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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부언니 Aug 29. 2019

사실은 도처에 있어요.

특별할 것 없는 여행의 단상


"새벽에 이렇게 잔뜩 짐 꾸려서, 서울역에 오니까 꼭 여행 가는 것 같다."




분명히 이건 내 일이었다. 부산행 미팅을 위해 짊어진 짐은 어깨를 찢을 기세로 나를 내리눌렀고, (집이 경기도 한복판이라) 새벽 열차를 타기 위해 서울역 인근의 모텔에서 하룻밤을 묵었다. 그런데 지난밤부터 이 새벽까지 자기 짐도 아닌 것을 나 대신 짊어진 그 사람의 입에서 '새벽에 이렇게 잔뜩 짐 꾸려서, 서울역에 오니까 꼭 여행 가는 것 같다.'는 말이 나온 것은 뭐랄까.

어느 책에서 여행은 '여기서 행복할 것'의 줄임말이라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우리는 피땀 흘려 일군 보금자리를 굳이 벗어나, 굳이 (큰 맘먹고) 시간과 비용을 들여 여행을 떠난다. 비유가 거창할 테지만, 삶은 멀리 보면 하나의 여행으로 볼 수도 있다. 태어나서부터 죽는 날까지 우리는 저마다에게 주어진 여행을 하고 있는 것이다. 어디로 갈지, 무엇을 할지, 어떤 것을 느낄지는 저마다의 몫이다. 창밖으로 멀어지는 익숙한 풍경과 같이, 여행을 떠나 물리적으로 보금자리에서 멀어지는 만큼 내게서 삶을 떼어놓고 보기가 수월해진다.

경기도민은 삶의 1/3을 길 위에서 보낸다.는 말을 자주 들었기 때문에, 웬만큼 먼 거리를 이동할 일이 생겨도 별일 없으면 즐거운 마음으로 오고 가자는 주의다. 사실 90분이 넘게 통근버스에 쾌적하게 앉아있다 보면 어딘가로 떠나고 있는 듯한 상상을 하기가 어렵진 않다. 낮은 건물들과 작은 밭이며 산길을 지나, 아파트 단지를 떠나 고속도로를 타고 산 너머로 트는 동을 바라보고 있으면 간혹 여행길에 오르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는 정신승리가 지겨워질 무렵, 없는 시간을 쪼개어, 유명한 관광지와 맛집이라 소개된 유수한 곳들을 향해 여행길에 오른다. 하지만 그렇게 여행을 다녀와도 쉬고 왔다는 기분은커녕 오히려 기가 빨린 채로 아쉬운 휴가의 마지막을 맞이하기도 한다. 사실 여행의 성패와 관련 없이 휴가의 마지막이란 항상 미련이 남는 법이지만, 여행의 마지막을 아쉬움으로 마무리하기보다는 삶의 원동력으로 삼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인터넷 포털과 sns에는 수많은 별점과 후기들을 앞세운 일명 핫플레이스들이 하루가 다르게 쏟아지고 있다. 서울 상수동의 한 오뎅집은 음식 맛은 물론이고 가성비도 좋고 심지어 오돌뼈를 시키면 소면을 두 번이나 리필 해 주시기 때문에 글쓴이가 퇴근 도장을 찍다시피 하고 있다. 하지만 사장님이 홍보와 담을 쌓으신 탓인지 유동 인구가 적은 골목길에 위치한 탓인지, 종종 손님이 글쓴이 일행밖에 없는 밤도 있다. 그럴 땐 혹여나 다음번에 이 곳을 찾았을 때 이 자리에 스타벅스나 이디야가 들어서서, 더 이상 이곳의 칼칼한 오뎅국물과 푹 삶아진 무를 먹지 못할까 염려되어 맥주며 안주를 추가로 주문하곤 한다. 낯선 곳과 경험해보지 못했던 것들이 주는 설렘에 대해 부정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차이가 있다면, 강릉의 가로수길이 아닌 강릉의 상수동 오뎅집 같은 곳이 줄 수 있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다.


여행은 우리가 의식하는 것 이상으로 제한적인 상황에서 살아가고 있으며, 필요 이상의 스트레스를 받고 있음을 알려준다.


