마땅했지만, 어쨌든 그것은 거대했다. 시야를 가리는 부유물들 사이로 드러나는 그것의 실루엣은 분명 끝이 없어 보였으니까. 앞서가던 맥스가 뒤로 돌아, 뒤따르던 우리에게 손전등으로 신호를 보냈다. 선내로 진입하겠다는 사인이었다. 우리는 그에게 선내로의 진입이 문제없음을 알리는 사인을 보냈다.
옆으로 누운 채 거대한 직사각형의 입구를 벌리고 있는 난파선의 안쪽은 캄캄했다. 손전등이 비추는 부분을 제외하고는 육안으로 인식할 수 있는 시야의 가시거리가 10m를 조금 넘는 것 같았다. 6개월 전에 막탄에 왔을 때는 마리곤돈(marigondon cavern)이라는 커다란 동굴에 들어갔던 적이 있었다. 커다란 입구를 따라 안으로 헤엄쳐 들어갔다가, 들어간 길을 그대로 되짚어 나왔던 그 널찍한 동굴과 달리, 난파선 내부의 통로는 한 사람이 겨우 지나갈 수 있을 정도로 비좁았다. 배가 옆으로 누워 있었기 때문에 복도의 가로폭이 통로의 높이를 이루고 있었다. 더불어 무너진 철골의 잔해들이 얼기설기 놓여 있었기 때문에, 이제 갓 다이빙 로그수 50회를 채웠을 뿐인 나는 바닥에 가라앉거나 천장에 머리를 부딪히지 않기 위해 호흡만으로 내 몸의 부력을 조절하는데 온 신경을 집중해야만 했다.
돈이 될 만한 것은 십수 년에 걸쳐, 이미 다 건져갔을 그 잔해 속에서 맥스는 기어코 숟가락 하나를 찾아냈다. 좌우로 놓인 원기둥 형태의 커다란 엔진룸을 지나, 주방 구역을 지날 때 즈음이었던 것 같다. 한참을 숟가락으로 공기방울을 가지고 놀며 우리는 그렇게 난파선 깊숙한 곳까지 진입하고 있었다. 마스크의 렌즈를 벗어난 시야에서 예고 없이 튀어나오는 철골의 빈도수가 늘어나는 것으로 보아, 난파선의 꽤 깊숙한 내부까지 진입한 것임을 알 수 있었다. 무언가 이상한 낌새를 알아차린 것은 가장 앞서가던 맥스였다.
평평한 내부를 지나 경사를 이루어 쓰러져있는 철골 사이를 한참 이리저리 빠져나가고 있을 때였다. 맥스가 뒤돌아 나와 나의 버디(이하 리)를 바라보았다. 이윽고 손전등을 들어 내 뒤를 따라오던 리의 뒤쪽으로 신호를 보냈다. 한 번, 두 번. 맥스가 한참을 그렇게 신호를 보냈지만, 어둠 저 건너편에서 아무런 응답도 받지 못한 모양이었다. 그는 나와 리에게 이 곳에서 정지하라는 신호를 보내곤, 좁은 통로 속 우리를 비켜지나 뒤쪽을 향해 헤엄쳐갔다. 나와 리는 멀어져 가는 맥스의 모습을 잠자코 바라만 볼뿐이었다. 그렇게 10m쯤 우리에게서 떨어졌을까, 잠시 후 맥스는 우리에게 자기가 있는 쪽으로 건너오라는 신호를 보냈다. 무언가 잘못되어가고 있었다.
우리는 바깥에서 흘러 들어오는 빛을 따라, 왔던 길을 되돌아가기 시작했다. 다섯이 한 팀을 이뤄 입수했지만, 지금은 나와 맥스 그리고 리만이 있을 뿐이었다. 일행이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에 공포감이 엄습했기 때문에, 마스크에 자꾸만 습기며 물이 차올라 앞을 분간하기가 점점 더 어려워졌다. 침착하려고 노력하면 노력할수록 심박수가 올라가고 호흡이 가빠지고 있다는 사실이 더 예민하게 느껴질 뿐이었다.
높아지는 불안감에 자꾸만 숨을 크게 들이쉬자, 내 몸은 자꾸만 위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머리 위로는 녹슨 철골들이 아가리를 벌리고 있었다. 내 뒤를 따라오던 리는 내가 철골에 머리를 부딪히지 않도록 계속해서 나를 아래로 끌어내려줘야만 했다. 정신을 바로 차리지 않으면 다른 사람들까지 위험해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자 침착해지지 않을 수 없었지만, 걱정이 되는 것은 더더욱 어쩔 수 없었다. 우리의 시야에서 사라진 일행은 두 명이었고, 그중 한 명은 곧 내 남편이 될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동굴이나 난파선과 같이 머리 위가 막혀 있는 환경은 위험하기 때문에 평소보다 몇 배는 각별한 주의를 필요로 한다. 핀 킥 몇 번이면 수면 위로 떠오를 수 있는 오픈워터 지역과 달리, 비상시에도 헤엄쳐서 물 밖으로 탈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일 년에도 꼭 몇 명씩 죽어나가는 다이버가 있다는 이야기가 떠올랐다. 평소에는 그저 숙련 다이버가 초보 다이버에게 겁주는 소리 정도로 치부해버렸던 이야기가 처음으로 온몸의 털을 곤두서게 만들었다. 나대지 마라 심장아, 진정하렴 나의 호흡기관아. 시야에서 놓쳐버린 일행들을 찾을 때까지 조금만 참을성을 보여주렴. 많이도 안 바랄 테니 5분만 내게 시간을 주길.
