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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직장인조커 Feb 24. 2020

교직원을 포기하고 다시 대기업을 선택한 진짜 이유

3군데의 대기업에 근무하며 느낀 것들

 새해나 명절이면 어김없이 노량진 고시촌에 관한 방송이나 기사를 볼 수 있다. 수강생들은 새벽 4시부터 학원 앞에 줄을 서서 기다린다. 앞자리에 앉기 위해서다. 뒤쪽에 앉는 학생들을 위해 모니터를 제공한다. 한 공시생의 답변이 현실적이다.


"모니터를 보며 수업을 들을 거면 인터넷 강의를 듣지, 학원을 왜 다니나요."


 치열한 삶이다. 옆에서 수업을 듣는 수강생들도 경쟁자이기 때문에 단독행동을 하는 경우도 많다. 자기 자신과의 기나긴 싸움이다. 새벽부터 나와서 듣는 사람들은 그만큼 더 절박함이 있는 것이다.


 노량진 공시생들은 한 달에 최소 100만 원을 투자한다. 저녁 있는 삶과 안정적인 정년을 위해 많은 것을 포기한다. 어느 공무원 합격자가 공개한 자신만의 원칙에는 공부만 하는 생활에 익숙해져 나태해지지 마라. 연/월/주간 계획을 분량과 페이지 수까지 구체적으로 세워라, 앞자리에 앉는 절박함을 가져라 등이 있었다. 맨 앞자리에 앉는 것이 합격과 상관이 없다면 많은 사람들이 새벽부터 그렇게 줄 서지 않을 것이다. 새벽 기상을 위해 전날 컨디션을 조절하며, 항상 긴장하며 잠든다. 갖고 싶은 것도, 하고 싶은 것도 많은 시기에 자신의 목표만을 위해서 많은 것을 포기한다. 결국 합격은 누가 더 많은 것을 포기했느냐의 차이다.


 지금까지 소개한 내용들은 과거 대기업에 다니면서 '학창 시절 왜 한번쯤 공무원에 도전해보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에 공시생들의 삶을 잠깐 엿본 것이다.


 신입사원 시절 아니 교직원에 근무하기 직전 회사에서의 야근과 주말 출근, 실적 압박 등으로 몸과 마음이 칠대로 지쳤었다.


 대기업을 나온 후 매일 아침 소풍 가는 기분으로 스타벅스로 출근하며 글을 썼다. 내가 진짜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고민을 해봤다.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고민하고 또 고민을 해봤다. 첫 직장의 동기들 중 이직을 했던 사람들이 꽤 있었다.


 공기업, 공무원, 대기업 등 분야 또한 다양했다. 다른 사람들의 생각을 듣다 보면 어디 하나 딱히 끌리는 데가 없었다. 본인이 하는 일이 또는 처한 상황이 가장 힘들다는 말뿐이었다.


학창 시절 왜 한 번쯤
공무원에 도전해보지
않았을까

 그동안 3군데의 대기업에 근무했지만 내게 남은 건 아무것도 없는 것 같았다. 어떤 직업을 선택할지 고민을 하던 중 실적이 없는 곳으로 가고 싶었다. 그와 함께 워라벨이 있는 곳으로 가고 싶었다. 그렇게 나는 한 사립대학교 교직원 공고에 지원서를 냈다.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인적성 시험을 본 후 면접에 오라는 연락을 받았다. 면접관은 세분이었다. 총장님, 단장님, 처장님이었다.


 3군데의 대기업에 근무했던 이력은 압박면접의 빌미를 제공했다. 예상보다 훨씬 강한 강도로 압박이 들어왔다. 압박의 강도로만 치면 그동안 봤던 면접 중 두 번째안에는 들것이다. 준비했던 내용으로 차분히 답변을 했지만 분위기가 좋지 않게 흘러감을 느꼈다. 면접을 보다 보면 면접장 특유의 공기 무게가 있다. 지극히 주관적이지만 여기에 눌리면 결과는 좋지 않았다. 그동안 내가 걸어왔던 길을 포장 하는 것보다 솔직하게 답변하기로 면접을 보던 중 전략을 수정했다.


 "3번의 이직은 결코 적은 횟수가 아니겠지만 그만큼 새로운 조직에 들어갔을 때 적응이 빠를 것이며 그 경험들이 결코 헛되지 않았으리라 생각합니다. 일단 한 가지 근거를 말씀드리면 그 경험들을 바탕으로 책을 썼으며 내년 3월에 출간될 예정입니다."


 이 답변을 기점으로 화제는 내 이직 횟수에서 책으로 전환되었다. 첫 번째 책의 주제가 취업과 일에 관련된 내용이었기에 가능한 전략이었다. 면접 때 책에 관련된 질문이 이어질 때 합격을 확신했다. 그렇게 나는 그토록 바라고 바랐던 교직원에 합격했다.


