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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응켱 Mar 09. 2020

엄마와 요리

요리에 대한 나의 대견한 생각 변화

엄마와 요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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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방에 있는 엄마의 이미지.
별로 좋아하는 이미지 형태는 아니지만, 부산 떨며 저녁을 준비하고 있는 엄마의 뒷모습을 싫어할 이유를 찾지 못하겠다. 갑자기 탄성을 자아내길래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쌈장이 없어서라고. 너무 놀랐잖아.. (나는 식탁에 앉아 신선놀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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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의 사색 아닌 사색. 요리에 대한 이야기를 남겨볼까 한다. 여태껏 요리라는  내게  여러 가지 감정과 생각이 들게 하는 행위였는데. 밝히자면  요리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정확히 밝히자면, 먹는 것과는 별개로 하는 것은 내게 묘한 반감을 불러일으키는 행위에 가까웠는데.... 반감씩이라니, 도대체 무엇에 대한 반감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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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밤 샤워를 하다가 문득 나는  요리하는  좋아하지 않는 인간인 건가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는데. 샤워하다가 불현듯 떠오르는 게 아니겠는가. (다시금 느꼈다. 화장실이야말로 정말 대단한 성찰의 장소구나.) 사실 궁금해진 계기는 최근  팔로워분이 어디 가서 자신 있게 해 줄  있는 요리가 무엇이냐는 질문에서부터.  나이 먹도록 사실 자신 있는 요리 같은 게 없는 나에 대해 문제의식 또는 위기의식을 느끼다가. (, 자신 있는 요리라기보단   아는 요리로는 떡볶이, 토마토 파스타, 카레, 미역국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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왤까.  나는?
 그렇듯 나의 사색이란 그렇게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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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새 나는 지난 시간을 돌이켜 이제야 이해되는 맥락들을 종종 마주한다. 이것도 그중 하나. 요리라는  내게 긍정적인 이미지보단 다소 부정적인 이미지에 가까웠는데, 이것은 다양한 조합의 결과. 이를테면 가부장적인 집안, 대학시절 필수 교양이라던 여성학 수업의 영향, 그것들을 객관적으로 받아들이기엔 피가 너무 뜨거웠던 어린 응켱의 삼조합. 요리라는 것이 건강한  몸을 위한 기본 행위, 또는 사랑하는 사람을 위한 마음이라는 관점보다 여성이 해야 할 무언가라는 편중된 인식을 먼저 형성했던 나는  시간 강한 반감을 갖고 요리하지 않는 행위를 실천(?) 했던 걸 지도 모르겠다. 결과적으론 10여 년을 자취생활을 했지만 요리에 대해서는 알자 무식에 가깝다. 단순히 싫어함 이상으로 의도적으로 등한시했던 대상에 가까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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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시간이 흘러 결국 '요리'하는 행위에 대한 나의 정의는 앞서 밝힌 바와 같이 '개인의 건강한 삶을 영위하기 위한 기본적인 행위'이자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좋은 재료를 가지고 대접하고 싶은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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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야 나는 엄마의 요리하는 행위를 여성의 희생이나 전유물이 아니라 (나에겐 없는)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 자신의 존재가치를 증명하려는 마음이었을 수도 있겠다며 생각해보고 있다..
덧붙여 내가 나의 애인을 사랑하게  이유도 그가 고기 하나를 굽더라도 올리브유와 후추에 재울  아는 이이기 때문에. 이걸 영어로 뭐라고 하는데 나는 심지어 기억조차 못하는 사람. 이처럼 나에겐 없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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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에게 요리에 대한 나의 이런 생각의 변화를 이야기했더니, 너도  한심하다~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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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에 조금  관심을 갖고 살아야겠단 생각을 한다. 닭가슴살만 굽고 짜파구리만 하지 말고....
인스타그램 : 응켱 (@findme_kyo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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