얼마 전에 다녀온 강릉 여행의 큰 골자는 살아남기였다. 첫날 점심을 먹기 전에 해변을 따라 걷다가, 택시며 버스가 다니지 않는 곳까지 흘러들어 가게 되었다. 파도에 발을 담그고 집집마다 마당에 심은 무화과나무에 흐드러지게 열린 과실들을 보며, 우리에게도 마당이 생기면 이런저런 나무들을 심자고 이야기하며 골목길을 걸어 나온 것 까진 좋았으나, 뜨거운 태양 아래 택시를 타기 위해 콜을 불렀지만 아무도 우리가 있는 구석까지 오려하지 않았다. 대여섯번 가량 계속되는 우리의 끊질긴 구조요청에, 마침내 기사님 한 분이 멀리서부터 달려오셨다. 택시기사님은 우리가 살려 달라고 말하는 것 같아서 구하러 왔다며 유쾌하게 웃으셨다.


우여곡절 끝에 점심은 계획한 곳에서 먹었으나, 과식을 한 탓에 도져버린 나의 식도염을 가라앉히기 위해 나의 일행은 약국을 찾아 헤매야 했고, 이후엔 공중 화장실에 휴지가 없어 휴지며 물티슈를 사서 날라야 했다. 그뿐인가, 오후에 방문한 야시장은 마침 우리가 찾아간 그 날부터 휴장기간이었으며, 시장 가는 길에 들리려던 강릉에 몇 군데 없는 독립서점은 휴가기간이었고, 마지막 날에 식사하기 위해 아껴두었던 차돌 두루치기 집은 일요일 휴무였다. 계획대로 된 것은 가오리찜밖에 없던 찰나에 원래는 숙소와 거리가 멀어 가지 않으려던 교동으로 방향을 틀었다.

사실 2년 전에 교동의 한 카페를 방문한 일이 있었는데, 당시엔 공간이 협소하고 좌석도 불편했다.(이번에 가서야 그 때 내가 앉았던 의자가 화분받침이었고, 테이블로 사용했던 것은 스툴이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곳의 분위기가 좋아 2시간 넘게 등받이가 없는 의자에 무릎을 쪼그리고 앉아서 책을 읽다가 나왔다. 당시에는 혼자 방문했기 때문에 좌석이 불편해도 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이번엔 동행이 있었기 때문에 방문이 망설여졌다. 하지만 교동이라면 밥집이며 카페가 밀집해 있는 동네였기 때문에 우리 두 사람 비빌 곳이 한 군데 쯤 있겠거니 하며 걸음을 옮겼다.



"어긋나는 것도 여행의 일부야"


도착한 카페는 2년 전과는 조금 다른 모습이었다. 벽면 마감재며 원목가구들은 2년 전과 다르지 않아 보였지만, 테이블이 늘어나 있었고 의자도 충분해 보였다. 사장님께 2년 전 방문했을 때 일을 이야기했더니, 화분을 받치고 있는 받침대며 바구니 밑에 놓인 스툴을 가리키며 내가 스툴을 테이블 삼고 화분받침을 의자 삼아 앉아 있었음을 알려주셨다. 한 가지 바뀌지 않은 것은 벽면에 기대어진 커다란 격자장이었는데, 칸칸마다 다양한 생김의 찻잔들이 즐비해있었다. 저 진열장에서 찻잔을 내오시던 사장님의 모습이 인상적이어서 이 곳을 배경으로 단편 소설을 한 편 적기도 했었다. 우려와 달리 이 곳은 떠나는 우리를 편안히 쉴 수 있게 맞이해주었다. 이쯤 되니 어긋나는 것도 여행의 일부.라는 동행의 말에 동의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여행의 한자를 살펴보면, 나그네(旅)에 다닐(行)이다. 사전적인 뜻으로 보자면 꼭 거창한 목적지나 목표가 필요하진 않은 것이다. 일정 중에 계획이 어긋나는 것 또한 여행의 일부라고 나의 동행은 종종 말한다. 우리가 인적이 드문 곳을 배회한 덕에 구조신호를 알아채고 달려오신 마음씨 따뜻한 기사님도 만나고, 야시장 개장을 기다리기 위해 들어간 카페에서는 낮잠 중에 화들짝 놀라며, 우리를 맞아 주신 사장님에게 쌀강정과 사과도 얻어먹을 수 있었다. 우리가 헤매지 않았으면 여행 중에 그런 따뜻한 대화를 주고받을 일도, 쌀강정이며 사과를 얻어먹을 일도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마지막에 머물렀던 카페는 머물기에 불편할 것이라는 예상을 보기 좋게 빗겨나갔고, 우리에게 상수동 오뎅집과 같은 의미가 되어주었다.


여행은 종종 도처에 숨어 있는 상수동 오뎅집을 우리에게 내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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