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어진 시간을 더 길게 사는 방법
기록하지 않은 순간들은 빠르게 사라져 버린다. 글은 그러한 순간의 끝을 잡아 멈춰진 시간 속에 가둔다.
다시 들여다보고 꺼내보고 싶었던 순간들이 있다. 글로 기록하면 같은 시간을 살아도 비교적 더 많은 시간을 누리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기록하지 않은 순간은 빠른 속도로 사라져 버리기 때문이다.
(언젠가는) 읽힐 목적으로 쓰여진 글 들은 없애거나 변화를 주지 않는 이상 영원히 존재하게 된다. 때문에 그 존재의 우수성에 부합하기 위해서라도 잘 쓰여진 글에 욕심이 나는 것이 사실이다. 사회는 빠르게 변하고 발전되어가지만 대체될 수 없는 기술이 있고, 그 중에 하나가 글쓰기라고 생각한다. 평균수명이 계속해서 연장되고 있다고 한다. 때문에 평생 한 가지 직업에만 몸담고 있기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비단 수명의 문제를 떠나서 우리의 몸이 쇠약하고 활동의 영역에 점점 더 다양한 제약사항들이 생겨 날 수록, 마지막에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의 가짓수는 지금보다 현저히 적어지게 될 것이며, 그 중 하나가 글쓰기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살아있는 한 끊임없이 생각한다. 개개인의 작가가 소유하고 있는 정신세계에는 대체제가 없으며, 삶을 녹여내지 않은 단어의 나열에는 의미가 없다. 글쓰기에 재능이 있고 없고를 떠나서, 혹자는 하다못해 메모장에 몇 자 끄적이는 글이나, 몇 해에 한 번 쓸까 말까 한 손편지를 쓸 때면, 나의 이 두서없음과 절망적인 표현력에 좌절한다. 전업작가는 아니지만, 글을 쓰면서 염두해 두면 좋았던 몇 가지 사항들에 대해 (내가 읽어볼 요량으로) 정리해두고 싶었다.
1. 단어가 주는 작은 뉘앙스에 주목한다.
글쓰기의 시작은 '생각해보니'와 '돌이켜보니'의 차이를 아는 것 같다. '생각해보니'로 시작하는 문장 뒤에 같은 단어(생각해보니)로 문장을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돌이켜보니'와 같은 유사한 의미의 다른 단어로 문장을 시작하는 것의 차이를 느끼는 것이 글씨기의 시작이라고 생각한다. 같은 단어 뒤에 또 같은 단어가 오는 것은 어쩐지 문장이 흐르지 못하고 제자리를 맴도는 듯한 느낌을 주게 된다. 더불어, 보다 풍성하게 표현할 수 있는 내용을 최대치만큼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 또한 들기 때문이다.
적어도 누군가에게 읽히길 원하는 글이라면 그 글을 나부터 여러 번 읽어 볼 필요가 있는데, 글을 반복해서 읽다 보면 원활하지 못한 흐름이라던가 불필요한 내용이 눈에 들어오게 되어, 읽는 횟수를 더해 갈 수 록 더 다듬어진 글을 쓸 수 있게 된다. 물론, 내가 쓴 글을 아무리 읽어보아도 어떤 부분이 잘못된 것인지 알 수 없을 때는 타인의 의견을 듣는 일이 중요한데, 좋은 피드백만 주는 사람보단 객관적으로 글을 읽고 의견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더 도움이 된다. 예컨대, 애인에게 듣는 피드백의 경우, 사기진작에는 도움이 될지라도 글에 직접적인 양분이 되기는 어려울 수도 있다는 말이다. 하지만, 너무 뼈 때리는 피드백만 듣다 보면 의욕 자체가 사라질 수 있기 때문에 그들이 주는 무한 긍정의 피드백 또한 필수 불가결한 요소이긴 하다.
2. 그림을 그리듯이 글로 묘사한다.
모든 기술이 그러하든 글 쓰는 기술도 지속적으로 개발하지 않으면 후퇴하게 된다. 하지만 항상 글 거리가 풍성한 것도 아니고, 하고 싶은 말이 언제나 차고 넘치는 것도 아니지 때문에 의식적으로라도 글을 쓰는 행위를 몸에 익힐 필요가 있다. 다양한 방법이 있겠지만, 그 중 하나는 그림을 그리듯이 글로 상황을 그려보는 것이다. 이를테면, 버스정거장에서 버스를 기다릴 때 눈 앞에 보이는 풍경을 잡아 글로 즉흥적으로 적어보는 것이다. '빨간 원피스를 입은 여자가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으며 기다리는 누군가'에 대한 이야기라던가, '말 한마디 않고 서로를 노려보고 있는 연인이 싸우는 이유'에 대해서라던가 하는 식이다.
