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아래 세상을 보기 위해서
바닥을 치기 위해선 폐에 있는 공기를 과감히 빼야 한다. 우리 몸이 지니고 있는 부력은 물 위에 뜰만큼 충분해서, 하늘을 바라본 자세로 수면 위에 누워 폐에 공기를 가득 들이마시는 것만으로도 물아래로 가라앉지 않는다.
처음에는 폐에 잠수할 수 있을 만큼의 공기만 남겨두는 일이 쉽지 않았다. 어쩐지 숨을 다 뱉어 버리면 물속에서 익사라도 할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먼바다로 나아가기 위해선 힘을 빼고 파도에 몸을 맡기는 것이 중요하듯이 깊은 바다로 잠수하기 위해선 바다의 품에 자연스럽게 녹아내리는 법을 알아야 했다. 하지만 불과 작년까지만 해도 바다수영 경험은 전무하고 수영조차 제대로 하지 못했던 내가 일 년 만에 다른 사람이 될 순 없었다.
코론섬에서의 첫 다이빙 일정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왔다. 우리가 묵었던 작은 호텔에는 침실보다 더 훌륭한 시설의 수영장이 있었다. 종종 비치배드에 앉아 책을 보거나 음악을 듣는 몇몇 유럽인들을 제외하고는 수영장을 이용하는 사람이 없었으며, 더군다나 물속에 들어가는 사람은 우리 둘 뿐이었다. 덕분에 우리는 해가 질 때까지 물 밖으로 나갈 생각을 하지 않아도 괜찮았다.
코론의 바다에서는 막탄의 바다에서와는 다른 물고기와 조개들을 볼 수 있었다. 일정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와서 돌이켜 생각해보니, 낮 동안 그것들에게 가까이 다가가 자세히 관찰하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웠다. 니모와 누디는 없었지만, 해마와 전기 조개가 있었다. 그런 것들은 대부분 난파선의 밑바닥에 붙어있었기 때문에 그것들을 자세히 보기 위해선 보다 높은 수준으로 호흡을 컨트롤할 필요가 있었다. 숨을 충분히 뱉지 않은 폐는 자꾸만 몸을 수면 위로 밀어 올렸고, 수면 아래로 가라앉아있는 형형색색의 조개껍질들(혹여 한두 개 주머니에 넣어온다면 공항에서 어마 무시한 벌금을 물게 되는 해양 국립공원의 재산이지만)에게 가까이 다가가는 것을 쉽사리 허락하지 않았다.
5개월 전에 처음 다이빙을 시작했을 때는 물아래로 가라앉는 일이 그렇게도 두려웠는데, 지금은 바닥에 가라앉고 싶어도 자꾸만 물 위로 떠오르는 몸뚱이 덕분에 여간 답답한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우리가 수영장을 전세 낸 덕분에 나는 저녁 내내 폐의 부력과 싸워 이기는 데 성공했다. 바닥에 가라앉아보니 은근슬쩍 프리다이빙에 대한 욕심이 일었다. 한껏 쪼그라뜨린 폐가 주는 느낌은 4.5kg에 육박하는 말티즈를 배 위에 올린 채로 누워 있는 것과 비슷한 안정감까지 주었다. 이 이야기에 공감할 수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있을지는 모르겠다. 설명을 조금 덧붙이자면, 그냥 누워있는 것보다 담요를 덮거나 반려동물을 몸 위에 올려놓았을 때 느낄 수 있는 적당한 무게감이 주는 안락함이 있는데, 수영장에서 느낀 수압의 정도와 우리 집 말티즈가 주는 압력의 정도가 비슷하다는 생각이었다.
너, 1분 넘게 숨 참을 수 있어
그런데 방금 전에 넌 5초도 안 참았어
간신히 바닥에 머무르는 방법에 대하여 알음알음 알아가고 있었지만, 아직도 나의 팔다리는 물속에서 조급하기 그지없었다. 잠시라도 가만히 있으면 물에 가라앉아 영영 떠오르지 못하게 되거나, 태양을 다시는 못 보게 되기라도 하는 것처럼. 자꾸만 수면 위로 고개를 내미는 나에게 쎈은 이야기했다. 건강한 성인 여성이라면 1분 정도는 충분히 숨을 참을 수 있다고.
사실 숨을 멈춘 채로 1분을 견딜 수 있는지 없는지는 멘탈에 달린 문제인 것 같다. '내가 물속에서 숨을 참고 있구나.' 하는 자각을 하는 순간, 이상하게 더 가슴이 답답해져 오고 당장에라도 숨을 들이쉬어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반면에 나는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수면 위로 올라가 숨을 쉴 수 있어. 지금은 숨을 강제로 참고 있는 게 아니라, 단지 지금 당장 숨을 쉴 필요가 없기 때문에 호흡을 멈추고 있는 것뿐이야.라고 생각을 고쳐 먹는다면 상황은 조금 달라진다.
실제로 포유류는 잠수환경에서 맥박이 감소하고 혈류량이 줄어 들어 산소 대사가 낮아진다. 즉, 물 속에서 우리는 물 밖에 있을 때와는 달리, 그다지 호흡하고 싶은 마음이 들지않는다는 것이다. 이듬해 바다에서는 무거운 장비를 벗어 놓고, 가벼운 몸과 마음으로 물속에 머물고 싶다는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