그렇게 나는 그토록 바라고
바랐던 교직원에
합격했다

 기획부서에 배치를 받고 예산업무를 수행했다. 시보기간 6개월이 있었지만 교직원이라는 삶을 누리는 것만으로도 행복하고 감사했다. 새 학기 특유의 분위기, 저녁이 있는 삶 등 전에는 결코 느낄 수 없던 신세계였다. 캠퍼스가 크진 않았지만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심신이 안정되는 것 같았다.


 전임 선생님이 퇴사를 하여 예산업무를 익히는데 어려움이 있었지만 어찌어찌해서 한 바퀴를 돌게 되었다. 추경, 교육원가, 예산 배정 등의 대학교 예산과 관련된 업무 중 교육원가가 단연 탑이었다. (한 번이라도 해본 사람이라면 무슨 뜻인지 잘 알 것이다)


 방학기간 단축근무, 매우 자유로운 연차 사용, 실적 압박 제로, 저녁이 있는 삶. 이 4가지만으로도 평생 다닐 수 있는 이유는 충분했다. 여기에 더불어 당시 속해있던 부서의 팀장님이 딱 미생의 오상식 같은 분이셨다. 지금도 한 번씩 연락을 드리곤 한다.


예산과 관련된 업무 중
교육원가가 단연
탑이었다

 누군가 말하길 교직원은 신의 직장이 아닌 신이 숨겨둔 직장이라고 했다. 이 말은 즉슨 긍정적인 뉘앙스가 담긴 좋은 직장을 뜻할 것이다. 나 또한 10년 20년을 근무해 본건 아니었지만 깊게 공감하는 바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직원을 그만둔 이유는 크게 3가지였다.


 첫째, 겸업금지의 조항이었다. 예산업무를 하기 전 잠깐 동안이었지만 규정 업무를 담당했다. 시간이 날 때마다 대학교 주요 규정을 읽고 또 읽어봤다. 사립대학교 교직원이라고 할지라도 거의 모든 규정들은 공무원법을 준용했다. 겸업금지 또한 마찬가지였다. 2018년 3월 첫 번째 책이 출간되고 강연, 칼럼, 멘토링 등의 요청을 받기 시작했다. 교직원이라는 신분 자체가 이를 수행하는 데에 무리가 있다는 판단을 했다. 또한 나 혼자만의 피해가 아닌 부서 전체에 피해가 갈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둘째, 이전분야에 성공하고 싶은 욕망이었다. 직장을 그만두고 책을 쓰면서 사람인 이력서를 업데이트했다. 가끔씩 헤드헌터로부터 제안 받았던 곳은 대부분 보험회사였다. 지금 생각해도 훌륭한 조건이었지만 가지 않았던 이유는 책을 쓰기 위함이었고, 숫자가 있는 곳은 쳐다도 보기 싫은 이유였다.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라고 했던가. 힘들었던 기억들보다 좋았던 기억들이 남게 되고 무언가 제대로 해보지 못했던 아쉬움이 자꾸 나를 그쪽을 보게 했다. 교직원을 그만두고 다시 보험회사에 가서 지점장을 하고 싶다 했을 때 주변 사람들 대부분이 뜯어말리는 걸 보며 더 오기가 났다. 내 모든 열정과 노력을 쏟아부어 전사 1등 지점장을 반드시 해보겠다고 다짐했다. 


 셋째, 나만의 자산 시스템을 완성하기 위함이었다. 책을 쓴 이후 네이버 블로그, 유투버, 다음 브런치 등 나만의 마케팅 수단이 절실함을 깨달았다. 또한 두 번째, 세 번째 책을 쓰기 위해 본업과 교집합이 큰 주제를 택하고 싶었다. 교직원이라는 신분보다는 보험회사 쪽이 경제, 재테크 등 훨씬 더 밀접한 관련이 있었다. 위의 사항들은 교직원을 그만둔 이후 실제로 실천한 목록들이며 직전 연봉의 5배가 넘는 수을 거둘 수 있는 초석이 되었다.


직전 연봉의
5배가 넘는 수익을 거둘 수
있는 초석이 되었다

 스티븐 코비의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에서 말하는 성공을 위한 습관 중 하나는 '소중한 것을 먼저 하라'이다. 꿈을 이루기 위해서 포기해야 할 부분은 과감히 포기할 수 있는 용기도 필요하다. 교직원은 경험해보지 못했던 안정감과 만족을 주었지만, 내가 더 소중하게 생각하는 가치와 꿈이 있었에 눈물을 머금고 교직원을 포기하고 다시 대기업을 선택했다.


교직원을 했던 것에 대한

교직원을 그만둔 것에 대한

후회는 단 한 번도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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