또 다른 방법은 시간을 정해놓고 의식의 흐름을 글로 옮겨보는 것이다. 5분이면 5분, 10분이면 10분을 정해놓고 머릿속에 있는 생각을 아무런 필터 없이 글로 옮겨보는 식이다. 여기서 포인트는 완성도 높은 글을 적겠다는 의도가 아니라, 마치 배설을 한다는 기분으로 글을 써 내려가 보는 것이다. 이 경우, 평소라면 떠올리지 못했을 의외의 문장들을 얻게 되는 즐거움이 있다.
3. 글감을 틈틈이 모아놓는다.
말이라는 건 시간을 정해놓고 찾아오는 법이 없다. 때문에 글감을 모아 두었다가 필요할 때 꺼내어 조합해서 글을 쓴다면 비교적 수월하게 써 내려갈 수 있다. 가둬두고 싶은 이야기가 떠올랐을 때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어딘가에 기록해두는 것이 좋다. 한 번은 무언가를 적을 만한 도구가 없는데 핸드폰의 배터리까지 방전되어, 근처 편의점에 들러 펜과 수첩을 사서 적었던 일이 있다. 그때 적어두었던 글을 바탕으로 평소 관심 있게 지켜보았던 향수 브랜드의 블라인드 테스트에 신청서를 제출했었는데, 운이 좋게도 신청서가 채택되어 새롭게 론칭하는 시즌 향수(24종)의 블라인드 테스트에 참여할 기회를 얻기도 했다.
글을 쓰기 위해서는 책상 앞에 앉아서 보내는 시간 보다, 책상 밖에서 보내는 시간이 더 중요하다. 준비가 충분해야 글을 쓰기가 수월해진다. 가령
글 밖에서 보내는 시간이 (6~)8할이라면, 글을 쓰는데 들이는 시간은 2(~4) 정도로, 글 안에서 보내는 시간보다 글 밖에서 보내는 시간이 더 많은 것이 이상적이다. 더군다나 글쓴이와 같이 글쓰기에 숙달되지 않은 사람 일 수록 준비하는데 들이는 시간의 비율이 상대적으로 더 길어지는 것이다.
4. 내가 드러나는 것에 대해 두려워하지 않는다.
생각은 변하고 사람도 변한다. 글 한편으로 단정 지어질 수 있는 게 사람이 아니다. 때문에 스스로가 글에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것에 대해서 두려워하지 않아도 괜찮다. 글쓴이의 경우, 작성한 글을 보여주기 가장 두려운 사람이 가족이다. 특히 너무나 날것의 내용이거나 민낯의 형태일 경우, 가까운 사람에게 보여주기가 더욱 어렵다. 진솔한 내용을 담고 있기 때문에 그 이야기의 소재가 되는 대상이 글을 읽는 것에 대해 어느 정도(혹은 그 이상)의 어색함이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나의 이야기를 한다는 것은, 호소력 있는 목소리를 전할 수 있는 메리트가 되기도 한다.
5. 글은 쓰는 것보다 읽히는 게 더 중요하다.
글은 읽힐 때 비로소 의미가 있다. 읽는이가 글을 쓴 본인이 되었던, 어느 독자가 되었던 글은 읽히는데 목적이 있다. 다시는 읽히지 않을 목적으로 작성된 글도 있겠으나, 보통의 글은 대게 독자가 있게 마련이다. 하다못해 일기장에 꽁꽁 숨겨 적은 글에도 독자가 있다. 항상 독자가 듣고 싶어 하는 이야기를 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게 어려운 경우 내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타인이 공감할 수 있도록 풀어쓰는 방법도 고려해 볼 만하다. 그러기 위해선 읽는 사람의 입장을 끊임없이 염두에 두고 써야 한다. 문맥이 어색하진 않은지, 문장의 호흡이 길진 않은지 등의 기술적인 면도 고려해야겠지만, 그보다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건 글의 뼈대로 세워지는 메시지이다. 혹자는 마음속에 어느 책의 내용이라던가, 명언 한 줄, 하다 못해 영화 속 대사 한 마디라도 간직하고 있을 것이다. 내가 쓴 문장이 누군가에게 가 닿는 일은 굉장히 멋진 경험이다. 나의 이야기가 이곳 아닌 다른 어딘가에 살아 숨 쉴 수 있다는 건 어쩌면 굉장한 행운이며 또 행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