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의 거리, 그리고 나의 모성애
“엄마, 어디야?”
“응~ 병원에 약 타러 왔어.”
“무슨 약?”
“응~ 잠이 안 와서 신경안정제 좀 타러…”
“그렇구나. 약 잘 타가고, 전동차 조심히 타고 가.”
오늘도 엄마에게서 전화가 왔다.
우린 하루에 한 번은 꼭 통화를 한다.
통화 내용은 늘 비슷하다.
잠을 못 잤다는 이야기, 몸이 여기저기 아프다는 이야기.
나는 엄마의 이야기를 그냥 들어준다.
크게 위로하지도, 해결책을 말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엄마는 그런 이야기라도 딸에게 하고 싶은가 보다.
누군가에게 털어놓는 것만으로도, 마음 한구석이 조금은 편해지는 걸까.
엄마는 올해 예순 후반이다.
그 나이에도 건강하게 활동하시는 분들이 많지만,
우리 엄마는 조금 다르다.
어릴 적 소아마비로 왼쪽 다리가 불편했고,
젊은 시절부터 두통이 심해 약으로 하루하루를 버티셨다.
병원은 이제 엄마에게 일상이 되었고,
아픔은 엄마의 오랜 친구처럼 곁에 머물러 있다.
그렇게 아픈 몸을 안고도
엄마는 평생을 살아냈다.
그리고 지금도 살아내고 있다.
나는 엄마의 이야기를 듣고 또 듣는다.
어쩌면 내가 해줄 수 있는 유일한 일이기에.
엄마와 통화를 하면 마음이 편하지 않다.
누군가는 엄마에게 아이를 맡기기도 하고,
“반찬 좀 해줘” 하고 부탁도 한다던데...
나도 한 번쯤은 그런 딸이 되어보고 싶다.
하지만 내겐 그게 어려웠다.
엄마는 늘 아팠고,
그래서 나는 대부분을 스스로 해결해야 했다.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 할 때도,
가슴 깊은 고민을 털어놓고 싶을 때도
‘말해봤자 소용없다’는 마음이
언제부턴가 내 안에 깊이 자리 잡았다.
그래서 나는 늘 조심스러웠다.
엄마에게 기대는 대신, 나는 내가 어른이 되어야 했다.
그래서일까, 엄마는 가깝지만 편한 사람은 아니었다.
나도 안다. 엄마도 힘들었고,
그 속에서 최선을 다해 살아오셨다는 걸.
그래서 미워할 수도 없고, 원망도 잘 되지 않는다.
다만… 조금 외로울 뿐이다.
나는 내 아이들에게만큼은
그런 부재를 느끼게 하고 싶지 않았다.
엄마에게서 채워지지 않았던 그 마음을
내 아이들에겐 더 온전히 주고 싶었다.
어쩌면 그래서
나는 더 강한 엄마가 되었는지도 모른다.
부족한 엄마 밑에서 자란 딸이었기에,
더 채우고, 더 안아주고,
더 지켜주고 싶은 본능 같은 것이 자란 걸까.
생각해보면
엄마의 아픔이,
내 안의 모성애를 더 단단하게 만든 셈이다.
그래서 지금은,
그 모든 것에
감사하려고 한다.
언제쯤 나는 엄마가 편해질까.
그날이 오기는 할까.
그냥 자연스럽게, 아무 말 없이 엄마 옆에 앉아
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는 날이.
오늘도 엄마의 전화를 받고,
다시 혼잣말처럼 속마음을 써본다.
답은 없지만, 이렇게라도 꺼내놓으면
조금은 가벼워지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