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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곁에 있는 사람

여러분은 어떤 관계를 그리고 있나요?

by 두부언니


결혼에 대한 궁극적 판타지가 무어냐고 물었다.
삶을 정리하는 시점에 혼자되지 않는 것이라고 말했다.



(연인관계를 떠나서) 내가 누군가를 떠올릴 때, 동시에 나를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 생각의 빈자리가 생기기 무섭게 그 자리를 꿰차고 들어오는 존재가 있다는 것은, 사실 영영 이어질 수 있는 현상은 아니다. 우리에게 몇 년에 한두 번의 주기로 찾아오거나, 혹은 아직 한 번도 찾아오지 않았을 수도 있는 이런 상황에 처했을 때, 우리는 일반적이지 않은 관계를 경험하게 된다.

혹자는 이 이야기를 친구, 가족, 동료 혹은 그 외의 특별한 관계에 비추어보아도 크게 어색함은 없을 것이다. 일반적이지 않은 이러한 관계가 너무나 소중하기 때문에 어떻게 해서든 우리는 이 관계를 유지하고 이 상황을 누리기 위해 스스로를 내려놓기도 하고 한 발짝 물러서기도 하며 때로는 잘못된 것인 줄 알면서도 쉽사리 끊어내지 못한다. 그런 마음은 한 달 동안 오지 않는 연인의 연락을 기다릴 수 있는 힘이 되기도 하고, 한 겨울에 5시간 동안 가게 앞에서 연인이 나오기만을 기다릴 수 있게 만드는 힘이 되기도 하지만, 마치 나쁜 줄 알면서도 쉽사리 끊어내기 힘든 어떤 유혹처럼, 거기서 헤어 나오기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또 하나 아이러니한 것은 내가 사랑하는 어떤 이가 나를 이처럼 힘든 상황에 방치함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마음을 쉽사리 접기가 힘들다는 점이다.

인류애적 소양이 뛰어나고 아니고를 떠나서, 타인의 아픔에 공감하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물고 빨고 애지중지하는 것은 사랑이 아니라고 말했다. 그건 마치 새로 산 고가의 카메라나 노트북 혹은 자가용이 행여 비 맞을까 흠집 날까 애지중지하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상대방의 아픔에 공감하지 못하는 것은 사랑이라 말하기 어렵다. 때문에 우리는 사랑하는 대상에게만큼은 할 수 있는 만큼 감각을 곤두세워 그(혹은 그녀)에게 공감하기 위해 무던히도 노력한다. 하지만 한 편으로는 언젠가 이 관계의 끝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마음 한 켠에 묻어 둔 채, 그 생각에 지지 않기 위해 오늘도 잘못한 것에 대해 사과하고 서로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마음을 다한다. 하지만, 모순되게도 지금 이 순간이 너무나 행복하기 때문에 때로는 그 끝을 두려워하고, ‘차라리 마음이 떴다고 말해줘', '사람 피 말리지 말고’, ‘이럴 거면 헤어져’라는 등의 말로 서로의 설 곳을 잃게 만든다. 그건 마치 어차피 맞을 매라면 먼저 맞는 것이 낮다고 생각하는 어린아이의 마음과 크게 다르지 않으며, 이처럼 마음과는 다른 말들을 내뱉고 또 후회하고 반복한다. 인간은 언제나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는 말은 결코 틀린 말이 아닌 것이다.

Every Planet we reach is dead

그래서 생각한다. 이상적인 관계란, 이처럼 무한히 반복될 듯 한 행복과 악몽의 경계를 수도 없이 헤쳐나감은 물론, 이어짐과 끊어짐의 다사다난한 사건사고들을 딛고 선 뒤에야 비로소, 마지막에 나란히 두 손 잡고 걸을 수 있는 누군가가 곁에 있는 것이라고. 누군가와 꼭 깊은 관계를 누려야지만 만족스러운 삶을 살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나는 배우자는 없어도 아이는 꼭 낳고 싶다고 생각한다. 살면서 기대가 되는 순간이 딱 두 번 있는데, 한 번이 출산이고 한 번은 죽음이다. 나의 일부였던 생명과 함께 이야기하고 함께 자라는 일은 생각만으로도 가슴 벅찬 일이다. 그 생명의 생각이 궁금하고 그 생명의 행보가 궁금하다. 그리고 그 생명은 언젠가 나의 마지막을 지켜보아 줄지도 모른다.


경주로 여행을 간 일이 있다. 2박 3일로 갔던 일정이었는데, 딱히 계획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목적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일정 내내 여유롭게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아침을 거르고 늦은 점심을 먹은 뒤, 근처에서 열린 플리마켓에 들렀다. 10부스도 채 안 되는 작은 플리마켓을 구경하고 난 뒤 열 사람이 앉으면 꽉 찰 듯 한 정자에 앉아 뜨거운 태양을 피하고 있었다. 계획이 없으니 가진에 시간뿐이라 한참을 장자에 앉아서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보고 있었다. 그때 시야에 들어온 커다란 나무의 그늘 아래, 백발이 성성한 두 노인이 자전거 한 대를 세워 둔 채 더위를 피하고 있었다. 그들이 무슨 이야기를 나누는지 들을 길은 없었지만, 그들의 주위로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듯하였으며, 일종의 동경 비슷한 것이 마음 한 켠에 피어오르는 것이었다. (아득히 먼 미래의 일이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언젠가 맞이하게 될지도 모르는 그 시간 속에 있는 두 노인을 바라보며, 비교적 넉넉히 남아있는 우리의 시간을 가늠해보았다. 일정 내내 값비싼 관광지의 식비며 숙박비에 온전히 여행을 즐기지 못했던 우리였지만, 그 정자에서 만큼은 가진 게 시간뿐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러모은 시간들로 미래를 살 수 있다는 생각에 어딘지 모르게 조금 상기되어 있었다.



누군가 나에게 향기가 있는 사람이고 싶다는 말을 한 적이 있었다. 뜨거운 여름이었고, 매미들이 사방에서 울어대는 통에, 안 그래도 존재감 없던 그 사람의 목소리를 알아듣기가 더욱 힘들었다. 아파트 단지에 난 작은 샛길을 따라 걷던 중에 그는 나에게 “향기로 기억되는 사람”이고 싶다고 말했다. 그 향기가 후각을 통해서 맡을 수 있는 채취와 같은 종류의 것은 아니었던 듯 하고, 아마도 그 사람 하면 떠오르는 분위기라던가, 존재감 혹은 어떠한 색깔이나 온도 같은 것을 말한 것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다. 삶의 마지막까지 함께 할 수 있는 누군가가 있다면 행복하겠으나 그게 어렵다면, '들꽃 만나러 가는 바람 말고, 들꽃 만나고 온 바람 같이’ 살고 싶다는 어느 목회자의 이야기처럼 잔향이라도 남는 삶을 살고 싶은 건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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