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의 자녀의 모습이 오늘의 자녀의 모습이 아닙니다.
할머니 추도예배(제사)가 있어 부모님께서 계신 시골집으로 온 가족이 내려갔습니다. 대문에 들어서니 각종 음식 냄새가 코를 찌릅니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니 어머님께서 저녁상을 차리고 계십니다. 인사를 드리고 간단히 씻고 저녁상 차리는 것을 도웁니다.
어머니께서 저녁상을 차리시면서 ‘오늘은 네가 좋아하는 반찬들로 저녁상 차렸으니 많이 먹어라’라고 하십니다. 어머님 말씀을 듣고 차려지는 저녁상을 보니 제가 좋아하는 음식들이 꽤나 눈에 들어옵니다.
저녁상이 다 차려지고 둘러앉아 음식을 먹기 시작합니다. 어머님께서는 늘 그랬듯이 제가 먹는 것을 물끄러미 바라보시면서 입가에 잔잔한 미소를 띠십니다.
아직도 어머니께서 자식의 입으로 들어가는 음식에 배가 부르신가 봅니다. 눈으로 ‘엄마도 같이 먹어요’라고 신호를 보냅니다.
오늘 올라온 음식이 제가 좋아하는 음식으로 차려서인지 어머니께서는 유독 제가 먹는 것을 보십니다. 아직도 당신이 만든 음식을 맛있게 먹어주는 아들이 기특하고 자랑스러우신가 봅니다. 당연합니다. 부모님은 아마 돌아가실 때까지 그러실 겁니다. 안 그랬으면 좋겠지만 그것이 어머님의 행복이고, 기쁨이시니 어쩔 도리가 없습니다.
그런데 어머님께는 아주 죄송한 말이지만 사실 그날 차려진 음식들은 제가 그렇게 좋아하는 음식들이 아니었습니다. 정확하게 이야기하면 예전에는 좋아하던 음식이었지만 지금은 좋아하지 않는 것입니다. 어머님께서는 저의 입맛을 잘 알고 계시다 하고 음식을 차렸지만 저의 변한 입맛에 대해서는 알지 못하신 것입니다. 어쩌면 어머님께서는 저를 너무 잘 알고 있다고 생각을 하시지만 실상은 저를 너무 모르고 있으십니다.
그런데 이건 당연한 겁니다. 부모님으로부터 독립한 지가 벌써 16년이 넘어가고 아내가 해주는 음식에 입맛이 길들여졌으니 당연히 좋아하는 음식이 달라집니다. 그러니 어머님께서 저의 변한 입맛을 모르는 게 당연합니다.
그리고 알 필요도 없습니다. 제가 어머님의 음식을 먹는 횟수가 기껏해야 일 년에 4-5번입니다. 그러니 어머님께서 저를 모르시는 것이 흠이 되거나 이상한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당연하고도 당연한 것입니다.
추도예배를 마치고 집으로 오는 길에 많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머님께서는 저를 아직도 어릴 때 당신이 알던 모습으로 기억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머님께서는 그런 기억을 가지고 지금의 나를 다 알고 계시다고 생각을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정작 어머니께서는 사실은 저를 너무 모르고 계십니다. 당연하게 말입니다.
문득 뒤에서 잠든 아들들이 눈에 들어옵니다. 어머님께서 나를 모르시면서 다 알고 계시다고 착각을 하시는 것처럼 어쩌면 저도 제 아들들을 모르면서 다 알고 있다고 착각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다 알고 있다’라고 단정을 하고, 아들들의 의견을 무시하지는 않았나 하는 반성도 들더군요.
부모라고 아들들을 다 아는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자녀는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변하기 때문입니다. 입맛이 변하고, 좋아하는 것이 변하고, 부모를 대하는 태도가 달라지고, 외모가 달라지고, 생각이 달라지고, 고민거리들이 달라지기 때문에 어제의 자녀와 오늘의 자녀를 다릅니다.
그러니 어제의 눈으로 자녀를 다 안다고 생각하고 오늘의 자녀를 바라보면 늘 실패를 하게 됩니다. 그래서 대화가 필요하고, 수용이 필요하고, 함께 하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어제의 자녀와 오늘의 자녀가 다름을, 부모라도 자녀를 다 알 수 없음을 인정해야 합니다.
시간을 내서 어머니와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을 가져야 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지금의 저의 모습을 보여 드릴 수 있는 기회를 많이 만들어야겠습니다. 아울러 아들들의 변해가는 모습들에 좀 더 관심을 가져야 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