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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비 Oct 04. 2020

위인의 기록

수필

유비


이 회사는 이 회사가 만드는 옷 디자인만큼이나 추상적인 회사다.


아이폰 메모장에 저렇게 일기를 썼다. 내가 쓴 일기의 내용은 패션 회사 출근 2일 차 인턴 인생의 잡다한 것들이었다. 평소 일기를 쓰는 성격이 아니라는 것은 내가 쓴 일기들의 제목에서부터 알 수 있다. 2일 차가 첫 일기였고 그다음 일기는 16일 차였으니 말이다. 나는 일기를 매일 쓸 수 있는 부지런한 위인이 아니다. 한 가정의 가장이 되었지만, 여전히 ‘매일’ 그리고 ‘부지런한’이라는 단어와 친하지 않다. 내가 보기에 위인과 일기는 언제나 붙어 다니는 단어인데,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위인들이 일기를 쓰지 않았더라면 ‘위인전’ 같은 책이 나올 리가 없기 때문이다. 위인들은 직접 기록하든 대중 매체에 의해 기록되든 그들의 방대한 삶의 내용을 자료로 남긴다. 남겨진 위인들의 기록은 후대에 위인들의 생각을 직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 유일한 도구가 된다.


한편, 틱톡의 창업자 장이밍은 9년 만에 연 매출 20조의 재벌 그룹을 탄생시켰다. 최근 틱톡에 대한 정치적 이슈가 많지만, 사실 그는 틱톡을 창업하기 이전부터 중국의 국민 뉴스어플 하나를 창업하여 운영하고 있었다. 내가 공감했던 부분은 그가 창업한 회사나 회사의 규모가 아니다. 장이밍 씨가 9년 전 창업하며 정신없이 어질러놓은 컴퓨터 책상 사진을 남겨놨기 때문이다. 내가 앞으로 장이밍 씨를 만나게 되는 날이 온다면 나는 꼭 그런 질문을 할 것이다. “자신이 크게 성공할 줄 알았기 때문에 남긴 사진이었나요?” 이 외에도 많은 위인의 기록들을 볼 때마다, 나는 위인은 자신이 위인이 될 것을 미리 알고 있었기 때문에 사사로운 것들까지도 기록했다고 생각한다.


나는 예전에는 손으로 쓰는 글을 좋아해서 만년필도 사보곤 했는데, 결국 감성과 편의성 사이에서 길을 잃었다. 이제는 둘 중 어느 것을 선택해도 뭔가 아쉬운 느낌을 져버릴 수 없다. 출근 일기는 아이폰 메모장 쓴 것이다. 일기의 제목은 내용이 충분히 귀여울 것 같은 ‘패션 회사 엠디 2일 차.’였고, 정확한 이유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나는 회사가 추상적이라고 끄적여놨다. 나는 중국 대학교에서 영양을 배워온 사람인데 여차여차 패션 회사에 지원하게 된 신입이었다. 옷은 ‘ZARA’를 제외하면 아는 브랜드가 없고 요즘 많이 사용하는 ‘지그재그’, ‘무신사’와 같은 쇼핑물은 당연히 몰랐다. 그런데도 그 회사에 자신 있게 지원했던 이유는 ‘경력 무관/신입 채용’이라는 문구 때문이다. 경력 무관 면접에서 나는 누구보다 자신 있게 면접에 임할 자신이 있다. 그것이 어떤 일이라도. 입사 지원을 하자마자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고 면접 일정이 잡혔다. 나는 패기롭게 면접을 봤다. 면접이 끝나고 근처 편의점에서 도시락을 먹던 중에 익숙한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대표님이셨다. “아~ 네 유비 씨. 혹시 다음 주부터 출근 가능해요?”


운 좋게 입사한 후 나는 함께 일하게 된 선배 MD* 님 옆자리에 앉았다. 선배는 나에게 4일 후에 퇴사한다는 말을 전했다. 일반적으로는 선임의 퇴사가 크게 잘못된 상황은 아니지만, 회사의 직원이 총 3명이라면 그것은 나에게 크게 잘못된 상황이 맞다. 이처럼 사회생활에서 신입이 경력직처럼 일해야 하는 경우는 흔하다. 선배  MD가 나가면 남은 MD는 인수인계를 고작 4일 받은 나 혼자일 것이다. 대표라는 사람이 생각이 있으면 경력직을 뽑아야 하는 거 아닌가? 이런 억울함과 불만스러운 마음은 지금에서야 생각이 나는 거고, 당시에는 “인생은 실전이구나 시ㅂ..”. 살아남을 생각만 했다.