빛을 따라 나오자 곧 출구가 보였다. 사방이 막혀있는 어두운 난파선의 내부를 벗어났다는 사실만으로 호흡이 정상적으로 돌아오는 것이 느껴졌다. 탁 트인 공간으로 나오자, 어디선가 희미하게 쇠가 부딪히며 내는 경쾌한 소리가 들려왔다. 탐침봉을 흔드는 소리였다. 잃어버린 일행 중 다른 한 명인 인스트럭터 쎈이 탐침봉을 흔드는 소리라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소리가 멀리서 들려왔지만, 물속에서는 소리가 들려오는 방향을 가늠하는 일이 쉽지 않다. 마치 누군가가 나를 둘러싸고 사방에서 탐침봉을 흔드는 것처럼 사방에서 소리가 울리는 것 같이 들려오기 때문이다. 얼마간 주변을 두리번거리자 맥스가 탐침봉 소리가 들려오는 방향을 알아냈다. 이윽고 같은 방향에서 잃어버렸던 일행들이 이쪽으로 헤엄쳐 오는 것이 보였다.
한 자리에 모인 우리는 다행히도 모두 멀쩡해 보였다. 마스크 잔뜩 습기가 가득한 나를 제외하고는 다들 안도하는 모습이었다. 시즌이 시즌인지라, 같은 난파선 포인트에 여러 팀이 몰려든 것이 화근이었다. 복잡한 난파선 안에서 나의 애인은 엇갈려 나오던 다른 팀과 우리를 헷갈려 길을 놓쳤노라고 출수한 이후에 나에게 말해 주었다. 다행히 쎈이 그의 뒤로 따라붙었고, 그들은 우선 난파선 내부를 빠져나와 바깥에서 우리가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말도 덧붙였다.
그 길로 출수할 줄 알았는데, 맥스는 우리의 남은 잔압을 확인하고는 난파선 주변을 조금 더 둘러보기로 한 것 같았다. 우리는 선내로 진입하진 않았지만, 난파선의 주위를 돌며 막탄에 비해 크기가 거대한 나비고기며 붉은색의 경산호 사이를 유유히 헤엄쳐 나아갔다. 사방이 자잘한 섬으로 둘러싸인 막탄의 바다와 달리, 남중국해의 망망대해를 마주한 코론의 바다에서 나고 자란 그것들에게 몸길이 1m쯤은 우스워보였다.
코론의 바다에서는 막탄에서 주로 보았던 니모와 같이 아기자기한 피그미들을 볼 수는 없었다. 절벽 지대에 붙어사는 히드라와 누디 역시 찾아보기 힘들었다. 하지만, 난파선에는 평소라면 관찰하기 어려웠을 해마라던지 전기조개와 같은 것들이 서식하고 있었다. 어두운 물속에서 선명하게 흐르고 있는 전류를 실제로 보고 있자니 다소 현실감이 없기도 했다. 전반적으로 물고기들의 움직임이 굼떠 보였다. 난파선 격벽에 붙어 있는 1m 정도 되는 거대한 복어는 거의 정지한 듯 보였지만,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우리가 가까이 다가가 사진을 찍어도 개의치 않는 모습을 보였다.
출수 직전에 내려다보았던 선박의 상판에 활짝 피어 있는 지름이 1m는 족히 넘어 보이는 거대한 경산호(엄마는 사진을 보더니 영지버섯이 바닷속에서도 나더냐고 물었다.)가 펼쳐져 있는 정원은 확실히 막탄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아기자기하고 생동감이 넘치는 막탄의 바다와는 달리, 코론의 바다는 비교적 색이 빠진 듯하면서도 고요한 모습이었다. 물고기들의 움직임마저도 정적이었다.
처음 입수할 때 눈살을 찌푸리게 했던 탁한 시야 속에서 이제는 고요함을 느낄 수 있었다. 코론 일정 내내 우리와 함께한 맥스는 코론에 있는 다이빙 샵 소속이다. 교육생 시절부터 막탄에서 우리와 함께 했던 막탄 다이빙 샵 소속의 크리스와 그의 팀은 비교적 유쾌한 성격에 농담을 즐겼다. 그와 달리 맥스는 차분하며 신중한 모습을 일정 내내 보여줬다. 맥스가 보여주었던 차분함이 막탄에 있는 크리스의 것과 사뭇 달랐던 이유는 코론의 바다 때문이었지 않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