*상품 기획 및 판매를 위한 모든 프로세스를 총괄하는 직업. 정식 명칭은 Merchandiser이다.


일기의 내용은 이랬다.

[이제 벌써 사수와 일하는 시간의 절반이 지났다. 이틀만 지나면 나는 살아남아야 한다. 남들은 사수랑 한 달 두 달을 같이 일하면서 배운다던데. 그때를 기억하면 아직도 억울하지만 그래도 나는 세상이 불공평하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대신 세상은 모두에게 ‘다른 기회’를 준다고 믿는다. 나는 그 기회 속에서 살아남고 싶었다. 첫 직장을 빨리 그만두고 싶지 않았고, 대표에게 인정받고 싶었고, 내 실력을 스스로 확인해보고 싶었고, 누군가에게 떳떳한 직장인이 되고 싶었고, 떨어져 있는 가족에게 승전보를 알리고 싶었다. 오기, 용기, 패기, 세상의 기를 모아 출근했다.


왠지 출근 전날부터 뭔가 쌔한 느낌이 있었는데, 그 느낌은 틀리지 않았다. 어느 커뮤니티에서 그런 글을 본 적이 있다. ‘쌔 하다는 느낌은 거짓이 아니다. 당신이 살아온 n 년 동안의 누적된 경험이 감지하는 뭔가 X 된 상황이다.’ 쌔한 느낌을 품고 출근한 나는 출근하자마자 회사 수납장에 있던 오렌지색 플라스틱 바인더를 꺼내 A4용지를 끼웠다. 그리고 모나미 펜을 들었다. 나흘 동안 나는 사수가 하는 정말 문자 그대로 모든 말을 다 받아적었다. 내 눈에 보이는 것과 들리는 것을 다 받아 적었다. 내가 쓴 글 밑과 옆에 내 생각도 함께 적었다. 내가 혼자 남게 되었을 때 이렇게 기록된 글이 나의 사수가 될 것이라고 굳게 믿는다.]


사실 사수가 퇴사하고 나서는 바인더를 다시 들춰보지 않았다. 그렇게 죽기 살기로 덤벼서 필기해댔더니 모든 내용이 외워져서 그냥 그렇게 자연스럽게 일을 이어나갈 수 있었다. 사수가 퇴사하고 일주일이 더 지나 출근한 지 15일 정도 되었을 때 대표님에게 혼난 적이 있다. 나는 열심히 혼나고 있는데 대표님은 갑자기 혼내다 말고 정신을 차리더니, “아 너 입사한 지 한 달도 안 됐지 참. 미안하다.”라며 사과를 하셨다. 어떻게 어떻게 나는 사수의 자리를 자연스럽게 대체했다. 저 사람 아니면 안 되겠다 싶은 자리도 결국 다른 사람에 의해서 대체된다. 언제나 사람은 사람을 대체했다. 시간이 지나면 내가 앉아 있는 자리도 다른 누군가가 와서 일하고 있을 것이다. 아주 자연스럽게 누군가 내 자리로 출근하면서 그것이 전혀 이상하지 않다고 생각할 것이다. 이처럼 어느 곳이든 자리는 변하지 않고 사람이 변하는 것이다.


사수와 함께한 단 4일간의 인수인계는 짧았기에 소중했고 짧았기에 잊을 수 없는 추억이 되었다. 세상은 길게 지속하는 어떤 부지런함도 인정해주지만 잠깐 피는 아름다운 벚꽃처럼 짧은 희소한 것도 인정해주는 편이다. 그러나 어중간해서 평범한 것은 크게 주목받지 못한다. 또 쉽게 잊힌다. 사실 인수인계를 할 수 있는 시간이 40일이었어도 나는 많은 것을 배울 수 없었을 것이다. 나는 패션을 몰랐기 때문에, 4일 그 정도면 충분했다. 내가 입사한 회사의 업무처리 방식은 아직까지 주먹구구식인 부분이 많다. 이 회사가 돌아가는 방식만큼이나 추상적인 생각이긴 하지만 나 역시 내가 앞으로 이 회사에서만큼은 위인이 될지도 모르기 때문에 위인과 함께 계속해서 기록을 남기려 한다. 다음 일기는 ‘패션 회사 엠디 300일 차’ 정도가 되겠다.




본 에세이는 독자님의 관심을 받아 쓴 글입니다.

남은 하루, 한 편의 글로 영감을 얻길 바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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